"‘대박’, ‘쪽박’, ‘무한경쟁’, ‘승자독식’, ‘갑질’ 등의 범상치 않은 단어들이 난무하더니 어느새 ‘삼포세대’, ‘헬조선’, ‘수저론’ 등이 일상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우리네 삶이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징표다. 저기 저 편에는 ‘노오력하면’ 몇 십 억대의 높은 연봉과 수 천 억대의 물질적 풍요가 신기루처럼 보이지만, 지금 여기는 누구든 언제든 열패자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로 인해 우울증과 자살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이숙진 교수(성공회대)
이숙진 교수(성공회대) ©새길포럼 제공

[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이숙진 박사(성공회대)가 발표하면서 서두로 꺼낸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사회문화적 풍속도이다. 17일 저녁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이 제7차 새길포럼을 개최한 가운데, 이숙진 박사는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의 신앙"이란 주제로 발표하면서, 그는 "끝없는 자기계발의 강박에 사로잡힌 시대가 됐다"고 한탄했다.

이 박사는 "그간 가족이나 국가 등 공동체가 담당해왔던 것들이 점차 개인의 책임으로 이관되면서, 성공과 실패의 교차로에서 어느 길을 걷게 될 것인지는 ‘오직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믿음이 공고화되고 있다"고 밝히고, "청년은 물론이고 어린이들까지 경쟁의 무기를 얻기 위해 이른바 ‘스펙’으로 지칭되는 외국어, 외모, 출신, 경력 등을 쌓기 위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진단하고 자신을 통제하며 자기를 재창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우리사회의 자기계발 산업은 나날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다양한 자기계발의 컨설팅/클리닉 산업과 각종 자기계발서적의 호황은 이러한 열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자기계발 문화의 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곳이 종교공간"이라 지적하고, "IMF 이후 출판시장의 전반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자기계발서적은 베스트-스테디셀러가 되었으며, 신자유주의 시대의 욕망과 공명하는 종교공간에서는 세속적 자기계발 클리닉/컨설팅 프로그램을 차용하여 고유한 자신의 종교언어와 의례로 번안한 프로그램을 상품화하고 있다"면서 "이 종교상품들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계발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자기계발이 곧 이 시대의 복음이 됐다"고 말한 이 박사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자기계발 프로그램들도 성서를 자기계발의 전거로 삼아 자기계발문화를 신앙적 언어로 번역/번안하고 있다"면서 "교회는 주일학교 학생, 직장인 신우회, 부부코칭 등 각종 소모임을 통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실천하는 ‘의례’를 고안하고 ‘축복신앙’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불교는 예외일까? 이 박사는 "불교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말하고, "명상으로 성공하기를 꿈꾸는 워크숍이 개최되고, 유명한 전통사찰에서는 ‘붓다코칭스킬’이나 ‘템플스테이’ 등과 같은 또 다른 형태의 자기역량강화 컨설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종교소비자들의 욕망에 부응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이 박사는 "종교, 연령, 성별, 직업에 따른 계발의 구체적인 목표는 다르지만, 사회적 성공과 행복, 나아가 구원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고, "요컨대 한국 종교공간의 한편에서는 현대사회의 특성인 ‘빠름’과 ‘채움’에 조응하는 자기계발의 흐름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효율과 성장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논리와 대립하면서 ‘느림’과 ‘비움’을 강조하는 또 다른 형태의 역량강화의 수사학이 구사되고 있다"면서 "종교공간에서 생산, 유통, 소비되는 이러한 양 극단의 자기계발 담론과 실천은 이상적 종교인의 삶의 태도와 결부되어 새로운 주체형성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이숙진 박사는 "자기계발의 종교는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을 찾아다니는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에 의해 번성 한다"고 했다. 그는 "이 ‘세속종교’의 전도사들은 자신들의 신화와 교리를 깨우치고 숙련한다면, 누구든지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외친다"고 말했지만, "문제는 물질적 성공이나 내면적 성공에 도달하기 위하여 ‘자아의 팽창’(ego-inflation)이라는 공허한 의례가 동원된다는 점"이라 지적했다. 더불어 "때때로 자기비움의 종교적 가르침인 것처럼 코스프레(costume play)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한한 자기애의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박사는 "자기변화의 수사학으로 무한한 능력을 추동하면서 ‘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의 종교는 타자에 대한 보살핌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에서 취약한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 "세속적 성공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고무하는 자기계발의 종교에는 윤리성이 탈각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기독교 공간에서 불고 있는 자기계발의 열풍 역시 신자유주의 통치성과 조응하면서 자본의 종교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능동성, 자유, 자율성으로 표상되는 자기계발의 신앙으로 진정 자유롭고 자율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그는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주체의 치명적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극단적인 개인화"라고 지적하고, "요컨대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계발 담론은 자신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능력에 집중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삶의 전 영역에 걸친 시장원리의 확대라는 사회구조적 측면과 조응하고 있다"면서 "무한경쟁에 지친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나 자기계발의 대열에서 배제된 삼포세대가 대변해주듯, 자기계발의 트랙에서 자의/타의로 이탈된 이들이 속속 등장해 현재 한국사회의 자기계발의 열기는 여전하지만 자기계발의 허구성 또한 증명되고 있다"고 했다.

한편 행사에서는 이숙진 박사의 발표에 대해 김혜숙 목사(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 최순양 박사(감신대) 등이 논평자로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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