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교회 심관식 원로목사
▲심관식 목사ㅣ시애틀형제교회 원로

사도행전 27장을 읽어보면 바울 일행이 멀고 먼 로마로 배를 타고 가는 과정에 조난을 당하여 많은 난관이 있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난이란 것은 기차의 경우, 자동차의 경우, 또는 비행기의 경우이던 언제나 두려운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비행기의 사고와 선박의 파선이란 것입니다. 그것은 육지가 아니라 공중이요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경우는 배에서 당한 조난인데 낮에 조난당하는 것도 기막힌 일이거니와 밤에 조난당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한심한 일입니다.

바다가 비교적 잔잔하다 하더라도 어두운 밤바다에는 공포와 위협이 휩싸이는 무엇이 있지요. 한 번은 내가 젊었을 때 밤배를 타고 난간에 기대어 달빛 아래에서 뱃전에 부서져 지나가는 물결소리를 들으면 무서워서 어깨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낀 일이 있는데, 바울의 경우에는 폭풍이 불고 있는 바다여서 무섭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을 태운 배가 오늘 알기 쉽게 말하면 이태리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죄인의 몸으로 그리고 그 외 몇 사람의 죄수와 많은 사람들을 태운 배가 출항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어려운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공포와 절망 속에 신앙으로 폭풍과 싸우던 그 날 밤의 이 사람들의 활동은 때때로 위험을 당하는 긴 인생항로에 오른 우리들에게 많은 가치 있는 교훈을 준다고 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교훈과 위로와 경고를 주시기 위하여 이 파선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으셨다고 봅니다.

 그 날 밤 망보던 선원들이 큰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요란한 파도소리를 듣자마자 배가 큰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장은 곧 깊이를 잰 후에 선원들을 명하여 배의 고물(선미)에서부터 4 개의 닻을 내리게 했습니다. 이제 배가 이처럼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그들이 바울에게 확실한 경고를 미리 받았으나 죄수가 하는 소리라고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성경 본문 29절에 보면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선원들이 신속히 내린 4 개의 닻은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좌우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이 닻 4 개에 달려 있었습니다. 만일 이 닻들이 끌린다거나 혹은 밧줄이 끊어진다면 배는 어둠 속에서 이리 저리 밀리다가 암초에 부딪쳐 모든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닻도 끌리지 않았으며, 밧줄도 끊어지지 않았고, 천만다행으로 배가 부서지지 않고 잘 견디어 냈습니다.그래서 276명의 승객의 생명이 유지되었습니다.

4 개의 닻은 큰 생명의 줄이었습니다.

인생항로에 있어서 우리가 늘 지니고 있으면 좋을 4 개의 닻이 있습니다.

(1) 첫째의 닻은 기도의 닻입니다.

사람은 모든 일에 기도로써 언제나 접촉해야 합니다. 기도로써 우리의 심령을 사탄으로부터 막아내야 한다. 기도의 줄이 끊어지면 암초에 부딪치고 맙니다.

모든 사람이 기도가 없기 때문에 죄에 빠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평생을 목회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채로 죄에 빠졌다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2) 둘째의 닻은 성경의 닻입니다.

어떤 해군부대에서는 병사들이 무슨 책을 갖기 원하는지 조사해 보았답니다.

50% 이상이 성경을 택했다는 것이지요. 이들은 자기네가 위험한 곳, 곧 고통스럽고 죽을 지도 모르는 곳에 가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러한 장소와 그러한 경우에는 책이란 하나밖에 가질 수 없을 터인데 이때에 적당한 책은 곧 성경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남북 전쟁 때 전쟁하는데 군복 호주머니에서 성경책이 나왔다고 합니다. 탄환은 성경과 그의 가슴을 관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위한 성경이 주는 보호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삶의 투쟁에 있어서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성경의 진리는 영혼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유혹자의 탄환을 막는 방패이며 끌려가지 않는 닻입니다.

(3) 셋째의 닻은 가정의 닻입니다.

영국의 한 제독은 늘 말하기를 "일 주일에 한 번씩 자기 집에 꼭 편지를 쓰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 일에 실수하는 해병은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독일의 작가 Thomas Mang이 요셉의 시험에 관하여 말하기를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심한 유혹에 넘어가려고 할 때 갑자기 요셉에게는 자기 아버지 야곱의 얼굴이 눈에 떠올랐고 그것이 곧 야곱의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여 그를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았으므로 그는 능히 "내가 어떻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하고 외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경건한 가정은 신앙의 부모와 사랑하는 처자와 가정의 남편과 아내들에 대한 생각은 흔히 유혹과 죄의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게 영혼을 붙들어주는 울타리로써 나타나도록 하는 정리와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4) 넷째 닻은 교회와 맺는 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는 습관의 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고귀한 젊은 예수에 관하여 누가는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그 당시 교회)에 들어 가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유혹을 막는 방파제요, 신령한 영혼들의 연마장입니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심령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므로 인하여 축복을 받아 복을 누리는 가를 상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로 훈련된 심령은 항상 악령을 쫓아내며 시험이 올 때에 그것을 정복하며 항상 고귀한 목표가 보이며 생애가 기로에 설 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말한대로 "저희가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 들어가자 할 때 내가 기뻐하였노라"고 그 중심으로부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오늘날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어느 때나 영혼의 가장 소중한 닻들을 내리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심관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