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유 대니엘 유
대니얼 유 준장(가운데)이 지난 7월 30일 해병 1사단 기를 전임 사령관으로부터 받고 있다.

한인 다니엘 유 해병대 준장이 전설의 ‘미 해병1사단’ 사령관이 되었다.

유 준장은 지난 7월 30일 해병 1사단 본부가 소재한 캘리포니아 캠프 펜들톤에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규모가 큰 해병 1사단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유 준장은 2011년 2월 미 정규군 장성이 된 최초의 한인이기도 하다.

한인 가운데 주 방위군 소속의 장군으로 임명된 적은 있지만 대통령이 임명하고 연방상원의 인준을 얻어야 하는 정규군 장성으로 진급한 한인은 육, 해, 공군 및 해병대를 통틀어 유 준장이 처음이다.

그는 당시 케이아메리칸 포스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해병대 신규 준장으로 임명된 12명 중 한명이 된 것은 매우 큰 영광이며 동시에 나를 겸손하게 한다”고 밝한 뒤 “가족과 나는 한인(Korean American)이라는 유산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인 2세로 애리조나 주립대를 졸업한 유 준장은 해군 군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 펠로를 거쳤다.

그는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 4사단 연대장을 역임하고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미 해병원정여단(MEB) 사령관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참전, 당시 공로를 인정받아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그 뒤 미 서부지역 해병대 신병훈련소 총괄사령관, 해병1사단 부사령관으로 활동해왔다.

해병1사단은 1941년 2월에 설립, 미국 해병 부대 중 가장 오래된 부대로 현재 해병 부대 중 최대인 23,000여명의 해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병 1사단은 긴 역사만큼이나 참전한 전쟁마다 혁혁한 전과로 전쟁의 흐름을 바꿔 세계 최강의 부대로 일컬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전투는 1942년 과달카날(GUADALCANAL) 전투. 해병 1사단 휘장은1 사단을 의미하는 굵은 ‘1’자가 써있는 파란색 바탕의 다이아몬드 형의 사각형이다. 그 ‘1’자에는 GUADALCANAL라고 써있는데 과달카날은 1942년 해병 1사단이 태평양전쟁 중 일본군과 격전을 버린 섬의 이름이다.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승승장구였다. 일본은 호주 공략의 일환으로 이 섬에 공병대를 주둔시켜 비행장을 만들었는데 미 해병1사단이 상륙하여 이 비행장을 차지했다. 이후 6개월동안 이 섬을 탈환하려는 일본군과 미 해병 1사단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일본은 당시 일본군 최정예부대인 제2사단을 비롯, 35,000여명을 투입했지만 결국 미 해병 1사단에 패하고 섬 탈환을 포기했다. 일본군의 과달카날 전투 패배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 전체에서 공세에서 수세로 바뀌는 분기점이 되었다.

해병 1사단은 이처럼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전장에서 계속 이뤄냈다. 한국전쟁에서 해병 1사단은 인천상륙작전에서 선봉으로 인천과 서울을 탈환하며 한국전쟁의 흐름을 바꿨다.

해병 1사단은 인천상륙작전 후 평양을 버리고 도망간 김일성 일파들이 새롭게 정한 북한의 수도 강계를 점령하기 위해 개마고원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중공군이 개입하며 해병 1사단은 중공군 7개 사단이 매복한 개마고원에서 포위당해 세계 전쟁사에서 유명한 장진호 전투를 수행한다. 해병 1사단은 밤에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 가운데 중공군 7개사단과 싸우며 흥남까지 철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중공군의 남진을 저지했다.

해병 1사단은 그 후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선봉으로 혁혁한 전과를 내며 고비마다 전쟁의 흐름을 바꾸어왔다.

이런 역사로 미국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해병 1사단을 대니얼 유 준장이 사령관으로 인솔하게 된 것이다.

/글·사진=케이아메리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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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준장 #다니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