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 중인 이주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이주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및 활동이 보장받게 됐다. 또 불법체류 외국인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게 됐다.

대법원은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생활하면 누구나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노조 결성과 가입이 금지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취업 자격이 없는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해도 예외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다만 노조 결성과 가입이 허용된다 해도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해 취업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국내 체류가 합법화되진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당시 위원장 아노아르)이 2005년 6월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이주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인정하라"며 낸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 반려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른 사람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그 근로자가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실제 노동조합법은 근로자의 개념을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해당 근로자가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의하면 취업 자격 없이 취업한 외국인은 강제퇴거 및 처벌의 대상이 되는데 이는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을 고용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려는 것"이라며 "취업 자격 없는 외국인이 제공한 근로에 따른 권리나 근로자로서의 신분에 따른 제반 권리까지 금지하려는 취지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취업 자격 없는 외국인 근로자의 노조 활동을 허용한다고 해서 노조에 가입한 외국인이 취업 자격을 취득하게 되거나 체류가 합법화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취업 자격 없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조직하려는 단체가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거나 노조법이 허용하지 않는 사유가 있을 경우엔 노조 설립 신고서가 반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민일영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민 대법관은 "취업 자격 없는 외국인은 장차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지위 향상을 기대할 만한 법률상 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노조법상 근로자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2007년 2월 상고 이후 8년 4개월간 대법원에 최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던 사건이다. 소송 제기 10년 만에 최종 선고가 나왔다.

대법원은 선고가 지연된 것에 대해 "충실한 심리를 위해 자료 수집과 연구 조사, 제반 사정 반영 등에 노력을 기울였다"며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 근로자의 노조 활동을 허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국제적 파급 효과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면밀히 파악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앞서 서울, 경기, 인천 거주 이주노동자 등 91명은 지난 2005년 4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같은해 5월 정부에 규약과 위원장의 성명 및 주소, 회계감사 2명의 성명 등을 첨부한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정부는 그러나 "노조 가입자격이 없는 불법 체류 외국인을 주된 구성원으로 하고 있어 합법적인 노조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고, 이에 이주노동자들은 2005년 6월 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은 "불법체류 외국인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이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에 장차 적법한 근로관계가 계속될 것을 전제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및 지위향상을 도모할 법률상 지위에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불법체류 외국인의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심은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이상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1심 판결을 깨고 서울경인이주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이날 선고 직후 이주노동자 노조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너무나 늦은 판결이지만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개선이 더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은 비자가 있든 없든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이 동등한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같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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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