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에도 지렛대가 필요하다. 아무리 무거운 짐도 쉽게 들어올릴 수 있게 하는 힘, 바로 다양한 사역에서 헌신하는 평신도 사역자들이다. “선데이 크리스천” 혹은 “소모적 크리스천”이 늘고있다는 이 시대, 이들은 어떻게 신앙을 키워오고 헌신하게 됐을까? 신년, 열정적인 평신도 사역자들의 신앙과 그들의 성장과정을 주목해보자. <편집자 주>

타이슨스 코너 쪽에 위치한 신동림 집사의 직장 사무실 책상은 언뜻 봐도 ‘기독교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한 쪽 벽면에는 외우고 있는 성경구절이 A4용지로 한 뭉치 붙여져 있고 다른 구석에는 ‘순교자의 소리, 카타콤’ 등 선교잡지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읽다가 펼쳐놓은 성경책과 큐티책도 보인다. 직장에서 그는 가끔 동료 무슬림들과 예수님에 대해 대화도 나누고, 믿는 미국 동료들과 매주 성경공부와 기도모임도 한다.
 
 

 
▲라마단 금식기도 책자를 나눠주고 있는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신동림 집사(선교지원부장).

직업상 컴퓨터 두 대로 작업하는 신 집사는 실시간으로 전세계 불신자들의 숫자를 통계로 보여주는 웹사이트(http://dom.imb.org/the%20unfinished%20task.htm)를 확인하면서 ‘오늘 예수 믿은 사람의 수’에 한번 웃고 감사하다가도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수’에 작은 한숨을 내쉬며 선교의 필요성을 가슴깊이 되새긴다고 했다.

“아직도 세계의 24000 미전도 종족 중에서 약 3000-5000의 미전도종족이 복음을 들어야하고, 세계 6900개의 언어중 약2200개의 언어로 성경 번역이 필요합니다. 전세계 70억 중에 약16억이 무슬림이고 10억이 힌두교, 5억이 불교입니다. 지역 선교, 현장 선교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가야 합니다. 오늘날 믿는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시대적인 사명을 가질수 있도록 도전을 주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동역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이루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

현재는 교회 선교지원부에서 파송, 협력 선교사들의 대소사를 챙기고 교회지인 ‘제자들’의 선교 부분 기사들을 작성해 교인들에게 선교 도전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선교 사역을 통해 외부적으로는 선교 동력을 강화하고 내부적으로는 선교 도전과 동원에 힘쓰고 있다.

“예수님은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잖아요. 빛과 소금의 공통점은 스며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 가운데 스며 들어가는 것입니다. 빛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 밝게 빛나고, 소금은 녹아서 자신의 모습이 없어질때 비로소 그 짠맛의 역할을 할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고통이 있지만 빛과 소금처럼 스며들고 녹아져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으니까요.”

1. 시작

“1993년 10월 28일이 제가 예수님을 만난 날입니다.” 신동림 집사는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 날을 잊을 수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천국 못 가면 누가 갑니까?”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착한 사람’으로 살았다. 74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과 이민 온 신 집사는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착실히 사회생활했고 가정에도 충실했다. 착함의 정석을 살고 있다 자부했던 그였기에 아내가 다니는 교회(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전도폭발팀이 방문했을 때 자신있게 대답했다. “천국 갈 확신 있습니다! 나 같이 착한 사람이 안가면 누가 가겠어요 ?” 예수를 믿지 않던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교만이었죠.”

그랬던 그에게 전도폭발팀은 차분차분히 “선행으로 갈 수 없는 천국, 예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줬고 이는 신 집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예수님을 받아들였다.

“왠지 모르게 굉장히 기뻤고, 마음이 평안했어요.”

얼마 후 교회에서 열어 준 새신자 공부에 참여했고, 마지막날 초청 만찬에 참석했다가 당시 담임을 맡고 있던 이원상 목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목사님, 예수 믿으니까 정말 좋네요.” 이 목사는 흐뭇하게 웃으며 조용하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졌다. “기도하세요.”

“영적으로 보면 금방 태어난 어린아이 같은 저는 사실 목사님께 칭찬이나 격려를 바랬는 지도 모릅니다. 다른 목사님 같으면 ‘정말 좋죠? 축하드립니다. 저도 기쁘네요’ 같은 말들을 해 주실 거라고 기대했었죠. 당시에는 멋쩍었지만 결국에는 ‘기독교인이 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하셨던 정말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2. 비전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쉬운 점이 하나 생겼다. 성경을 좀 많이 알아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 CCC 사역을 하던 김호성 선교사를 따라 매주 볼티모어에 있는 MD대학 캠퍼스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도는 성경을 통째로 속속들이 알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영리”만 제대로 알면 된다는 것도 깨달아졌다.

1994년 단기선교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듬해 95년 열정 반 호기심 반 단기 선교 훈련반에 들어갔다. 단기사역 희망장소를 적어내라는 말에 중국을 1위로 적어 냈다.

중국이 당시 목회자나 사역자들만 들어가던 핍박 지역인줄 몰랐던 터였다.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 듣고는 ‘중국은 갈 수 없겠거니’ 짐작하고 있던 차였는데, 갈 수 있다는 통보가 떨어졌다. 일행은 모두 목회자나 전도사, 평신도는 혼자 뿐이었다.

하루종일 혼신 기도… 30분 간 주전자 물붓듯 설교 나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50명 전원 예수 영접

두려움과 떨림으로 시작된 첫 단기선교지에서의 기억은 강렬했다. 지금까지 11번의 단기선교를 다녀온 신 집사지만 첫번째 갔던 중국에서의 기억 만큼은 잊을 수 없다.

“성경을 모르니까 너무나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준비하는 것, 들어가는 것부터 사역하는 것 모두 하나님의 개입하심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 범상치 않았다. 워싱턴에서 뉴욕, 그리고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된 것이다.

비행기를 놓치면 선교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 막막했다. “비 그치게 해주세요. 하나님”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더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막을 길은 없어 보였다. 그 때였다.

“20분 후 US 에어라인(US Airline)이 뉴욕으로 출발합니다.” 예약한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의 항공기가 뉴욕으로 간다는 소식이었다. 폭우로 뉴욕을 가지 못하게 된 타 항공사 승객들도 짐을 가지고 창구로 오라는 말에 이민가방처럼 한보따리로 장만해 온 짐을 다시 찾아 부랴 부랴 창구로 갔다.

“손님, 마지막으로 도착하셨습니다. 딱 여섯 분 좌석이 남았는데 일행은 몇분이시지요 ?.”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기적이었다. 그렇게 일행 여섯 명이 무사히 뉴욕으로 갈 수 있었다. “한 좌석이라도 부족했으면 어떡할 뻔 했을까요?” 신 집사는 마치 어제일 처럼 ‘휴우’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선교지 도착. 2명이 한 조가 되어 ‘사영리’를 핵심으로 하는 복음 메시지를 전하러 다녔다. 신 집사는 전도사와 같은 조가 됐다. 전도사가 복음을 제시하면, 신 집사는 복음을 전해받은 후의 삶을 전하기로 했다.

“성경도 잘 모르는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앉으나 서나 무시로 기도가 나왔다.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심방을 가는 길,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 거렸다.

“그 작은 초가집에 약 50명이 모여있는데 너무 떨리는 거에요. 화장실에 가서도 기도할 정도로 기도를 쉬지 않았건만 강대상 앞에 서니 또 다시 간절하게 기도가 나오더군요. 이제 눈을 딱 떠서 말씀을 전하는 데, 일단 말을 시작하니까 주전자로 물을 붓듯이 말이 술술 나오는 것이었어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하면서도 ‘아 이거 내가 아닌데’ 싶을 정도로 약30분 동안 복음을 전했어요.”

결과는 대성공. 초가집에 모였던 50명 모두 예수를 영접했다.
 
 

 
▲터키 단기선교에서 신동림 집사.

그렇게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다는 신 집사는 이후에도 단기선교라면 1년에 한 번은 꼭 챙겨 가게 됐다. 중국, 태국, 캄보디아, 터키, 멕시코 등지를 다녀왔지만 아직도 첫 선교지인 중국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내 자신도 미국에서 믿음생활을 하지만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너무나 편안하고 안일한 삶으로 인해 형식적인 믿음 생활을 하고 있어요. 너무나 편하고, 좋은 건물과 시설, 좋은 말씀들로 인해 내자신이 왜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지,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망각할때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하나님은 분명 살아 역사하신다는데 그 하나님을 나의 삶 속에서 체험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지식으로 남아서 결국 머리만 커지는 영적 과분수가 되어 버리고 있어요. 하지만 매번 선교지를 가면서, 그 땅들을 밟고 그 영혼들을 만나면서, 또 영적 전쟁을 치루면서 다시한번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나의 영적성장과 함께 나의 사명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곤합니다.”

잠시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교 워싱턴 분교가 생겼을 때 신학공부를 하다가 분교가 없어지면서 중단했던 신학공부도 기회가 되면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3. 동행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선교지원부 사역을 하면서 늘 아쉬운 건 사람이다. 큰 대형교회지만 어렵고 힘이 드는 선교 사역을 감당하려고 지원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교회 파송선교사 16가정과 협력선교사 70명을 섬기며 후원하고 있고, 파송 선교사들과 자녀들의 생일을 매번 챙기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적으로 광고를 내 선물을 보낸다. 2년 전부터는 자녀들까지 선물과 카드를 챙기기 시작했는데, 선교사님 자녀들은 본인 앞으로 온 카드와 선물을 받으면서 너무나 기뻐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특히 선물이 선교지에서 큰 위로와 격려와 힘이 됐다는 이메일을 받을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한 선교사는 너무 감동이 되어 선물과 카드를 끌어 안고 “이 넓은 하늘에서 우리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하다”고 대성통곡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오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메일 계정 관리, 순헌금 정리, 통보, 후원금 보내기, 협력 선교사 관리 및 순연결, ‘제자들’ 원고/만화, 세상을 향하여(주보), 기도제목 업데이트, 서류정리, 선교나눔 기도모임, 선교헌금 주일, 라마단 금식기도 책자 공급, 파송선교사 환영 및 접대, 기도후원 모임, 선교사역원 부서 지원 등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선한 목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위해 99마리를 뒤에 두고 들로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는 이제 잃은 양이 99마리인데도 남아 있는 한 마리의 양에 집착하고 있는 모순의 담을 헐어버려야 합니다. 선교란 하나님의 특별한 초대권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 축복을 누리고 하나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때로는 핍박과 고난, 순교도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하시지 않고 우리를 동역자로 불러주셨어요. 그것이 바로 축복이고 그 부름에 응답하는 선교는 바로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요?”

선교는 이제 그에게 삶 그 이상의 것이 되어있다. 내 자신의 삶을 넘어 다른 수 많은 영혼을 향한 생명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숨쉬기를 멈추면 죽듯이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크리스천의 의무 이상입니다. 오늘도 내가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영원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은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찾아서 오늘도 방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먼저 진리의 복음을 받은 우리가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고, 삶의 목적이며, 교회 존재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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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