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간 달고 뛰던 태극마크를 반납한 차두리(35·서울)가 자신의 축구 인생 최고의 경기로 우즈베키스탄과의 2015 호주 아시안컵 8강전을 꼽았다.

차두리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은퇴경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안컵 8강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당시 교체 투입된 차두리는 손흥민(레버쿠젠)의 골을 도우며 팀에 2-0 승리를 안겼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은 뒤 폭풍같은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따돌리는 장면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차두리는 "후반전이 끝난 뒤 흥민이가 도저히 못 뛰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슈틸리케 감독을 찾아가 '체력이 좋은 (이)근호를 흥민이 자리에 두고 흥민이를 최전방에 배치하자'고 제안했다"는 비화도 공개했다.

  ©뉴시스

◇차두리 일문일답

-은퇴 경기를 마친 소감은.

"날씨가 안 좋은데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오르막, 내리막도 있었고 기쁜 일, 실망스러운 일도 있었는데 이제 유니폼을 벗게 됐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팬과 선수들, 취재진께 감사드린다."

-은퇴식에서 눈물을 쏟았는데.

"정말로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 운동장에 서서 팬들의 고맙다는 메시지를 봤을 때는 내가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아 감사했다. 행복한 축구 선수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 아버지께서 운동장에 나왔을 때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항상 아버지의 명성에 도전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보다 잘하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현실의 벽을 느끼게 됐다. 아까 아버지를 보는데 한편으로는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서 기분이 홀가분했고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넘겠다는 큰 아성에 도전했는데 실패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았다. 너무 축구를 잘하는 아버지를 둬 밉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아버지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갖추신 분이다. 축구적으로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선수였다."

-손흥민이 페널티킥을 실패했는데.

"느낌상 흥민이가 넣을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웃음). 처음에 나보고 차라고 하던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기는 것이 중요했고 경기의 진지함을 끝까지 가져가려했다. 속으로는 '그냥 성용이가 차지'라고 생각했다(웃음). (이)재성이가 골을 넣어서 승리했다는 것은 대표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어린 K리그 선수가 그런 활약을 했다는 것은 지금 리그에 있는 선수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 같다. 대표팀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이기려고 끝까지 경기해준 후배들에게 감사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독은.

"히딩크 감독이다. 한 번도 대표 경험이 없고 청소년 대표도 안 한 대학생 선수를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시킨다는 것은 배짱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스피드와 파워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표팀에 발탁해 월드컵까지 데려가주셨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맣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그만둘 수 있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자면.

"아시안컵 8강전인 우즈벡전을 꼽고 싶다. 내가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라고 느끼게 해줬던 경기였다. 아시안컵 때 후배들에게 당부한 것이 '개인 욕심을 버리고 팀이 이기는데 초점을 맞추자', '경기를 못 나가도 내색하지 말고 팀을 위해 희생하자', '나이든 선수부터 할테니 따라와 달라'는 것이었다. 교체로 들어가 공격 포인트로 승리에 보탬이 된 뒤 내가 했던 말을 책임질 수 있어서 좋았다. 후반전이 끝나고 흥민이가 도저히 못 뛰겠다고 하더라. 그때 흥민이가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뛰고 있었는데 왼쪽 수비수가 공격적이라 그 부분에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

그 경기는 너무 이기고 싶었다. 내 대표팀 생활이 아시안컵 8강에서 끝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연장전을 앞두고 감독님께 '흥민이가 피곤한데 변화를 주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다. '흥민이를 전방에 두고 체력이 좋은 (이)근호를 오른쪽으로 빼자. 흥민이가 결정력이 있으니 한방을 기다리자'고 제안했다. 감독님이 괜찮은 생각이라고 해서 전술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흥민이가 두 골을 넣었다. 경기 후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런 부분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고참이 해야 할 역할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말에 책임져서 기뻤고 경기에 영향을 줘서 좋았다. 어시스트로 보탬이 돼 좋았다. 여러 측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던 경기였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시다시피 서울이 3연패다. 성적이 다시 나게끔 죽어라 뛰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후에 차차 앞날을 생각해보겠다. 일단 자격증은 따고 싶다. 독일에서 지도자 자격증을 따는 것이 목표다."

-축하 메시지를 받은 것이 있나.

"(박)지성이한테 밥 먹자고 문자가 왔다. 내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많은 분들이 축하 문자를 주더라. 고맙더라. 내가 선배나 친구들보다 월등히 잘해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닌데 축하해줘서 고맙다."

-2004년 독일과의 친선전(3-1)을 기억하는 이가 많은데.

"대단한 경기였다. 우리가 독일을 이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경기력이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독일에서 뛰고 있었지만 큰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평범한 선수였다. 그래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독일을 이겨 자부심을 느꼈다. 대표팀이 강대국들과 경기를 많이 하면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태극마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파주에서 훈련을 갖고 평가전을 하는 것은 하늘에서 찍어준 선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선수들이 이를 인지하고 감사하면서 책임감을 갖고 뛰어야 한다. 수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오고 싶어하지만 들어올 수 없다. 들어와도 얼마 안 돼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한 번 들어왔을 때 뭔가 보여주고 오래 남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들어왔으면 한다. 그러다보면 경쟁이 되고 팀이 강해진다.

우리는 유럽이나 남미처럼 선수층이 두텁지 않다. 결국 한정된 자원에서 선수를 발굴하고 성장시킬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유럽하고는 다르게 대표팀에 의해 모든 축구가 돌아간다. 대표팀이 소속팀 위에 있다. 그렇기에 오늘 같은 평가전을 통해 팬들을 잃을 수도, 얻을 수도 있다. 매 경기 열정을 다해 경기를 해주면 팬들이 늘어날 것이고 다음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피지컬은 좋은데 기술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얼마 전 기사의 댓글을 보다가 '피지컬은 아버지. 발은 어머니'라고 그러더라.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약간 공감이 가더라(웃음). '우리 엄마가 발을 물려줬나'라고 생각했다. 난 기술이 뛰어나지 않은 선수인 것은 확실하다. 대신 다른 장점이 있는 선수였다. 유럽에서는 선수의 장점을 가장 크게 본다. 한 가지를 잘하면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우리는 아직 선수가 완벽해야 한다는 주의가 강한 것 같다. 완벽한 선수는 없다. 나는 잘하는 것이 따로 있고 그것이 팀에 도움이 될테니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단점을 찾아 평가하기 보다는 장점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축구를 봐줬으면 한다."

-큰 대회를 경험하면서 실제 우리 축구 경쟁력은 어느 정도라고 느꼈나.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참 열심히 한다는 말이 큰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은 참 열심히 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유럽에 가니 그것은 기본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아버지랑 통화할 때 '오늘 열심히 했어'라고 말하면 '그러면 됐지'라고 하셨다. 대학교 때에도 '열심히 했다'고 말하니 '이제는 열심히 갖고는 안 된다. 잘해야한다'고 하셨다.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세계 축구에서 열심히는 기본이다. 유럽 선수들의 뛰는 양과 투쟁심이 증거다. 그 선수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잘한다. 우리도 열심히 한다는 기준을 세계 수준에 맞춰야 한다. 많이 뛰고 잘해야 한다."

-과거 자신의 축구인생을 스코어로 표현했을 때 3-5로 지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몇 대몇인가.

"3-5 그대로 인 것 같다. 대신 종료 직전 골대 두 번 정도를 맞힌 아쉬움이 남는 경기인 것 같다. 2년 간 타이틀을 얻을 기회가 많았다. 지나면 선수는 결국 얼마나 우승을 많이 했느냐가 남는다. 챔피언스리그와 FA컵, 아시안컵 결승까지 올라가 마지막까지 간 것은 뿌듯하다. 하지만 결국은 빈손이다. 골이 안 들어가서 3-5로 끝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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