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조대기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초대 회장   ©대자보 제공

한평생 정론직필로 살아온 고 조대기 전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은 성균관대 통계학과와 연세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세계일보 기자로서 언론인의 삶을 시작했다.

1997년 김영호 편집국장 재임 당시 사측에 의한 편집권 제한에 항의해 기자들의 편집권 독립 투쟁을 이끌면서 노조위원장으로서 책무를 다한 바 있다. 100여일간의 투쟁으로 인해 해고의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얻은 복직판정으로 의로움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후 바른지역언론연대 사무총장, 한국언론재단 기획위원 등으로 풀뿌리 지역 언론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해 왔다.

지난 2002년 6월 월드컵 4강 신화 당시 '시민의신문' 엔지오타임즈 편집국장으로서 추모 사이트를 개설해 100만명에 육박하는 온라인 추모객들의 추모 열기를 이끌어내는 등 미군 장갑차에 의한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을 적극 공론화하기도 했다.

그해 가을에는 인터넷신문 기자들과 적극 연대해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2002년 9월28일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카페에서 역사적인 깃발을 올린 한국인터넷기자협회의 초대 회장으로서 대선 국면에서도 정론직필의 올곧은 인터넷언론의 소임을 다해냈다.

이후 인터넷언론의 권익과 자유수호에 적극 나섰으며 이후 인터넷기자협회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기, 2004년 4월 총선에서의 인터넷신문에 대한 인터넷실명제 반대 운동, 2005년 1월1일 신문법 제정 등의 국면에서 언론단체의 책무를 이어갔다.

이후에도 시민의신문 편집국장,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8년 6월 군포시민신문 편집국장으로서 재임 도중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고 6년간 고통의 투병 생활을 견뎌왔다.

특히 그는 2009년 9월 투병 중에도 '지역신문 뿔났다'(화이트랩)를 출간해 지역신문에 대한 국가적 지원방안의 문제점과 대책, 지역 신문의 생존활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아울러 투병 기간 중에도 한국인터넷기자협회 고문으로서 2011년 5월20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성준 이사장을 예방해 인터넷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한 진흥 및 전문교육 강화를 호소하기도 했다.

병세가 깊어짐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페이스북과 블로그 등 인터넷을 통해서 언론계 현안과 국가적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올리고 지인과 소통하면서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되살리고자 노려했다.

2014년 7월31일 53년의 생애를 끝으로 20여년간 언론계와 함께해왔던 정론직필 의로운 삶의 펜촉도 멈춰야 했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 공동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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