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장로교회 박용래 담임목사   ©대전장로교회, 기장총회

자신이 몸 관리를 잘 못하고 음식에 지나친 탐욕을 부리다가 얻은 병을 이 사람은 십자가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또 어떤 가난한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가난을 십자가로 생각하고 참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가난은 한 때 방탕하고 사치해서 생긴 것인데, 그렇게 해서 생긴 것를 십자가로 간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겪는 모든 고난이 다 십자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분명한 잘못과 실수로 야기되는 고난도 있기 때문입니다.

'착각의 십자가'는 고난은 고난이로되 신앙 때문에 얻게 된 고난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죄로 인해서 생긴 고난입니다.

반면 '복음의 십자가'는 신앙을 버리면 겪지 않아도 될 불이익과 고난이지만, 순전히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맞게 되는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져야할 십자가는 '착각의 십자가'가 아닌 '복음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져야할 십자가는 '착각의 십자가'가 아니라 '복음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기독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신앙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입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를 떠받치는 두 개의 큰 기둥입니다.

이 두 개의 큰 기둥 중 어느 하나만 기울여지거나 넘어져도 우리 기독교 신앙은 통째로 흔들리고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는 교활하게도 두 개의 신앙을 흔들고 잘못된 신앙을 심어줌으로 우리 신앙을 무능하게 만드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잘못된 신앙이란 무엇이냐? 어떤 것이 사탄이 심어준 잘못된 신앙인가?

1. 십자가 없는 부활신앙입니다.

마귀의 첫 번째 유혹은 무엇입니까? 십자가 없는 부활신앙을 가지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란 무슨 뜻입니까?

십자가를 지는 고생은 하기 싫어하고 오직 부활의 영광만 받겠다는 욕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고난 없는 영광'을 바라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십자가 없는 부활만을 원하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흘리는 기도에 힘을 쓰셨던 것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면케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는 기도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몸 버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위대한 일을 완성하게 되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이 세상에서 가장 참기 어렵고 힘든 고난이었습니다. 고통이었습니다.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영원한 승리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다시는 고난과 핍박을 받지 아니하는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다시는 죽음이 없는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받지 아니하시고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마귀가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 아니하시 없는 부활의 영광만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지지 아니하려하면서 오직 부활의 영광만을 누리겠다고 합니다. 고난은 싫어하면서 오직 영광만 받겠다고 합니다.

십자가 없는 축복과 번영만 바란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거나 땀흘려 가꾸지 않아도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우리에게 유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희생입니다. 고생입니다. 아픔입니다. 죽음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영원한 승리며 영광이며 영생이며 축복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을 때는 희생이고 죽음이지만 많은 열매를 맺을 때의 기쁨은 비교할 수 없는 승리요 영광인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십자가는 없는 부활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 지는 것은 싫어하고 오직 축복과 은혜만 받겠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심어준 잘못된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신앙, 고난 없는 영광만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히틀러에게 저항하다가 순교했던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는 '값싼 은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왜 값싼 은혜라고 했는가 하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처럼 십자가라는 값진 대가는 지불하지 않고, 부활의 영광과 축복만 누리겠다는 사람들은 값싼 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내 몫의 십자가도 지기를 싫어하면서 부활의 영광만 누리겠다는 생각은 값싼 은혜를 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의 영광은 반드시 십자가를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권능에 함께 동참하려면 반드시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을,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지금 비록 바울의 삶은 고난과 시련이 가득하지만, 복음 전하고 선교하다가 매도 맞고 갇히기도 하고 죽음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그러나 그는 주님이 주시는 부활의 영광, 인생의 마지막 골인지점(푯대)에 이르러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의 상급을 받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려간다고, 열심히 주님 위해산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의 기초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교회는 십자가 위에 세워졌습니다. 우리의 신앙 안에 십자가가 사라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금으로 만든 십자가 목걸이를 달고 다닌다 해도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의 장식품으로 사치품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져야할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믿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내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수 있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교회안에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십자가를 한낱 멋진 장식품으로 전락시키고 있고 십자가를 액사사리로 여기면서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위기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우리 성도들에게 십자가가 살아 있어야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일하셨던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내몸에 채워가고자 하는 진정한 성도들이 되셔야 합니다.

내가 희생해서 이웃의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싫어하고 그냥 취미처럼 교회 다니고 내가 좋은 대로만 자기 유익만을 위해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십자가 없는 부활을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사라진 교회, 십자가의 정신이 실종된 성도, 십자가의 모양은 남아있지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워가려는 헌신과 희생이 사라진 사람들에게 결코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의 영광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축복과 번영과 은혜만 바라는 것은 값싼 은혜만 찾는부끄러운 신자입니다.

오늘도 사탄 마귀는 십자가 없는 부활신앙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내 몫에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하셨던 일에 동참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워가시므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기쁨과 축복에 참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 부활 없는 십자가입니다.

반대로 마귀가 우리에게 집중으로 공격하며 유혹하는 것은 부활이 없는 십자가 신앙에 대한 유혹입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를 지는 성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탄의 교활한 계략입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신앙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고난을 십자가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념 때문에 자기의 철학과 사상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십자가를 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라면 아무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한다 해도 영원한 사망과 심판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없는 십자가는 어떤 영광도 기쁨도 없는 고달픈 생활이 되고 말 것입니다. 소망도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감사와 능력도 없습니다.

옛날 학생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찬송을 부르면서 시위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라고 분명한 신앙을 고백하는 믿음으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고난 중에도 감사가 있고 반드시 승리를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소망을 가집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념적으로 자신의 철학과 사상 때문에 민주화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며 십자가를 진다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다는 믿음도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지도 못합니다. 그들의 고난은 그저 고통으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라는 잘못된 신앙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상과 철학과 신념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서 또한 사회정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진다하더라도 주님께서 나의 구주되시며 부활의 소망과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부활신앙 없이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칭찬을 들을 수 있지만 세상에서 존경은 받을 수 있지만 그러나 진정한 부활의 기쁨과 영광에는 참여할 수 없는 불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탄의 유혹도 물리쳐야합니다.

그저 힘들고 어려워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를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워가려는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좀더 성숙한 신안인이 될 때에 참된 부활의 기쁨과 승리와 영광과 축복을 체험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신앙을 우리는 경계해야합니다. 또한 부활 신앙이 없는 십자가의 신앙도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들은 참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신앙을 소유해야합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주님의 부활의 영광과 승리에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던 종려주일에 이제 우리도 믿음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워갈 수 있는 내 몫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신 성도들은 착각의 십자가가 아니라 진정한 복음의 십자가를 짐으로 부활의 승리와 기쁨과 영광과 상급을 소망으로 삼기를 축원합니다.

박용래 목사는 한국신학대학을 1974년에 졸업했으며 덕촌교회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다. 현재는 대전장로교회를 1987년부터 섬기고 있다. 그외 한신대 이사, 대전 YMCA이사, 대전 NCC 대표회장, 기독교 연합봉사회 이사장, 대전 NCC 대표회장 등을 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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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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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사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