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아들 요셉의 인도로 애굽 왕 바로를 만나 문안했다.
바로가 나이를 묻자 야곱은 자신의 나그네 길이 130년이었다고 대답했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고백에는 인생을 바라보는 야곱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인생이 나그네 길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첫째, 인생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길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인생을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약 4:14), 연기(시 102:3), 호흡(욥 7:7), 바람(시 78:39), 풀(벧전 1:24), 그림자(대상 29:15)에 비유한다. 모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존 웨슬리에게 한 여인이 내일 밤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겠느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웨슬리는 평소의 계획대로 글로스터에서 설교하고, 이튿날에는 튜크스베리로 가서 설교하며 신도들을 만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어 친구 마틴의 집에서 가족들과 대화하고 기도한 뒤, 밤 10시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잠자리에 들겠다고 했다. 영광 가운데 깨어날 것을 바라보며 평소처럼 하루를 마무리하겠다는 뜻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자세다.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태도도 이와 같을 것이다.
바로 앞에 섰을 때 야곱의 나이는 130세였다. 조부 아브라함이 175세, 부친 이삭이 180세까지 살았던 것과 비교하면, 당시 야곱이 살아온 세월은 그들의 수명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세월이 짧았다는 야곱의 말은 단순히 나이를 비교한 표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사람이 느끼는 인생의 덧없음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았더라도 돌아보면 짧게 느껴지는 것이 인생이다.
젊은 시절에는 하루가 짧고 한 해가 길게 느껴지지만, 노년에는 하루가 길고 한 해가 짧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다. 야곱에게도 130년의 세월은 어느덧 지나가 버린 짧은 시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야곱은 자신의 세월이 짧았을 뿐 아니라 험악했다고 고백했다. 행복한 인생을 꿈꾸며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기까지 했지만, 그가 실제로 걸어온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제 늙어 바로 앞에 선 그는 지나온 삶을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돌아보았다.
어찌 야곱만 그러하겠는가. 우리 역시 저마다의 고생과 아픔을 안고 인생길을 걸어간다.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J. M. Barrie)는 사람의 삶을 일기장에 비유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처음에 쓰려 했던 이야기와 실제 삶의 기록을 비교할 때 가장 겸허해진다는 취지의 말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처음 품었던 뜻과 실제로 살아온 모습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 그 차이를 정직하게 돌아볼 때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해진다.
그러나 인생이 짧다고 해서 오늘 피었다가 내일 사라지는 들풀처럼 덧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일기장에 어떻게 아름다운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뜻하신 삶에 가까이 다가갈 때 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욕망만을 좇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하루하루는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게 된다.
야곱은 성공을 향해 일평생 달려왔지만, 지나온 삶을 마냥 행복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욕망을 앞세워 살아가는 동안 갈등과 고통을 거듭 겪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붙잡으려 할수록 삶은 더욱 거칠어지곤 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즐거움을 추구하며, 고뇌에서 벗어나려 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이다.
둘째,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한다는 뜻이다.
욥은 재산을 잃고 열 자녀마저 모두 잃은 뒤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강물이 끊임없이 흘러들어도 바다가 가득 차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욕심도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어도 더 가지려 하고,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머물 사람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 인생의 여행에도 끝나는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야곱은 바로에게 자신이 살아온 130년이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이 고백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심은 것을 거두게 되는 삶의 이치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은혜를 심으면 은혜의 열매를 맺고, 배신을 심으면 그에 따른 아픔을 겪게 된다. 야곱의 생애에도 자신의 선택에 따른 고통과 갈등이 있었다.
인생에는 시작이 있고 반드시 마지막이 있다. 우리는 그 마지막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야 한다.
야곱은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나그네 길에는 외로움이 있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때로는 허전하고 쓸쓸하며, 마음 편히 머물 곳을 찾기도 어렵다. 그러나 나그네는 길 위에 영원히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곳이 있다.
우리 역시 이 땅에 영원히 정착할 사람이 아니라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다. 이 세상은 우리가 지나가는 길이며 잠시 머무는 곳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여정을 마치고 돌아갈 영원한 본향이 있다.
야곱의 나그네 길이라는 고백을 묵상하며 우리는 인생의 황혼에 돌아갈 집을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에게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안다면, 그 길은 더욱 분명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
바로의 질문은 야곱의 나이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단순히 몇 년을 살았는지를 넘어,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나이의 숫자만큼이나 그 안에 담긴 삶의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자 존 뉴턴은 한때 노예무역에 종사했지만, 이후 목회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다. 그가 직접 작성한 묘비명에는 불신앙과 방탕 가운데 살았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긍휼로 보호받고 회복되며 용서받아, 한때 훼손하려 했던 믿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 그의 찬송 역시 구원받은 죄인이 누리는 은혜의 기쁨을 노래한다.
우리도 구원받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나온 날들을 은혜로 돌아보고, 남은 날들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란다.
찬송가 37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는 지금까지 인도하신 주님께서 앞으로도 험한 길에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며, 밤이 지나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소망을 노래한다. 우리도 그 소망을 품고 남은 인생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언젠가 주님께서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물으실 때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 물음을 마음에 품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가자. 나그네 길을 마치는 날,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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