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대신 자신을 노예로 삼아 달라는 유다의 감동 어린 변론은 요셉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했다. 자신을 팔았던 형제들이 이제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형제를 살리려는 모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셉의 가슴에는 뜨거운 형제애가 끓어올랐을 것이다.
마침내 요셉이 소리친다. “이들만 남겨 놓고 모두 나가 있으라.” 그리하여 요셉과 형제들만 남게 된다. 요셉은 그 자리에서 목 놓아 운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형제들은 더욱 불안해졌을 것이다.
“내가 바로 요셉입니다. 아버님은 살아 계십니까?” 느닷없이 터져 나온 말에 형제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애굽의 총리가 자신들이 팔아 버린 요셉이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형제들은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요셉은 형들을 가까이 부르며 자신이 바로 그들이 애굽에 팔았던 동생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자신을 팔았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하나님께서 가족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자신을 먼저 보내셨다는 것이다.
요셉은 기근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앞으로도 5년이 더 남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속히 돌아가 아버지께 이 소식을 전하고, 온 가족을 애굽으로 모셔 오라고 당부한다. 자신이 가족들을 돌보겠다는 약속도 한다.
요셉은 베냐민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고, 베냐민도 함께 울었다. 다른 형들과도 입을 맞추며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제야 형제들은 요셉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큰 감동을 느낀다. 22년 동안 이어진 이별과 고통의 시간이 막을 내리고, 용서와 화해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요셉은 지금까지 겪은 고통과 자신에게 주어진 영광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었다. 그러기에 형제들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위로할 수 있었다.
당시 대제국이었던 애굽의 총리가 자신들이 팔아 버린 요셉이라는 사실은 형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용서한다.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용서하는 일이 어찌 쉬웠겠는가.
그럼에도 요셉은 지난 일을 돌아볼 때마다 형들을 원망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다. 아버지 야곱과 가족들, 나아가 기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살리시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으로 먼저 보내셨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신앙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살아 계셔서 만물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 것이다. 나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 있음을 믿는 신앙이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8) 요셉은 자신이 애굽에 팔려 온 일조차 하나님의 오랜 섭리 안에 있음을 고백했다. 그러기에 총리가 되어 형들의 생사를 좌우할 권한을 갖고도 그들을 해치지 않았다. 오히려 용서하고 안심시켰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원망과 한탄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이런 신앙 위에 설 때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까지 용서할 힘을 얻게 된다.
요셉은 끝까지 사랑했다
야곱은 요셉을 잃은 뒤 오랫동안 슬픔 속에 살았다. 그러나 애굽에서 살아 있는 요셉을 만나 다시 기쁨을 누렸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형들은 또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기에 요셉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이제는 지난 잘못을 갚으려 하지 않을지 걱정했던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양심의 가책과 불안이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형들을 위로하며 그들과 자녀들을 돌보겠다고 약속한다. 그의 용서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만 베풀었던 일시적인 호의가 아니었다. 요셉은 끝까지 형제들을 사랑했다.
요셉의 모습을 보며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환경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믿고 있는가.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우리의 생각과 길보다 높음을 기억하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사 55:8~9). 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며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바로가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하도록 기꺼이 허락하고 필요한 배려를 베푼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요셉은 한때 노예였고 죄수였지만,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요셉의 가족이 온다는 소식을 기뻐했다. 이는 요셉이 애굽에서 쌓아 온 신뢰와 그가 감당한 역할을 짐작하게 한다.
형제들과의 상봉에서 드러난 요셉의 따뜻한 사랑도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성도 역시 신앙과 인격을 통해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말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용서와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야 한다.
나는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가. 요셉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 질문을 던진다(벧전 3:9~10).
창세기 45장에는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의 변화도 기록돼 있다. 26~27절에서는 그를 ‘야곱’이라고 부르지만, 28절에서는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다.
처음에 야곱은 아들들의 말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요셉이 전한 말과 자신을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 기운을 되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고백한다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창 45:28)
이러한 이름의 변화에서 낙심과 의심을 넘어 다시 믿음으로 일어서는 모습을 묵상하게 된다. 앞서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기로 결단한 장면에서도 성경은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다(창 43:11).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이름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두려움에 붙들린 옛사람의 모습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새사람의 모습인가.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답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한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며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골 1:10).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형제들을 끝까지 사랑했던 요셉을 통해 오늘 나의 삶을 비춰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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