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 장로
이훈구 장로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는 때는 우리의 생각과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젊고 능력이 있을 때 가장 크게 쓰임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양을 치던 여든 살의 모세를 찾아오셨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미 인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였지만, 하나님께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을까?

1. 하나님은 실패를 끝으로 보지 않으신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자랐다.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애굽 사람을 죽인 뒤 모든 것이 무너졌다. 광야로 도망쳐야 했고, 왕궁에서 자란 사람은 이름 없는 목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세 자신도 그렇게 여겼을지 모른다. 젊은 시절 품었던 꿈은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실 것이라는 기대도 점점 희미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잊지 않으셨다. 광야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모세는 불이 붙었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았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이 부르심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나님은 모세의 과거를 책망하는 말씀으로 부르심을 시작하지 않으셨다. 앞으로 이루실 일과 모세에게 맡기실 사명을 말씀하셨다. 모세에게 광야의 사십 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시간이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때로는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고,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마저 헛되게 두지 않으신다. 훗날 돌아보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2.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선뜻 순종하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도 들었다.

모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여든 살의 나이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왕을 만나 백성을 내보내라고 요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려웠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능력을 설명하기보다 함께하심을 약속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오래전 필자의 인생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미국에 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더 넓은 세상에서 나를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기도도 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뜻밖에도 미국에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해야 했고, 영어에도 자신이 없었다. 미국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여러 생각이 마음을 오갔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이 점점 분명해졌다. ‘지금까지 하나님께 미국에 가고 싶다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는 것이라면 믿고 가야 하지 않을까.’

결국 필자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가겠습니다.”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될 줄은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혼자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가족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1년 후 온 가족이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미국 파견은 단순한 해외 근무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준비하신 첫걸음이었다.

모세는 앞날을 다 알고 순종한 것이 아니었다. 필자 역시 모든 것을 알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걸음 순종할 때마다 다음 길을 보여 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배운다. 순종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먼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임을.

3. 하나님은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살리신다

마침내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다.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주어졌으며, 시내산에서는 십계명을 받았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루신 역사였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모세가 끝까지 “저는 못합니다”라며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는 뜻을 이루실 다른 길을 여셨겠지만, 모세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부르심이다.

살아오면서 필자도 조금씩 그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내 삶만 인도하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작은 선교회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그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만큼 섬기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작은 순종이 이어질수록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다. 멕시코 선교지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그곳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생겨났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깨닫는다. 내가 이룬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한 사람의 작은 순종을 통해 더 큰 일을 이루어 가셨다. 모세도 그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일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4. 돌아보니 내 삶도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필자는 가끔 모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삶을 돌아본다. 지난 세월을 천천히 되짚어 보면 하나님께서 필자의 삶에도 여러 차례 찾아오셨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우연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미국으로 오게 된 일도,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일도 그랬다. 한 걸음 앞조차 보이지 않던 순간에도 하나님은 앞서 길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래서 요즘은 미래를 생각할 때 두려움보다 기대가 크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하실지, 어떤 사명을 맡기실지, 어떤 은혜를 베푸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더욱 깊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삶의 순간마다 우리를 새로운 자리로 부르시고, 새로운 사명을 맡기신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 모세처럼 순종하며 걸어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을 때,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부족한 저를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제 능력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 하나님은 왜 모세를 부르셨는가?

-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다시 부르신다.
- 순종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첫걸음을 내딛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사람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광야의 시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사용하신다.
-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그 순간마다 함께하시고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된다.

이훈구 장로(G2G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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