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은 종교개혁 509주년을 맞는다.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라는 말을 할 때, 고대 그리스어의 데모크라시(Democracy)에서 찾는다. 즉 국민의 권리에 의한 정치 형태를 표시하는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근대와 같은 민주주의 형태는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브라이스(J. Bryce) 같은 이는 ‘구체적으로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는, 150여 년의 역사밖에 안됐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좀 거슬러 올라가면 참된 민주주의의 씨앗이 발아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Reformation) 때부터이다. 특히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John Calvin)의 사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칼빈의 조직화한 신학과 신앙은, 깊이와 오묘함에 있어서 16세기와 17세기에 구라파 전역에 영향을 끼치게 됐고, 칼빈주의 사상은 단순히 개신교를 세우거나 기독 신자의 갱신 생활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도덕 전반에 걸쳐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제주의적인 군주정치, 그리고 전제적인 로마 가톨릭의 교황정치에 정면 도전하고,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게 된 것이다. 사실 칼빈의 노작인 기독교강요(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도 불란서 왕 프랑소와즈 1세에게 바친 것이다. 칼빈은 민주정치에 관한 책을 쓰지 않았으나, 그의 기독교강요나, 그의 주석과 설교, 그의 신학 논문 등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원리가 제시되었다. 칼빈의 후기 저서들 중에 1550~1560년 사이에 출판된 성경 주석 중에 특히 신명기와 사무엘서 주석에서 칼빈의 발언은 민주주의 정체(體)를 더욱 힘 있게 주장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칼빈은 미가서 5:5절을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즉 “가장 바람직한 국민의 조건은 일반적으로 투표로서 그들의 목자를 세우는 것이다. 누구든지 힘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빼앗는다면 그는 폭군이다”라고 말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가장 확실하고 뚜렷한 방법은 투표를 통해서이다. 칼빈은 이런 선거의 제도를 성경에서 발굴해 낸 것이다. 칼빈과 루터, 멜랑톤, 부쳐 등의 개혁자들은 폭군에 대해서 저항권을 인정하였다. 특히 칼빈의 제네바 정치는 신정정치의 목적이 있었지만, 트롤취(E. Troeltsch)의 평가처럼, “칼빈주의는 권위와 시민 개인에게 주어진 복종의 의무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이란 말은, 칼빈주의의 진정한 모토였다”고 하였다. 칼빈의 신학 사상은 신본주의(本主義)에 근거한다.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하나님이시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법에 의해서 창조했듯이, 사람과 사회도 법에 따라 창조된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의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두었다. 그러므로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말도 인본주의(人本主義)적인 입장에서가 아니고, 철두철미하게 하나님 중심 한 사상체계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근대 민주주의 주창자인 로크(Locke)와 장자크 룻소(J.J.Rousseau)의 이론과는 전혀 다르다. 룻소의 이론은 국가 권력에 의한 평등의 실현을 주장한 반면, 로크는 개인의 자유를 귀히 여겼다. 이들의 민주주의의 기초는 매우 낙관주의적인 사상에 기초한다. 민중이 다수의 힘을 빌려서 독재체제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요한 칼빈과 19세기 칼빈주의 부흥 운동가인 흐룬 봔 프린스터(Groen Van Prinsterer)나 아브라함 카이퍼(A.Kuyper) 같은 칼빈주의자들의 민주주의 이론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금세기의 사상가 루이스(C.S.Lewis)가 주장한대로, 타락한 인간이 너무나 악하기에 그가 왕이든, 귀족이든, 성직자든, 성공한 기업가든, 노조의 지도자든, 그 누구도 자기 동료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트루불라드(E. Trueblood)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필요하며, 우리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칼빈주의자들은 유토피아적 상상에 대해서 늘 회의적이다. 칼빈주의자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는 단순히 백성의 소리(Vox Populi)를 듣는 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 앞서 하나님의 음성 (Vox Dei)을 먼저 들을 줄 알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앞서 이미 말한 대로 프로테스탄트 사상인 칼빈주의 사상에서 민주주의 기본 골격을 본 셈이다.
개혁교회 특히 장로교회의 정치제도는 민주주의 원형이다. 삼심제도의 재판과, 성도들이 목회자를 투표에 의해서 동등하게 선거한다든지, 임명된 장로로서의 평신도가 성직자인 목사와 동등하게 교회 행정에 동참하게 된다. 그래서 정부는 ‘피치자의 동의를 얻어서 그 정당한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이 위대한 진리가 처음부터 프로테스탄트 사상의 핵심인 칼빈주의의 중심에 견고히 심어진 것이다. 이런 원리는 화란과 스코틀랜드의 요한 낙스(John Knox)와 그 후 영국 청교도(Puritans)의 사상 원리가 되었다. 후일, 이 사상은 미국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뿌리가 되었다. 우리 한국에 프로테스탄트가 들어왔을 때 이미 민주주의도 동시에 접목된 것이다. 이것은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구 민주주의 열매만을 따라 하지 말고, 서구 민주주의의 뿌리와 토양이 무엇임을 알아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생은 죄인이며, 그 앞에서만 자유와 평등함을 깨닫고 늘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용서하며, 회개하는 성경의 사상을 가질 때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도 피고 열매도 거두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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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