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스콧 솔즈의 기고글인 '용서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책감이 들까?'(Why do I still feel guilty after being forgiven?)를 10월 2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스콧 솔즈는 복음 중심의 관점에서 지도자들이 품위와 목적의식, 정서적 건강을 갖추고 살아가도록 돕는 ‘헬시 리더스(Healthy Leaders, Inc.)’와 ‘시커모어 커뮤니티(The Sycamore Community)’의 설립자다. 30년 넘게 목회하며 뉴욕과 내슈빌의 주요 교회에서 사역했고, 캔자스시티와 세인트루이스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누군가에게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여러 번 확인하고도, 자신이 준 상처 때문에 계속 스스로를 벌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료가 직장을 잃게 된 결정 때문일 수도 있다. 배우자나 자녀에게 던진, 할 수만 있다면 거두고 싶은 한마디 때문일 수도 있다. 용서를 구했고 상대방은 기꺼이 용서했다. 이후 그 일을 다시 꺼내 비난하거나 압박하지도 않았다. 우리 역시 그 용서를 믿는다. 그런데도 혼자 있는 시간에는 당시의 장면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내가 했던 말과 상대방의 표정, 그리고 그날 이후 마음을 떠나지 않는 후회가 되살아난다.
우리는 마치 수사관이 보안카메라 영상을 돌려보듯 그 장면을 반복해서 되짚는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순간을 찾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새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는 데서 나아가, 자신이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를 찾기 시작한다. 결국 과거의 잘못이 자신의 정체성 전체를 규정하도록 내버려둔다.
물론 마음의 불편함에는 선한 역할도 있다. 깨어 있는 양심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끝없는 자기 정죄로 이어지면, 신학자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Ferguson)이 말한 ‘탕자의 의구심’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의 실패와 결점에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워지는 상태다.
다른 사람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는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에게는 그런 자비가 허락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는 저서 『자비의 왕(The Mercy King)』에서 이러한 의구심을 다뤘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없다고 여기는 이유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가장 악하고 미숙했던 순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과 그분이 이루신 구원이다.
가장 어두웠던 시절이야말로 자신의 참모습이라고 단정할 때, 우리는 스스로 내린 판결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확실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복음은 바로 그 판결의 권위에 질문을 던진다.
누가 용서할 권한을 갖는가. 그리고 용서를 받은 사람에게 남는 책임은 무엇인가.
용서를 만들어내는 대신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너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는 말은 선한 의도로 건네는 익숙한 조언이다. 대개는 자신을 벌하는 일을 멈추고 이미 주어진 용서를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표현을 자신에게 사면을 내릴 권한이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여전히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유죄라고 여겨온 사람에게는 자신이 내리는 무죄 선고 역시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반대 방향에서도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끊임없는 자책과 자기 경멸을 진실한 회개의 증거로 여기는 경우다.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피해자를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죄를 계속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평안을 누리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가볍게 여기거나 상대방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 두려워한다.
두 경우 모두 충분히 고통받았는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오래 괴로워한다고 해서 죄가 씻기는 것은 아니다. 자기 처벌이 회개를 대신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 상처에 대해 용서를 베풀 권한은 피해 당사자에게 있다. 그가 용서했다면 그 용서를 존중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우리의 책임은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돌이키며, 가능한 범위에서 피해를 회복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용서를 받았다고 모든 결과가 사라지거나 신뢰가 즉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은 책임을 감당하는 일과 자신을 끝없이 정죄하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풀리지 않은 관계를 하나님의 최종 판결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회개하고 피해를 회복하려 노력하더라도 상대방이 곧바로 용서하거나 관계를 회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용서를 강요할 수 없으며, 상대방에게 필요한 시간과 거리를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분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품고 잔치를 연다. 형이 분노하며 잔치에 들어오기를 거부할 때에도 아버지가 베푼 환대는 철회되지 않는다(눅 15:20–32).
우리 역시 풀리지 않은 관계를 슬퍼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할 수 있다. 필요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대방의 반응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성경의 초점은 우리가 스스로 용서를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용서를 믿고 받아들이는 데 있다. 자신을 향한 비난이 하나님의 자비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질 때, 이 차이를 기억해야 한다.
양심은 증인이지만 최종 재판관은 아니다
건강한 양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양심은 우리의 행동과 동기를 돌아보게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잘못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양심의 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신실한 친구나 가족, 상담자의 말에 귀 기울이듯 양심의 증언도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양심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분을 결정하는 최종 재판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양심 역시 언제나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사랑을 실천하며 자신이 진리에 속했음을 확인하는 신자들에게도 마음의 책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요일 3:19–20).
요한은 모든 죄책감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위협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요한은 신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려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온전히 아신다. 우리가 반복해서 떠올리는 실패와 부끄러운 기억 가운데 그분이 모르시는 것은 없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숨은 죄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베푸시는 불완전한 자비가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며,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근거해 용서를 베푸신다.
후회를 책임 있는 삶으로 바꿔가야 한다
용서받은 뒤에도 후회와 아픔이 남을 수 있다. 감정이 곧바로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서 용서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다시 자신을 유죄로 판결할 필요도 없다.
그 기억을 통해 아직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사과하거나 바로잡을 일이 있다면 실천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움을 구하며 삶을 바꿔가야 한다. 이미 고백하고 용서받은 일이라면, 끊임없이 자신을 벌하는 대신 받은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충분히 오래 괴로워했다는 데 있지 않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그리스도께 있다. 자신의 양심이 내리는 판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용서받은 사람으로서 오늘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를 가볍게 여기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이 자신의 삶 전체를 규정하도록 두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에 응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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