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조희대 대법원장. ©뉴시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에 대해 다음 주 공식 입장을 내놓기로 했다. 조 대법원장이 오는 3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도 불출석하기로 하면서, 장기간 이어진 대법관 공석과 청와대·대법원 간 인선 갈등이 다음 주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기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다른 후보자를 제청할지,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천거 단계부터 절차를 다시 밟을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8일 퇴근길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자세한 내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다음 주 중 정리되는 대로 공식적으로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 1월 추천 이후 209일 만에 서면 제청

이번 대법관 제청 갈등은 지난 1월 시작됐다. 후보추천위는 1월 21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로 김민기 수원고법 고법판사, 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조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노 전 대법관이 3월 3일 퇴임한 이후에도 후임자를 제청하지 않았다.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하는 동안 청와대와 대법원이 최종 후보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조 대법원장은 후보추천위가 후보를 압축한 지 209일 만인 지난 18일 손 후보자를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서면 제청했다. 이와 함께 9월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제청했다.

청와대는 지난 28일 두 후보 가운데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재제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는 “7개월 넘게 제청하지 않다가 실질적인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손 후보자를 일방적으로 서면 제청했다”며 절차적 정당성과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대법원 측은 대법원장이 헌법에 따라 제청권을 행사했으며, 이후 대통령과 국회가 각각 임명권과 동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 기존 후보 제청하거나 추천 절차 원점 재개

가장 빠른 방안은 지난 1월 추천된 후보 가운데 손 후보자를 제외한 김민기·박순영·윤성식 후보 중 한 명을 제청하는 것이다. 이 경우 청와대와 대법원의 갈등을 봉합하고 지난 3월부터 이어진 대법관 공석도 비교적 빠르게 해소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에 따라 대법원장의 선택 범위가 기존 후보 3명으로 좁아지면 헌법상 제청권이 사실상 제약되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도 법원 안팎에서 나왔다.

다른 방안은 후보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후보자 천거부터 심사와 추천까지 모든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것이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추천위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위원회가 해산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지만,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의 후속 절차는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

2012년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을 당시 대법원은 후보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인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했다. 이후 재제청과 국회 인사청문 절차까지 약 3개월이 걸렸다. 다만 후보자 자진 사퇴 사례여서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번 사안과는 차이가 있다.

대법원이 추천위 재구성을 선택하면 실제 재제청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기존 추천위가 후보 추천을 마치고 해산된 것으로 보는 만큼 추천 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밟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관측도 나왔다.

◈ 국민의힘 “헌법 유린”…법사위 불출석도 변수

국민의힘은 청와대가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한 것을 “헌법 유린”으로 규정하며 임명동의안을 즉시 제출하라고 촉구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9일 논평에서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을 거부한 것은 이승만 정부 이후 전례가 없는 사법권 침해”라며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저버린 초법적 폭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의 마음에 드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다시 제청하라는 것이 어떻게 사법부 독립을 위한 것이냐”며 “대법관을 입맛대로 골라 담겠다는 ‘대법관 쇼핑’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태규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도 “헌법 제104조에는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을 뿐, 대통령이 제청을 되돌려 보낼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보자의 자격은 국회가 인사청문회에서 판단할 일이지 대통령이 사전에 걸러낼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조 대법원장의 법사위 현안질의 불출석도 갈등의 변수로 꼽혔다. 조 대법원장은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대법원장의 헌법상 독립적 권한인 제청권 행사에 관해 증언하도록 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에 반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의 불출석과 재제청 요구에 대한 대응을 지켜본 뒤 후속 조치를 검토할 방침이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현안질의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다음 단계로 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고, 서영교 법사위원장도 “탄핵 사유는 분명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법원이 기존 후보 가운데 한 명을 다시 제청하면 인선 갈등은 봉합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 반면 추천위를 새로 구성하면 대법관 공석이 더 길어지고 청와대와 대법원, 여권 간 대립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다음 주로 예고된 조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가 손봉기 대법관 후보 재제청 갈등의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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