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식 선교사
주재식 선교사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깊은 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범한 이가 아니었다. 유대인의 지도자이자 율법을 가르치는 학자, 공회원. 세상의 잣대로 보면 하나님 나라에 가장 가까이 선 이처럼 보였을 니고데모다. 성경은 그의 마음속 질문을 세세히 기록하지 않으나,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는 깊은 영적 갈증이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예수님은 그가 묻기도 전에 단호하고도 깊은 진리를 던지셨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평생을 붙들어온 신앙의 틀—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적 자부심, 율법에 대한 지식, 경건한 삶의 확신—안에서는 도무지 소화할 수 없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기존의 조건 위에 무언가를 더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의지해 온 모든 근거를 내려놓게 하셨다.

묵상할수록 니고데모의 곁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브라함의 혈통도 아니요, 율법의 학자도 아니다. 내세울 만한 의도 없기에 돌아보면 부족함만 선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 자리에서 소망이 피어오른다.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했다면 나 역시 마땅히 거듭나야 한다. 그의 지식이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었듯, 나의 어설픈 노력과 열심 또한 나를 구원할 수 없다. 구원의 근거는 인간에게 있지 않다. 그 진리 앞에 서는 순간 비로소 은혜가 보인다. 주님은 자격 있는 자를 찾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셨다. 사람이 쌓아 올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 생명만이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한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내가 주님을 찾아온 이야기보다,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오신 흔적이 더 선명하다. 내가 믿음을 지킨 줄 알았으나 실상은 주님이 나를 붙들어 주셨고, 내가 길을 찾은 줄 알았으나 주님이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내 안에서 구원의 근거를 찾으려 하면 불안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근거를 발견할 때 비로소 참된 평안이 임한다. 내 연약함은 여전하나 그분의 은혜는 마르지 않는다.

니고데모의 밤은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매번 그 밤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 밤마다 주님은 우리의 자격을 묻지 않으시고, 오직 당신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신다.

구원의 문 앞에서 남는 것은 나의 의도, 나의 열심도 아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뿐이다. 오늘도 우리는 그 은혜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구원에 이르는 길에는, 오직 은혜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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