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
강태광 목사

한국교회가 쇠락하고 있다. 성도 수가 급감하는 것은 물론, 젊은이들이 심각한 수준으로 교회를 떠난다. 그런데 더욱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것은 한국교회의 이런 현상을 아파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자성하지 않는가? 한국교회의 장래를 걱정하는 분들이 없지 않겠지만 그들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

우선 목회자들이 철없어 보인다. 이 흔들리는 한국교회에서 제몫 챙기기에 급급하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젊은 목회자는 근사한 여행을 준비하고 늙은 목회자는 풍요로운 은퇴를 준비한단다. 모두 탐욕스럽다. 목회자의 탐욕이 한국교회를 흔들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심각성을 모른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신 경고 말씀처럼 안약을 사서 발라 우리 목회자들의 눈이 열렸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보자! 아들과 개척하겠다며 40억을 요구하다가 교회 지분을 운운하던 원로목사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의 책들을 전부 사서 밑줄 그으며 읽었고, 그를 존경했었다. 이번에 그의 모든 책을 버렸다. 교회를 떠나면서도 자기 잘못을 보지 못하는 듯해서 안타까움을 넘어 수치스럽다.

욕설 파문으로 물러난 목사가 퇴직 예우금 협상 중이란다. 천문학적 예우금이 거론된다. 그와 동조하고 보조를 맞춘 장로들도 치리 대상이다. 담임목사의 치명적인 약점을 눈감아 주며 그 권력에 기생했다. 그 장로들이 퇴임 목사의 예우금과 노후 대책을 의논하고 결정한다니 실소가 절로 나온다.

애꿎은 성도들이 피해를 보는 듯해서 안타깝지만, 이런 교회는 징계받아야 하지 않나? 자숙해야 할 것 같은데 발 빠르게 후임자를 세운다.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이 교회가 뿜어내는 악취로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교회를 떠나고, 얼마나 많은 연약한 성도들이 믿음에서 떨어질까? 목사와 장로, 교회 관계자가 이런 사실을 알까? 여전히 언론 탓하고 피해자를 탓한다. 문제를 보지 못하니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논란이 되는 예우금은 언제부터? 왜? 한국교회에 등장했을까? 왜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예우금을 전달하기 시작했을까? 가난했던 시절, 성미로 연명하던 목회자가 다른 교회로 부임할 때 이사비용이 없었다. 그때 성도들은 쌈지돈을 모아 떠나는 목사님께 예우금으로 드렸다. 이사비용과 다음 달 사례비를 받기까지 목회자 생존을 돕는 생존 대책이었다. 예우금은 목회자에게 청빈의 상징으로 성도들에겐 목회자를 향한 사랑과 섬김의 상징으로 전해진 유산이었다.

그런데 이런 근사하고 품격 있던 예우금이 오늘날 목회자를 타락시키고 교회를 시험 들게 한다. 담임 목사의 은퇴를 앞둔 교회 권사들이 ‘우리 목사님이 은퇴할 때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며 기도한단다. 참으로 웃픈 얘기다. 최근 은퇴하는 담임 목사 예우금으로 시험 들어 힘들어하는 성도를 만났다. 힘차게 목회하고 믿음으로 살라고 강조하시던 목사님이 돈돈돈 한다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한국 사회는 목회자들이 평생 사례비를 받고, 주택과 차량비, 자녀 교육비 지원을 받았는데 왜 과도한 은퇴 예우금이 필요한지 묻고 있다. 이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까? 20년 혹은 30년을 안정된 교회에서 목회한 것을 감사하며 큰 감사헌금을 교회에 드리는 목회자는 없을까? 과도한 은퇴 예우금을 거절하고 빈손으로 퇴임하여 작고 소박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목회자는 없을까? 파격적 가난을 선택한 청빈 목회자를 보고 싶다.

물론 훌륭한 모습으로 은퇴하시는 목사님들이 많다. 100여명 성도가 모이는 교회를 소박하게 은퇴하시고, 생활을 위해 택시 핸들을 잡으시는 목사님이 계셨고 장애우를 돌보는 일로 사역과 삶을 이어가시는 목사님도 계셨다. 이런 목사님들의 용기와 실천력에 감탄한다. 나는 그 목사님들의 용기와 도전 그리고 검소함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한국교회는 속히 한국 사회에서 운용되는 노후 보험을 목회자에게 적용해야 한다. 은퇴 목회자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노후 보장과 노후 삶의 품격을 위해 과도한 예우를 요구하는 문화는 속히 개혁되어야 한다. 그리고 목사님들이 가르친 것처럼 진정한 노후 보장은 하나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교회는 존경받을까? 지난 2026년 2월 기윤실이 발표한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는 충격적이다. 국민의 19%만이 교회를 신뢰하고, 국민의 75.4%가 교회를 믿을 수 없단다. 예우금 논란이 될 때마다 교회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복음 전파는 큰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모를리 없는 목사님들과 그의 측근(?)들 예우금 요구가 안타깝다.

예우금 논란을 생각하다 문득 한경직 목사님을 생각했다. 남한산성 움막에서 여생을 보내셨던 그 어른이 새삼 존경스럽다. 사표가 되시는 그 어른의 아름다운 전통이 내팽개쳐지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는 남한산성 기슭의 아름다운 사연을 다시 세울 수 없을까? 한국교회가 시시하고 천박한 논쟁을 벗어나 찬란한 희망과 생명의 메시지로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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