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위기가구 사망 사건을 계기로 복지 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에 나섰다. 도움이 필요해도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지원받기 어려웠던 기존 복지 체계를 손질하고, 국가가 먼저 찾아가 지원하는 ‘적극적 복지’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위기가구 지원을 위한 복지안전매트 강화 방안’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은 지난 3월 울산 울주군과 전북 임실군 등에서 발생한 위기가구 사망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마련됐다.
정부는 기존 복지안전망이 예측하지 못했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단순한 복지 전달 체계를 넘어 보다 촘촘한 ‘복지안전매트’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특히 복지부는 신청주의 중심의 복지 시스템을 개선해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등 일부 급여를 신청 없이 자동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위기가구에 대한 직권신청 범위를 확대하고, 공무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에도 나설 계획이다.
아동수당·부모급여 자동지급 추진…직권신청 법 개정 검토
복지부는 현재 신청을 원칙으로 운영되는 주요 복지급여 가운데 지원 대상 여부가 명확히 확인되는 급여에 대해서는 자동 지급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사회보장기본법과 사회보장급여법, 아동수당법,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기초연금법, 장애인연금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현재는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첫만남이용권 등을 받기 위해 출생 신고 이후 별도로 복지급여를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출생 신고만 완료되면 별도 신청 없이 자동으로 지급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 등 선별급여 역시 정부가 보유한 행정정보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기존 탈락자나 다른 복지급여 수급 이력이 있는 경우 이를 신청한 것으로 간주하고, 소득과 재산 정보를 조사해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또 복지멤버십 가입자에 대해서는 연 2회 이상 소득·재산 변동 여부를 조사해 복지급여 수급 가능성을 먼저 안내하는 체계도 강화한다. 정부는 위기가구 보호 과정에서 당사자 동의가 없어도 공무원이 직권으로 복지 신청을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도 추진한다.
현재는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직권신청이 허용되고 있어, 실제 현장에서는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당사자가 거부하면 복지 지원이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았다.
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한부모가족지원제도를 중심으로 미동의 직권신청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금융재산 조사 절차를 완화하는 한편 담당 공무원 면책 규정도 함께 마련해 현장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법 개정 전이라도 미성년자와 발달장애인 포함 가구에 대해서는 직권신청을 우선 허용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부터 금융재산 조사를 제외한 소득·일반재산 조사만으로 우선 생계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희망드림 꾸러미’ 지원…위기가구 초기 접촉 강화
정부는 위기가구와의 초기 관계 형성을 위한 현장 지원책도 함께 확대하기로 했다. 복지 공무원이 위기가구를 처음 방문할 때 식료품과 생필품 등이 담긴 ‘희망드림 꾸러미’를 함께 전달해 상담 거부감을 줄이고 초기 접촉을 원활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실제 현장에서 공무원의 방문 자체를 거부하거나 연락을 피하는 사례가 많아 위기가구 상황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단순 상담보다 생활 지원 물품을 함께 제공할 경우 신뢰 형성에 도움이 되고, 이후 복지 연계도 보다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도 한층 고도화된다. 기존에는 전기료와 수도요금 등이 3개월 이상 연속 체납될 경우 위기 징후로 판단했지만, 앞으로는 사용량 변화 자체를 분석해 보다 이른 단계에서 위험 신호를 포착하기로 했다.
또 현재 1~2개월 단위로 수집하던 위기 정보를 매월 확보해 지자체에 제공하고, 보다 신속한 대응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특히 연 2회 이상 반복 발굴되거나 고독사·위기아동 시스템에서 중복 위험군으로 확인된 가구는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지자체가 우선 관리하도록 지원한다.
복지부는 그동안 복지사각지대 발굴 규모가 꾸준히 확대됐지만, 단순 숫자 증가를 넘어 실질적인 지원 연결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긴급복지 문턱 낮춘다…아동·노인 돌봄 지원 확대
정부는 위기가구를 발견하고도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 긴급복지 지원 기준도 보다 유연하게 운영할 계획이다.
위기 상황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금융재산 기준 상향도 검토한다. 또 현장에서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긴급지원심의위원회를 활용해 기준을 일부 넘더라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다자녀 가구나 인구감소지역의 현실을 고려해 자동차 재산 기준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아동 돌봄 지원도 확대된다.
정부는 12세 이하 자녀가 있는 한부모·조손·장애·청소년 가구 등에 제공하는 아이돌봄서비스 지원 시간을 기존 연 960시간에서 1080시간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아동학대나 방임이 의심되는 위기아동 가구에 대해서는 시군구 내 아동·복지 관련 부서가 공동 사례 관리를 추진한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체포하거나 구속할 경우 보호가 필요한 아동 존재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지자체에 보호조치를 의뢰하도록 하는 법안 논의도 지원할 계획이다.
노인 돌봄 분야에서는 장기요양 단기보호기관과 치매안심병원을 확대하고, 가족 돌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가족휴가제와 정서 지원도 강화한다.
복지부는 자살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개입 체계도 함께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AI 기반 복지상담 도입…현장 복지 인력도 확대
정부는 복지 현장의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인공지능(AI) 기반 복지상담 서비스 도입도 추진한다.
현재 약 2만4000명 수준인 읍면동 복지 담당 공무원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위기가구 보호 성과가 우수한 공무원과 지자체에 대해서는 포상금 등 인센티브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이번 대책은 신청해야만 지원받을 수 있었던 기존 복지 체계를 개선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수동적 복지에서 선제적으로 찾아가는 적극적 복지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 빈틈없는 복지안전매트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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