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문제는 중국인의 관념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안전해
기본적으로 옳은 교리 따르게 하려면 강요 말고 조언해야
중국인들이 우리와 다른 시각으로 보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점은 언제나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성의 차이가 교회의 장래 발전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도덕 성품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그들의 마음이 우리 마음과 더 비슷해질수록,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참뜻을 깨달아 더 철저하게 변화되겠지만 말입니다.
중국인 나름대로 이상적으로 여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중국인과 외국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이끌고 운영하는 일에 어려움이 생길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방법은, 중국인 문제는 옳고 그름에 관한 중국인의 관념에 따라 결정하게 맡기는 것입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기본적으로 옳은 교리를 따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거나 의심되는 경우, 우리가 조심스럽게 조언하는 것입니다.
중국인의 양심이 우리의 본보기를 따르도록 훈련되지 않은 상태인데, 그들을 얽매는 규칙을 제정하거나 도입하면 안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규칙이 무익한 것이 아니라 해로운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따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규칙을 강요할 때, 우리를 속이라고 그들에게 빌미를 주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인은 매우 실용적입니다. 따라서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성이나 의무가 없는 경우, 단지 외국인 선교사가 옳게 여긴다는 이유로 그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그냥 두어야 할 필요성이나 의무가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준수사항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지만 중국인은 그런 사항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로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 그들이 의무를 인식할 때까지 계속 가르쳐야 합니다. 외국 선교사의 뜻이니까 무턱대고 그 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하면 절대 안 됩니다. 강요는 지혜롭지 못합니다. 진심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와야 참 신앙입니다. 이에 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종교를 속박과 짐으로 만듭니다.
완전히 독단적인 규칙에 복종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한 삶의 원칙은 양심에 깨달음을 주지 못합니다. 로마서 14장 23절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진리가 아닙니까? 믿음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되려면 ‘믿음’은 반드시 지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오직 당사자 자신이 ‘마음으로 확신할 때만’ 믿음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됩니다. 종교에서 이성을 분리하는 것은 자멸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끝없이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그것이 선교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발췌: 존 로스 선교사의『만주선교 방법론』
번역: 순교자의 소리(www.vomkorea.com), 감수: 리진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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