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지니고 살아간다. 이것은 정체성(正體性, Identity)에 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나 자신을 타인과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는 고유한 나의 존재감, 나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바로 정체성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자아개념(Self-Concept)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보다 심리학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리학자들은 이 자아개념이 분명히 형성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사이의 건강한 연결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이 누구인가, 타인과 구분되는 개성은 무엇인가, 타인은 이러한 나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둘 간의 차이를 어떻게 조율하며 성장할까에 대한 총체적이고 진중한 고민이 바로 정체성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적인 발달 심리학자라고 할 수 있는 에릭슨(E. Erickson)이 이 정체성 형성의 결정적 시기를 청소년기라고 이야기한 후, 이 주장은 대개 정설과 같이 여겨져 오면서 오랫동안 청소년기는 자아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로 인식 되어왔다. 물론 청소년기는 신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기이고, 자신과 세상에 향한 관심이 급증하는 결정적 시기인 것은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긴 인생에서 단지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를 청소년기에 집중시킨다는 것은 인생의 질문과 답을 내리는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한다. 사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는 존재가 아닌가?
또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근거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소유 중심이 되는 문제이다. 최근 들어 자존감, 자기애, 힐링, 치유 등의 용어들이 남용되면서 지나치게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것을 본다. 물론 상처가 치유되고 자존감이 회복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자기 객관화되지 않은 자기애는 자기중심성을 야기하고 자신만이 상처받았다고 주장하는 미숙한 자기 중심성이 정체성과 혼용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또한 존재(Being)로서의 정체성보다 무엇인가 세상이 인정할 만한 것을 소유한 것(Having) 혹은 선하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하는 것(Doing)에 치중하며 본질적인 정체성이 흔들리는 예도 많이 보게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세례 요한은 세례 요한 자신의 경건 생활이나 타인의 평가 어느 측면에서도 얼마든지 자랑할 만한 정체성의 근거들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이 유대인들로부터 정체성에 질문에 대해 답하도록 추궁당하는 것을 본다. 세례 요한은 그 인기에 영합하여 자신을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수긍하고 인정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한 평가 또한 나 자신을 설명하는 일부라고 여기며 타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나 혹은 사람들이 대단하게 생각하는 선지자 중의 하나로 규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 노예와 같은 존재로 규정한다(요한복음 1장 27절). 그는 자신이 세상의 기준에서 평가절하될 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확인하는 것에 분명한 용기와 믿음이 있었다.
기독교인은 안달하며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세상을 향해 구차하고 조급하게 소리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다. 자신이 어디 출신인 것,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그러한 규정에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광야와 같은 땅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분명히 외칠 수 있는 단단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소유가 많든 적든 자유로울 수 있고(빌립보서 4장 12절), 설령 자신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혹은 부족한 자신의 행위에 절망스러울 때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이 정체성을 주시고자 기꺼이 골고다의 십자가를 순복하신 우리의 구주이시다. 세상에서 요구하는 ‘너는 누구인가’라는 추궁 속에서 허둥대지 않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나 자신을 정체성으로 선포하는 것, 사순절 한 가운데서 회복되어야 할 우리의 근원적인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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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