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중국화는 중국 정부의 목표를 위해 기독교를 길들이는 것
진정한 ‘기독교 중국화’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해

오늘날 기독교를 ‘중국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중국화를 누군가가 가장 훌륭하게 정의했다. “이는 종교를 중국 문화에 강제로 동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종교를 중국 공산당에 굴복시키는 것을 포함한다.”1)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기독교를 중국화하는 사업을 시작하기 오래전부터 존 로스(John Ross) 같은 서양 선교사들이 이미 기독교를 ‘중국화’ 해오고 있었다. 물론 ‘중국화’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관건이다. 중국은 이제 곧 세계에서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된다. 따라서 전 세계교회가 중국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의 중국화를 인정하느냐에 따라 중국과 세계 기독교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존 로스 선교사의 『만주선교 방법론』
존 로스 선교사의 『만주선교 방법론』 ©순교자의 소리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기독교 신앙은 현지 실정에 맞게 ‘상황화된’(contextualized) 신앙이다. 예일 대학에서 선교와 세계 기독교를 강의하는 라민 사네(Lamin Sanneh) 교수가 지적한 대로, “기독교는 번역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는 물이 축축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다.”2)

심지어 기독교에는 ‘원래의’ 언어도 없다. 기독교를 세우신 예수님이 직접 말한 언어(아람어)와 그 말을 기록한 언어(그리스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 기도, 찬송, 계명 같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표현은 언제나 그 지방 토착어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가 쓰는 언어로 말씀하신다.

번역자들은 잘 알겠지만, 번역은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신학이다. 번역하겠다는 결정까지도 신학적이다. 우리 한국 순교자의 소리(VOM, Voice of the Martyrs Korea)는 북한 사람을 섬기는 사역을 할 때, 북한 방언으로 번역된 성경을 사용한다. 물론 한국어 성경이 더 인정받아 널리 보급되었지만, 우리는 북한어 성경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북한어로 말할 때, 북한 사람이 더 주의 깊게 듣고 뜨겁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존 로스도 최초로 신약 성경을 조선어로 번역했을 때, 똑같은 이유에서 학문적 언어 대신 대중적 언어를 택했다. 우리는 중국 소수 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가능하면 그 부족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사용한다. 이러한 결정은 말씀(Word)이 육신이 된다는 성경의 선언과 일치한다. 그런데 그 말씀은 특별하거나 대단한 육신이 아니라 가장 흔하고 평범한 육신, 즉 우리 자신의 육신이 된다. 그 말씀은 세리처럼, 창녀처럼, 죄인처럼 말씀하신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언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은혜롭게도 그 언어로 말씀하신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새롭게 추진하는 중국화 프로그램이 중국의 기독교를 변혁하기 위한 새롭고도 중요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실, 중국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유일한 기독교가 바로 중국화 된 기독교였다. 중국 기독교에는 서양 기독교를 본뜬 ‘형식’이 없었고, 선교사들이 일단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러한 형식에 근거하여 사소한 부분들을 적용하지도 않았다. 서구 기독교가 기독교를 두드러지게 나타냈을 때도, 중국에는 ‘서구 기독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서구의 다양한 교파들만 있었다.

로마 가톨릭의 신앙 표현 방식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예수회 교단과 프란체스코 교단은 매우 다른 신앙 개념을 전파하는 데 몰두했다. 이 두 수도회 내부에서조차,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면들과 관련하여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조상에게 제사하는 관습을 중국 기독교인에게 허락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일례이다.3)

중국에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와 가톨릭이 나타낸 차이점, 가톨릭과 개신교가 드러낸 차이점, 개신교와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가 보여준 차이점을 이런 식으로 짚어나가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이들은 각기 매우 다른 점들을 강조하며 중국인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만주선교 방법론’ 영문판 사진
‘만주선교 방법론’ 영문판 사진 ©Legare Street Press

중국에서 사역한 선교사들은 중국의 서구화보다 기독교의 중국화에 훨씬 이바지한 것 같다. 라민 사네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토착어로 성경을 번역한 결과, 선교사는 전문가 지위를 종종 상실했다. 그러나 토착어 성경 번역의 중요성은 그러한 결과를 무색하게 했다. 기독교로 회심한 중국인 신자들은 토착어로 번역된 성경을 갖추자 문화, 정치, 종교적으로 외국이 지배하는 모든 제도가 정당한 것인지 한결같이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 중대한 역설이 있었다.

토착어로 번역된 성경, 그리고 그것의 토대가 된 더 광범위한 문화, 언어적 사업은 토착민의 민족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단과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 전체를 창출한 사람은 바로 선교사, 즉 외국 세력이었다.

선교와 식민지 건설이 종종 연결된다는 주장을 이러한 역설이 무너트린다고 나는 확신한다. 중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세력은 토착어 성경 번역과 선교사들의 다른 활동으로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4)

존 로스의 책, 『만주선교 방법론』(Mission Methods in Manchuria)은 이러한 진리를 충분히 증명한다. 이 책에서 존 로스는 실제 사역에 적용했던 선교 철학과 방법론을 상세히 이야기한다. 아울러 그는 중국이 서구 세력에 가장 수치스럽게 굴욕당했을 때조차도 기독교 선교사는 중국인을 모욕하지 않았으며, 우월하다고 알려진 서양의 지혜에 중국인들을 억지로 굴복시키는 데 열중하지 않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중국인의 양심이 우리의 본보기를 따르도록 훈련되지 않은 상태인데, 그들을 얽매는 규칙을 제정하거나 도입하면 안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규칙이 무익한 것이 아니라 해로운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따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규칙을 강요할 때, 우리를 속이라고 빌미를 주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인은 매우 실용적입니다. 따라서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성이나 의무가 없는 경우, 단지 외국인 선교사가 옳게 여긴다는 이유로 그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그냥 두어야 할 필요성이나 의무가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준수사항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지만 중국인은 그런 사항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로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 그들이 의무를 인식할 때까지 계속 가르쳐야 합니다. 외국 선교사의 뜻이니까 무턱대고 그 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하면 절대 안 됩니다. 강요는 지혜롭지 못합니다. 진심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와야 참 신앙입니다. 이에 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종교를 속박과 짐으로 만듭니다.

완전히 독단적인 규칙에 복종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한 삶의 원칙은 양심에 깨달음을 주지 못합니다. 로마서 14장 23절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진리가 아닙니까? 믿음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되려면 ‘믿음’은 반드시 지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오직 당사자 자신이 ‘마음으로 확신할 때만’ 믿음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됩니다.”5)

 글쓴이 에릭 폴리 목사(오른쪽)와 감수자 리진만 선교사(왼쪽)
글쓴이 에릭 폴리 목사(오른쪽)와 감수자 리진만 선교사(왼쪽) ©리진만 선교사 제공

이 책을 읽으면, 존 로스가 중국 문화를 서구화하는 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존 로스는 중국 문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평범한 중국인 남자와 여자에게 집중했고,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기를 열망했다. 이런 점에서, 아마 그는 이례적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선교사였을 것이다. 사네가 지적한 대로,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건설이라는 가치보다는 토착민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가치를 자신들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6) 물론 선교사들이 군함이나 상선을 타고 외국 항구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애국심에서가 아니라 편의상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지만, 존 로스가 민족적 차이점을 중요하지 않게 여긴 것은 아니었다. 존 로스는 중국 교회가 문화적으로 서구 교회에 동화되게끔 노력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사실, 사네가 주목한 대로, “기독교 선교는 언어, 사회적 접촉, 소수민족 집단의 기독교 운동 참여 같은 분야에서 다원주의(pluralism)를 확대하고 심화했다. 세계 공통어가 날로 세력을 넓혀가는 상황에서, 선교는 세계 공통어에 위협받는 언어들을 보존하는 데 한몫을 했다.”7)

알려진 대로 중국 공산당이 중국 기독교에서 서양 문화의 틀을 지워버릴 목적으로 기독교를 ‘중국화’하는 일을 시작했으면서, 동시에 자국 내 소수민족 집단들에게는 국수주의자처럼 중국 문화만 강요한다는 사실은 모순적이다. 이는 상당 수준의 민족적 당파심으로, 존 로스 시대의 서양 선교사들이 그것을 보았다면, 대단히 부적절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로스는 오직 한 가지 영역에서만, 중국인 회심자가 서양 선교사를 더 많이 닮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리스도를 닮는’ 영역이다. 이 책에서 존 로스는 “물론, 인간의 도덕 성품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중국 사람들 마음이 우리 마음과 더 비슷해질수록,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참뜻에 깊이 영향받아 더 철저하게 변화되겠지만 말입니다”8)라고 기록했다.

이는 서양의 제국주의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 자체의 본질에서 비롯된 의견으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 22절에서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라고 말한 것과 같다. 따라서 선교사를 평가하는 잣대는 중국을 더 ‘서구화’하느냐 ‘중국화’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부족, 모든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구원하느냐는 것이다.

존 로스가 추진한 기독교의 진정한 중국화와 중국 공산당이 추진한 그것의 모조품의 차이가 바로 그 점에 있다. 진정한 중국화는 중국 정부의 목표를 촉진하거나 늦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가는 길로 데려오고, 그 길에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기 위해서만 힘쓴다.

가짜 중국화는 기독교를 길들이기 위해 애쓴다. 가짜 중국화는 기독교를 공산당의 목적지와 ‘동일한 목적지로 통하는 또 하나의 길’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 목적지란 시진핑과 공산당이 그리는 중국의 꿈이다. 그러나 공산당 정부에 길들여진 기독교는 사람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지 못하는 기독교는 절대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인은 이 땅의 권력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 권력자들의 목표와 그리스도의 뜻을 하나로 섞지 말라는 명령도 받았다. 사실, 기독교인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시민으로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이 정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예수님 가르침의 참뜻에 깊이 영향받을 때, 우리는 자신에게 덜 집중하고 이웃 사랑에 더 집중한다. 우리를 더 나은 시민으로 만드는 것은 국가 사랑이 아니라 이웃 사랑이다. 존 로스의 『만주선교 방법론』은 그 이웃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보여준다. 이웃 사랑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실천이다. 따라서 이 책이 기록된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우리 삶에 도전하고,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미주
1) AsiaNews.IT, “The fruits of sinicization: worshiping the ‘god’ Xi Jinping,” AsiaNews.IT. 2018년 11월 24일 접속. http://www.asianews.it/news-en/The-fruits-of-sinicization:-worshiping-the-’god’-Xi-Jinping-45496.html.
2) Lamin Sanneh, Whose Religion is Christianity? The Gospel Beyond the West(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3), p. 99.
3) Cf. David H. Bays, A New History of Christianity in China (West Sussex: Wiley-Blackwell, 2012), 특별히 1장과 2장을 주목하라.
4) Lamin Sanneh, “Christian Missions and the Western Guilt Complex,” Religion Online. 2018년 11월 22일 접속. https://www.religion-online.org/article/
christian-missions-and-the-western-guilt-complex/).
5) 존 로스, 『만주선교 방법론』 39-40쪽.
6) Lamin Sanneh, “Christian Missions and the Western Guilt Complex,” Religion Online. 2018년 11월 22일 접속. https://www.religion-online.org/article/christian-missions-and-the-western-guilt-complex/
7) 위의 책.
8) 존 로스, 『만주선교 방법론』 39쪽.

※존 로스 선교사의 『만주선교 방법론』을 원하시는 분은 전화(02-2065-0703) 및 www.vomkorea.com 을 방문 연락 바랍니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 CEO 에릭 폴리 목사
(감수: 리진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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