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송아지와 빛나는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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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5–26절에서 인간 타락의 결정적인 순간을 다시 한 번 짚어낸다. 그것은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거짓으로 바꾸는” 선택이다. 진리는 고정된 것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조물주를 예배해야 할 자리에 피조물을 앉히는 순간, 예배의 방향은 완전히 뒤집힌다.

바울이 반복해서 지적하듯, 인간의 죄는 단순한 무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을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것으로 채우는 것이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는 삶은 겉보기에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서를 잃은 예배다. 영원히 찬송받으셔야 할 분을 외면할 때, 인간은 찬송의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26절에서 바울은 다시 한 번 무거운 표현을 사용한다. “하나님께서 내어버려 두셨으니.” 이것은 감정적 포기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판단이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삶의 방향 전환이다. 그러나 인간이 끝까지 방향을 바꾸지 않을 때, 하나님은 더 이상 붙잡지 않으신다. 바울은 이 비극적인 상태를 ‘내버려 두심’이라 부른다.

이 ‘내버려 두심’은 무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깊은 슬픔이 담긴 결정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 없는 기계로 만들지 않으셨다. 강제로 순종하게 하거나 억지로 사랑하게 하지 않으신다. 자유를 주신 하나님은, 그 자유가 끝내 하나님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고정될 때, 그 선택을 존중하신다. 그것이 바로 유기라는 성경적 언어의 무게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사랑이 거절당했을 때 나타나는 아픔이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진노를 먼저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진실하고 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끝까지 외면한 인간에게 남는 것은, 결국 자신이 선택한 욕망의 지배다.

오늘의 묵상은 우리를 멈춰 세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무엇으로 바꾸어 놓았는가. 삶의 중심에서 조물주는 여전히 찬송받고 계신가, 아니면 피조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가. 돌이키지 않는 선택은 결국 내버려 두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직 진리를 들을 수 있을 때, 회개의 문은 열려 있다. 하나님을 다시 하나님 되게 하는 자리로 돌아갈 때, 예배는 회복되고 삶은 다시 방향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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