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데카르트가 의심한 이유는 가장 확실하고 참된 것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가 의심하면서 자신과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것 같이 참 신앙 안에 있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모습이 참 믿음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살펴서 확증해야 한다. 착각은 남이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속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살피거나 충분한 시간을 갖지 않고 너무 쉽게 단순화시켜 확신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 안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 조급한 사람, 강한 욕심에 끌리는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게 된다. 참된 신앙생활은 삶의 매 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동시에 사탄의 궤계를 분별하여 거절함으로 어리석게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김세연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진리의 궁극적인 원천이시기 때문에 창조와 성경 사이의 모순은 상상할 수 없지만, 인간의 연구가 가지는 오류라는 특성 때문에 신학과 과학 사이에 명백한 모순이 발생할 수 있고 실제로 발생한다. 신학과 과학은 하나님의 계시와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전용과 처리를 나타낸다. 과학을 등한시하는 것은 창조를 통해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을 등한시하는 것이고, 신학을 등한시하는 것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을 등한시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신앙의 형성은 성령과 인간 지성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벗어날 수 없다. 영적(초자연적) 힘과 지적(자연적) 힘의 변증법적 융합은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에 근거한 효과적인 부르심을 인식하고 응답할 때, 신앙이라는 초월적 인지 지식(nōtiō, knowledge), 신뢰(fiducia, trust), 뿌리 깊은 확신/신념(assensus, assent)을 만들어 낸다.
제임스 라일리 이스텝 & 조나단 H.킴 - 그리스도인 형성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성령세례는 절대로 조건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 펑크 난 자동차처럼 성도로서 권능 있는 삶을 살 수가 없다. 무엇보다 무기력한 믿음과 답답한 사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방황했다. 언제 사명을 발견했는가?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충만을 입은 후 비로소 사명을 깨닫고 제자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과거의 모습이 겁쟁이였다면 성령세례 받은 후 성령으로 충만한 모습은 담대한 용사와 같았다. 목숨까지도 포기하는 사도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배웠다고 해서 말씀대로 살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배운 말씀을 삶에 적용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우리가 오해하거나 속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성도로서 진리 말씀을 몰라서 라고 생각한다. 둘째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제자훈련 하면 말씀 따라 살 수 있을 것 같다. 결단도 한다. 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가르침대로 살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삶은 성령충만에 의해 좌우된다.
서찬석 – 성령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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