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
기독교의 경전은 처음 창조 이야기를 서술하는 창세기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새 창조 이야기를 서술하는 요한계시록으로 끝난다. 이것은 기독교의 창시자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라는 선포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신앙은 우리 인류의 창조주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일체가 되는 생활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사랑은 인류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의 후손이라는 공통 인식에서 발현되는 보편적 인류애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교류하는 형제애로 나눠진다. 그러나 사탄의 미혹에 빠져 창조주에게 불순종한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와 보편적 인류애는 훼손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훼손된 창조를 회복하고, 인류애를 형제애로 승화시키기 위해 초림하셨으나, 이스라엘의 배신으로 오히려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신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시고 승천하셨다. 미래에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이 대위임령에 함의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의 종말에 있게 될 천년왕국과 새 창조를 통해 기독교인의 소망은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과 새 창조에 대한 인식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사람에 따라 각자 달라진다. 그와 관련한 논의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이해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을 두고 서로 논쟁하고, 결국에는 교파가 갈라지고, 한 교파 안에서도 목회자에 따라 견해가 다른 설교를 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심지어는 견해가 다르다고 상대방을 향해 서로 이단이라고 비난하면서 몰아붙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태초의 창조가 하나님이 하신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미래의 종말론적 새 창조도 하나님이 하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다. 이에 대해 새 창조의 과정에서 중요한 주제의 하나인 천년왕국은 새 창조를 주관하실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와 맞물린 문제이므로 논쟁이 분분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새 창조를 논의하는 창조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천년왕국론을 먼저 개진하고, 이어서 천년왕국론 4학설을 발생 순서에 따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기로 한다.
Ⅱ. 창조론적 관점에서 보는 천년왕국론
성경에서 천년왕국이라는 말은 없다. 비록 성경에 천년왕국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 실체를 논의하는 천년왕국론은 요한계시록 20:4-6절에 기반한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새 창조의 창조주라는 창조론적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이 서술하는 새 창조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천년왕국을 논의하고, 그 실체를 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읽고 이해하려면, 세 가지 점을 알고 명심해야 한다. 첫째, 편지는 이미 어떤 관계를 맺었거나 또는 관계를 맺게 될 사람들에게 필요한 용무를 전달하기 위해 쓴다.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가장 집중할 점은 바로 그리스도가 그를 믿는 신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리스도의 계시는 신자들에게 어떤 핍박과 환난이 닥치더라도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버리지 말고, 마침내는 “이긴 자”가 되라는 권고가 핵심적 내용이다.
둘째, 요한계시록은 창세기에 기록되었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우주만물이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으므로 모두 불태워버리시겠다는 뜻을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을 “이긴 자”만 선택하여 새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리시겠다는 뜻도 계시하셨다. 천년왕국은 그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길에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로 말미암아 목 베임을 당한 순교자들을 위해 세워지는 “천 년 동안”의 나라이다.
셋째,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을 22:18-19절에서 요한이 경고한 사항을 잘 지키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그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버리지 말라는 경고이다. 그 경고는 “예언의 말씀”에 더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재앙이 더해질 것이요, 빼버리는 자에게는 새 창조되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라는 무서운 저주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그 안에 서술되어있는 그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계시를 주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계시를 받은 요한의 서술 이외에 다른 예언이나 주장들을 읽는 자기 함부로 해석에 인용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심각한 해석적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1. “근거 구절”의 검토와 해석
(1)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① 이 구절의 서술은 요한이 보는 환상의 장면이 하늘의 법정 사무소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여기서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은 다음 구절에 열거된 두 종류의 사람들이다.
ⅰ. 첫째로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은 6:9-10절에서 다섯째 인을 뗄 때 제단 밑에서 그들이 흘린 피를 신원해달라고 요구하던 영혼들이다.
ⅱ. 둘째로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 역시 그들처럼 죽임을 받았던 자들의 영혼들이다. 왜냐하면, 짐승은 그를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모두 죽이게 했다고 요한이 증언하기 때문이다(13;15). 여기서 헬라어 원어 성경을 보면, 짐승을 경배하지 않는 행동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는 행동을 연결하는 접속사 “kai”는 두 개의 행동이 동등한 것이라는 뜻으로 연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② 그들은 대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제단 밑의 영혼들에게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6:11)고 말씀하셧던 “그 수”를 채우는 자들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던 이유를 찾는다면, 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주범인 사탄을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감금할 형량(20:1)에 해당할 만큼 죄의 양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설명된다. 그것밖에는 설득력 있는 해석이 없는 것 같다.
③ 이어서 그들이 “살아서”라는 말을 굳이 여기에서 쓴 것은 그들은 모두 하나님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했다가 하늘에서 첫째 부활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④ 여기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는 서술이 바로 천년왕국론의 토대이다. 천년왕국의 백성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한다. 그러나 그 천년왕국은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계신 하늘에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ⅰ. 전천년설은 이 부분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시작으로 연결힌다(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 전천년설).
ⅱ. 후천년설은 이 부분을 목 배암 당한 자들이 하늘에서 첫째 부활한 사건으로 이해하므로 천년왕국은 지상에 있지 않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 뒤에 있다고 보게 된다(후천년설, 무천년설).
⑤ 심판의 권세는 보좌에 앉은 자들에게 부여된다.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심판자가 되어 왕 노릇 하거나, 20:6절에서 서술하는 바와 같이 제사장이 되어 왕 노릇 한다.
⑥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은 그들을 핍박한 자들은 물론 땅에서 죽은 모든 자들의 행위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언약과 공의를 기준으로 심사하고, 각자의 생명책에 기록하는 것일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그 생명책은 최후의 심판에 증거로 쓰일 것이다.
(2) 계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① 이 구절은 앞 절에서 열거한 자들을 첫째 부활한 자들로 해석하도록 문맥을 한정하면서 이와 다른 해석을 불허하는 서술이다.
② 따라서 첫째 부활한 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땅에서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모두 둘째 부활하여 최후의 생명책 심판을 받아야 한다. 요한은 둘째 부활이 일상적 믿음의 생활을 한 신자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넌지시 암시한다.
(3)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① 이 구절은 첫째 부활한 자들이 둘째 부활하는 자들보다 복이 있고 거룩하게 대우받으며, 둘째 사망이 없는 영원한 생명의 권세를 받았음을 나타낸다. 첫째 부활한 자들은 천년왕국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심판자와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
② 천년왕국이 끝나면 그들은 둘째 부활하는 자들과 달리 최후의 심판을 받지 않고, 새 창조되는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③ 그들이 “천 년 동안” 하늘에서 왕 노릇 하는 복을 누리는 것은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했거나, 또는 그에 상응하는 죽임을 당한 희생에 대한 보상이다.
④ 따라서 그런 희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다니는 일상적 믿음만으로 첫째 부활을 기대하도록 신자들의 소망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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