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부산 세계로교회에 들어가 손현보 목사의 휴대폰과 교회 서류 등을 압수 수색한 사건과 관련해 손 목사의 소속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가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이 사건이 공권력에 의한 ‘종교탄압’으로 비치며 교계에 공분이 확산하자 서둘러 교단 차원의 입장 표명과 대응 의지를 밝힌 것이다.
고신총회는 15일 발표한 ‘세계로교회 압수수색을 규탄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2025년 5월 12일 아침 8시경,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2팀) 경찰들이 부산시 강서구 소재 세계로교회의 (손현보) 담임목사 집무실과 본당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담임목사의 휴대폰과 읽고 있는 책들과 문서를 압수해 갔다”며 “3월 16일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 방문했던 부산시 교육감 후보의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조례’ 등에 대한 후보 입장에 대한 질의응답 형태의 짧은 대담을 사전선거운동이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억지 해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신총회 성명의 골자는 경찰이 세계로교회 담임목사실과 본당에 들어와 압수수색을 한 것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종교탄압으로 규정한 데 있다. 이어 사법부와 경찰 또는 국가와 정부라 할지라도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기독교를 탄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 규탄 성명은 발표 시점에 있어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경찰이 세계로교회를 압수 수색한 사건이 지난 12일에 있었고, 이런 사실을 손 목사가 SNS를 통해 공개한 바로 다음 날인 13일에 예자연과 세계로교회 교인 명의의 항의 성명이 나왔다. 고신총회의 성명은 이 성명이 나온 지 이틀만인 15일에나 나왔다는 점에서 기민한 대응으로 보기 어렵다.
어떤 사안에 대한 교단 차원의 입장 표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마련이다. 교단에 속한 전체 교회와 구성원의 생각과 판단을 담기 때문이다. 고신총회의 성명이 다소 늦게 나오게 된 것도 현 상황이 위중한 만큼 절차적 신중을 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은 공권력이 교회를 침탈한 사건이 아닌가. 사법부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급한 것도, 이 영장을 가지고 경찰이 교회에 들이닥쳐 예배당 안을 휘저어가며 압수수색을 벌인 것도 종교적 성역이라는 ‘금기’를 파괴한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기독교계, 특히 교단이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스스로를 지킬 힘을 잃고 권력에 유린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이 사건은 부산 선관위가 손 목사가 특정 교육감 후보를 예배 시간에 강단에 세워 대담을 진행한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경찰에 고발한 데서 시작됐다. 손 목사가 교회를 방문한 교육감 후보에게 평소처럼 설교 시간에 ‘반기독교적, 반사회적 이념 사상에 대한 입장’을 묻는 대담을 진행한 것이 ‘사전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거다.
문제는 선관위의 고발로 수사를 시작한 경찰이 세계로교회에 들어가 본당과 담임목사실 등을 압수 수색했다는 점이다. 만약 군사독재 시절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교계가 온통 들고 일어나 ‘종교의 자유’ 침해를 규탄하고 거리에 나가 “독재 타도”를 외쳤을 사안이 21세기, 민주화 시대 백주에 벌어진 것이다.
전국유권자연맹 등 253개 시민단체가 “과거에 유신독재 시대에도 운동권 학생들이 명동성당으로 피신할 경우 경찰들이 학생들을 잡으려고 감히 명동성당에 침투하지 못한 점, 광우병 사태 때 배후 조종자로 수배받았던 혐의자들이 조계사로 피신했을 때 경찰들이 이들을 잡으려고 조계사로 침투하지 못한 점” 등의 사례를 들어 이번 사건을 교회에 대한 모독이자 기독교에 대한 찬탈행위로 간주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교계는 손 목사가 설령 선거법을 위반한 정황이 있더라도 그것이 경찰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개인 휴대폰을 압수하고 교회 서류까지 압수할 정도로 긴박한 중대 범죄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그보다는 코로나 팬데믹 때 문재인 정부의 예배 금지 조치에 저항하는 등 정치적 사안에 기탄없이 목소리를 내온 교회 목회자에 대한 정치적 표적 수사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런 배경으로 지난해 차별금지법 반대를 기치로 한 ‘10.27 한국교회 연합예배’와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대통령 탄핵 반대를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개최된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가 지목되고 있다. 교계뿐 아니라 전 국민이 주목한 이 두 대형 행사 모두 손 목사가 중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조기 대선을 앞둔 시기에 보수 기독교를 길들이려는 의도라는 거다.
관건은 이 문제를 대하는 한국교회의 의지에 달려있다. 이와 관련해 교계 여러 기관 단체가 한목소리로 규탄 성명은 낸 건 고무적이다. 해당 교단인 고신총회가 신속 대응보다 신중 대응을 선택한 것처럼 비쳐진 게 아쉽기는 하지만 교단적으로 분명한 입장과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안이 성명서를 발표하는 정도로 끝낼 문제인가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계가 특정 사안에 이처럼 들끓은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모두가 들고 일어나 성명을 발표한만큼 앞으로 공권력이 교회에 함부로 들어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다. 권력이 종교를 지배하기 위해 탄압하고 배척한 건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그렇다고 거리에 나가서 단식투쟁이라도 하라고 등 떠미는 게 아니다. 교회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성에 대항하는 건 보수·진보, 좌·우 신념과 상관없이 교회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걸 말하려는 거다. 만약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정당,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는 정당에서 다음 대통령이 나온다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권력의 교회 침탈마저 보수와 진보의 시각으로 나누는 건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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