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대선 후보가 김문수 후보로 최종 확정됐다. 정확히 말하면 국민의 힘 지도부가 대선 후보를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교체하려던 절차가 중단되고 김문수 후보의 대선 후보 자격이 회복됐다는 게 적절한 표현이다.
대선을 불과 석주 남겨놓은 시점에서 국민의힘이 ‘단일화’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대선 후보 교체 과정은 공정하지도, 그렇다고 명분도 없었다. 한마디로 지리멸렬한 분열의 막장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국민의힘 비대위는 지난 10일 새벽 김문수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고, 무소속이던 한덕수 전 총리를 입당시켜 단독 후보로 등록하는 무리수를 강행했다. 아무리 후보 단일화가 목적이고 여론조사 지지도가 높다 하더라도 후보 경선을 통해 최종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보 대신 외부에서 다른 인사를 데려와 후보로 등록한 건 스스로 정당성과 합법을 훼손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조기 대선을 불과 3주 앞둔 시점에서 전격 추진된 국민의힘 비대위의 후보 교체 시도는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된 당원 ARS 투표에서 과반 찬성을 얻지 못해 결국 좌초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절차적 정당성과 당내 동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철회되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후보 단일화 담판에 나섰던 김 후보와 한 전 총리도 보수권 지지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김 후보는 당내 경선 당시 후보가 되면 즉시 단일화하겠다고 공언했던 것과는 달리 당내 단일화 시도에 응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반면에 한 전 총리는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경선이 다 끝난 후 비대위에 의해 후보로 등록되면서 ‘무임승차’ 논란을 일으켰다.
문제는 이 두 사람 모두 후보 단일화를 담판 짓겠다고 약속하고도 자기가 후보가 돼야 한다는 아집과 고집을 끝까지 꺾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자기가 대선에 나가야 하는지 지지자들에게 납득시키기보다 치졸한 수준의 말싸움만 하다가 돌아서는 모습은 보수 지지자들에게 회한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힘 지도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단행됐던 후보 교체 시도는 끝내 무산되고 김 후보가 대선 후보 자격을 회복해 최종 국민의 힘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타격과 상처를 입었다. 겨우 수습이 됐지만 불과 3주 남짓 남은 조기 대선에서 거대 야당 대선 후보로 일찌감치 확정된 이재명 후보를 상대하기가 실로 버거운 상황이다.
국민의힘 비대위의 후보 교체 추진 절차가 당원 ARS 투표 결과 중단되고, 김 후보가 대선 후보 자격을 회복하면서 이를 주도한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권 위원장은 10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후 “당원 투표 결과에 따라 후보 교체 결정은 무효화됐고, 김문수 후보의 자격이 즉시 회복된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위원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이번 국민의 힘 비대위의 대선 후보 교체 추진 과정은 법과 상식에도 맞지 않는 무리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이에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이 사퇴한 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 당 지도부의 위기관리 능력 미흡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배경으로 분석하는 만큼 비대위원장 한사람이 물러난다고 이번 사태가 마무리될지 의문이다.
국민의힘 당 안팎과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가 초래된 책임 선상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 당권을 쥔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두 사람을 지목하는 분위기다다. 이른바 ‘쌍권’으로 불리는 국민의힘 ‘투 톱 지도부’체제가 가져온 정치적 패착이란 평가다.
이 문제는 김문수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최종 대선 후보로 결정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노동 운동의 대부로 불리며 좌파에 몸담았던 김 후보는 보수 우파로 전향한 후 국민의힘 전신 정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그런 그가 정치 무대에 다시 등장한 게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이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영입되면서부터다.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탄핵 반대 목소리를 내 일약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지난 4월 초 고용노동부 장관직을 내려놓고 다시 입당한, 당 지도부의 입장에선 사실상 외부 인사로 분류되는 김 후보가 당내 대선 후보경선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것도 예상 밖인데 만약 대선 후에 무게와 몸집을 더욱 키워 당 대표 선거에 나오는 등 당권을 쥐게 되는 상황은 현 지도부에겐 매우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한 전 총리의 경우 만약 대선에 패할 경우 그런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게 비대위 차원에서 무리하게 후보 교체를 추진하려던 배경으로 지목된다. 일생을 관료로 살아온 그가 대선 후 당내에 남아 당권을 쥐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김 후보에 비해 낮다고 본 거다. 이런 추론은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권을 계속 쥐려는 당내 주류의 치밀한 계산이 드러나면서 김 후보의 강한 반발과 함께 당내에서 거부감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이번 조기대선은 이재명 ‘일극 체제’에 맞서는 이 땅의 보수정치가 대한민국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아니면 소멸할 건가 하는 분깃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패한다면 대한민국은 이재명 일극 체제로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까지 위협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파와 이념을 떠나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국가 존망을 걱정해야 때다. 그 절박한 시기에 보수 정치권이 지금까지 보여준 이전투구는 ‘자멸’ 그 자체였다. 이제 겨우 한 고비를 넘겼지만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보수권이 상처를 아물고 다시 하나로 뭉치기에 너무나 짧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지 않은가. 한국교회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비상기도회를 시작했다. 보수 정치권도 마지막 남은 기간에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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