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7장 8~16절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바다”에 비유한다.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이 크고 작은 폭풍우를 피할 수 없듯이,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폭풍우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폭풍우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몸에 물이 묻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찾아 왔을 때, 우리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리의 삶에 문제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절대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그 문제에 집중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면, 우리는 절대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지, 그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1948년 건국이래, 그리고 1950년 6.25 전쟁이래, 최악의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1948년 건국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중단되지 않고 지속 되어왔던 위기가, 이제는 때가차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알아 차릴 수 있을 만큼, 우리를 위협하는 거대한 괴물로, 우리의 눈 앞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이 처한 위기는, 1997년 IMF 사태 수준의 “경제적인 위기”가 아닙니다. 2020년 코로나 펜대믹과 같은 “보건적인 위기”도 아닙니다. 북한을 비롯한 “외부의 적들”의 도발로 인한 “안보적인 위기”도 아닙니다.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는, “외부의 적들”이 아니라, “내부의 적들”의 도발로 인하여, 나라의 존립 자체가 위협 받고 있는 “체제적인 위기”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어떤 위기가 불어 닥친다 해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만 견고하게 서 있다면, 우리는 그 모든 위기들을 넉넉히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민족이 겪고 있는 위기는, 그런 위기들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체제 위기라는 사실에, 지금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국민 통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런 국민 통합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일품 요리”와 “음식물 쓰레기”가 통합하면, 음식물 쓰레기가 일품 요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품 요리가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버립니다.
대한민국은 일품 요리요, 공산주의는 음식물 쓰레기입니다. 이 둘은 통합될 수도 없고, 통합되어서도 안됩니다. 그와 같은 통합은 공산주의를 살리는 길이요, 대한민국을 죽이는 길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로 통합할 수는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불의한 재판관이 다스리는 “무법천지”가 아니라,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정의로운 “법치국가”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과 열방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통합되어야 하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거룩한 대한민국이요, 그것이 바로 위대한 통일한국의 비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어, 이제 관저를 떠나 사저로 귀환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슬퍼하고 계시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이 되었든 아니면 복귀를 하셨든, 12.3 계엄을 시작으로, 이러나 저러나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바로 “공산주의와의 전쟁”입니다.
그나마 12.3 계엄 덕분에, 대한민국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계몽된 국민들과 함께, 이 공산주의와의 전쟁을 시작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전쟁이요, 피해서도 안되는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의 본질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이 세상의 운명, 이 민족의 운명은, 정치가들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한국교회, 저와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국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일어나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집어 삼키려는 모든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의 영들은, 한국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무너지게 될지어다.
우리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아흔 아홉번을 지다가도 마지막 한 번을 이기게 하심으로서, 모든 전세를 뒤집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백성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체제 전쟁 속에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일에 모든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솔로몬 왕은, 자신이 일국의 왕으로서 한 나라를 다스리면서 깨닫게 된, 아주 중요한 “문제 해결의 원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모든 문제 해결의 근본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은 하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바벨론 제국의 왕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참칭하며, 자신의 금신상 외에 다른 신들 앞에 절하는 자들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버렸던 사악한 독재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부갓네살에게 갑작스러운 재앙이 임했습니다. 왕실에서 살던 그가, 왕실에서 쫓겨나 숲 속에서 살게 되었고, 왕궁의 진수성찬 대신 소처럼 풀을 뜯어 먹게 되었으며, 그의 몸은 최고로 값비싼 비단 옷 대신, 하늘 이슬에 젖은 몸이 되었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 씌어져 있던 화려한 왕관은 사라지고, 그 대신 그의 머리털은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으며,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느부갓네살 왕에게 왜 이런 재앙이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것일까요? 이 모든 위기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다니엘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29.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단4:30-32)
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36.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단4:34-37)
하나님께서는 400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땅에 10가지의 재앙이 임했고, 특별히 10번째 재앙은 애굽의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의 장자가 죽임을 당하게 되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셨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은 모두 애굽 사람들이 섬기고 의지했던 애굽의 신들이었습니다. 특별히 바로의 장자는 애굽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바로 그 자칭 하나님의 아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재앙을 통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바로의 손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홍해 바다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바로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셔서, 이스라엘을 추격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뒤로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두려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14:13-14)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들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진퇴양난의 위기 속에서도, 애굽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전쟁은 말과 병거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달려 있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마른 땅을 밟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 이제 그들은 마침내 그들이 정복해야 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각 지파별로 대표를 세워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들여 보낼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렇게 40일 동안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들 가운데, 10명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의 모든 백성들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13:31-33)
그와 같은 보고를 듣고 있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자신의 옷을 찢으며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민14:7-9)
결국 10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에 선동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광야에서 멸절 당했고, 그들의 자녀 세대들과 함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역사적 사례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여론을 움직이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의 바람을 일으키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 앞에 어떤 홍해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길목에 어떤 네피림들이 서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전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 앞에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은 물매에 조그만 돌 하나를 담아서 골리앗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치며 달려갑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주으이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삼상17:45-47)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가는 광야의 여정에서 아말렉 족속의 공격을 받게 되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대로 순종하여 사람들을 데리고 나아가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러나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게 되는 것을 보고는, 아론과 훌이 모세의 피곤한 팔을 붙들어 내려오지 않게 하기 위해, 한 사람은 오른쪽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은 왼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림으로,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결국 여호수아와 그의 군사들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이 모든 역사들을 기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의 이 역사를 항상 기억하게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는 그곳에 제단을 쌋고 그 제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명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대대로 싸우시리라.” 그것이 바로 “여호와 닛시”의 뜻입니다.
리바이벌 코리아, 미스바 광장 기도회에 모인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모세와 아론과 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네피림과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우리의 마음과 두 손을 오직 하나님 한 분께로만 향하게 할 때, 그리고 우리의 이 두 손을 내려오지 않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승리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행정부에서, 입법부에서, 사법부에서, 언론기관에서, 광장에서, 유투브 카메라 앞에서, 이 땅을 집어 삼키려고 하는 아말렉 족속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여호수아와 그의 군사들을 위해 우리의 두 손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십시다. 그리고 이 두 손이 내려오지 않게 하십시다. 우리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모세가 되고 아론과 훌이 되어 주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대로 싸우시리로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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