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목회적 돌봄(pastoral care)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일반적인 돌봄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한 돌봄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이것도 평신도목회 핵심개념 중 하나다. 이것은 전도하라는 설교와 실제 전도하는 것과 같이 다른 개념이다. 대부분 교회에서 전도하라고 설교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 그럴까? 너무 평범하고 전체에게 하는 설교라서, 교인들은 그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할 거야’ 하면서, 결국은 아무도 하지 않게 된다.

평신도목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돌본다, “안녕하세요”라고 가벼운 인사는 다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수준에서 잘하고 있고, 그들은 매우 친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공손하지만, 실제적으로 그 상대방의 진짜 삶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물론 오늘날의 사회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교회 안에 들어오기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인사정도에 그친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진정한 돌봄이 아니라, 단지 표면적인 인사치레 정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신학교들은 일반적인 돌봄에 대해서만 가르치는 경향이 있고, 그들은 학위를 따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돌봄에 대한 관심은 거리가 먼 편이다. 임싱목회 CPE는 아시다시피 개인적인 돌봄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병원, 형무소, 요양원과 같은 특정한 곳에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센터들을 훈련 장소로 사용할 뿐 실질적인 돌봄에는 별 관심이 없다.

멜빈 목사님이 평신도목회를 발전시킨 이유는 스데반 사역처럼 치유와 단기 돌봄이 아니라, 개인적인 돌봄과 아울러 장기적인 돌봄을 의미한다. 개인의 보살핌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룹적인 보살핌을 매우 잘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것은 돌봄이 아니라 일종의 관리이다. 제자화 훈련은 굉장히 강하게 하는 분들도 있고 사람을 아끼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것은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왠고하니 제자화는 대부분 10명에서 12명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리더 한사람이 10~12명을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관리일 뿐이거나, ‘일반적인 돌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특별한 돌봄이란 무엇인가? 한 명의 사역자가 3~4명을 초과해서 맡아서는 안 된다. 그 숫자들보다 더 돌봄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개별적인 돌봄을 통해, 사역자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각 그 사람을 매우 자세히 보기 때문이다. 멀리 밖에서는 그 사람을 자세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볼 때, 그들은 더 자세히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모토는 ‘피부로 느끼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의미를 준다. 사람들은 이런 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멜빈 목사님의 첫 번째 책을 본다면, 우리는 많은 실제적인 보살핌의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는 돌봄이지만, 교회가 더 효과적이고 시너지를 내고 싶다면 좀 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의 성장과 교회 전체의 성장이 모두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역은 누룩과 같아서 교회에 스며들어야 하고, 그러면 시너지가 가능하다. 그것도 목사의 리더십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개인들에게 좋은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일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또한 지적 능력과 기술에서 향상될 필요가 있다. 경영학의 아버지인 피터 드러커는 여러 번 그의 글에서 모든 조직은 그 기관 자체보다도 구성원 개개인에게 먼저 유익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왜 조직이, 회사가 여기에 있는가? 오직 자체의 이익을 위해서?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들은 직원 개개인과 우리의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우리 사역은 돌봄자 자신에게 좋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실제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실제적 경험 없이는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그게 뭔가? 우리는 사실 어려움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또한 현실을 보고, 인생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도전과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이러한 좋은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함정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만, 한 번은 다루어 보고 싶다. 일단 우리가 PACE 교재로 훈련을 받는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돌볼 때 몇 가지 신중함을 언급한다. 하나는 돈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의 양떼 가족과 돈을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PACE 매뉴얼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고, 나는 또한 여러 번 이렇게 사람들을 훈련했다.

물론, 우리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돌보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렸다는 것은 기억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그들에게 돈을 주고, 경제적으로 그들을 돕고,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걱정된다. 이것은 나에게 항상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을 조심해야 하고, 또한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도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그들이 매우 어려울 때 돈을 그들에게 주어야 할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와 양떼 사이의 중요한 문제이다. 내가 발견한 바로는, 우리는 돈을 그들에게 주기에는 너무 조심스럽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우리는 너무 일찍 마음을 닫는 경향이 있다. 때때로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역의 측면에서 우리는 사역에 필요한 약간의 재정을 기부해야 한다. 물론 나는 관대한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는 PACE 매뉴얼의 지시대로 너무 일찍 마음을 닫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모든 사람, 모든 사역, 모든 조직을 도울 수는 없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정말로 우리의 재정적 도움이 필요한 그들에게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렇다. 멜빈 목사님이 충고한 대로 베푸는 일에는 신중해야 하지만, 우리가 늘 너무 엄격하게 하면 모든 사역이 완성될 수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완성해야 하는지를 하나님은 아시는데, 전혀 재정적 도움이 없다면 세상에서 살아남을 사역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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