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대책 유원식 회장
간증하고 있는 유원식 회장 ©미주 기독일보
희망친구 기아대책(회장 유원식)이 미주 나성한미교회(담임 홍충수 목사)에서 4일(현지 시간) 오전 11시에 간증 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증한 유원식 회장은 현재 KCOC(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회장, 전 한국오라클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더 콜링 콘서트’란 주제로 열리는 집회는 국제 사회의 빈곤 퇴치를 위해 미주 한인교회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준비됐다.

유원식 회장은 지난 33년 동안 IT 업계에서 일을 해오면서, 17년 동안 대표이사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평균 이상의 경제적인 생활을 해왔다고 소개를 하며 집회를 시작했다.

"그렇게 30여년을 생활해 오면서 인생의 후반에 들어오니까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을 하게 됐다. 여러분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야곱이 창세기 47:9절에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힘들었던 세월을 보냈다. 저 또한 삶 속에서 이런 험악한 삶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지난해 9월 통계로 코로나로 인해서 전세계에 690만명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미국에서만 120여만명이 세상을 떠났다. 어느날 죽음이라는 것이 갑자기 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사람마다 난처한 질문을 받게될 때가 있다"

유원식 회장은 "자녀가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가장 난처하다고 한다. 그는 1986년 1988년생 두 아들을 낳고 키웠다. 교회에서 청년회장을 하고 평범하게 신앙 생활을 해온 가장이었다.

그는 "어느날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오른쪽 눈이 잘 안보인다고 하는 것이었다. 안과를 데리고 가서 몇 가지 검진을 해보더니 큰 병원에 가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뇌종양으로 판명을 받게 되었다. 눈과 눈 사이에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 일이 닥치니 현실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17시간의 수술을 하면서 두개골을 열고 뇌수술을 하고 봉합을 했는데 수술 후유증으로 아이의 오른쪽 신체의 기능이 상실됐다"고 했다.

유 회장은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재활훈련을 시키는 와중에 2년 후에 다시 병이 재발되었는데, 그때는 병원에서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지만 아이는 회복이 되지 않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한달여 동안 입원을 했다. 가망이 없었다. 그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때 새벽기도 및 철야기도에 가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계단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께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성구가 마음에 박혔다. 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네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글에서 하나님께서 아이를 곧 데리고 가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주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기도로 바뀌게 됐다. 그리고 나서 한달 있다가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아이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 기도를 함께 있던 전도사 대신에 유원식 회장이 자청해서 하게 됐다. 마지막 기도는 아빠가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때 그는 "아들과 함께 한지 11년 밖에 안되었지만 감사했습니다. 당신의 뜻이 있어서 아이를 데려가십니다. 2년여 동안 고통의 시간을 뒤로하고 주님 품 안에 있을 줄 믿습니다. 이 영혼을 받아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장례식을 치르게 됐다.

유원식 회장은 "아이 학교에 가서 소지품들을 가져오게 되었다. 저희 집 가훈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이다. 학교에서 가훈을 쓰게 해서 아이가 쓴 것을 보았는데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를 썼더라. 스케치북에 가득 쓴 것이 자기 죽음에 대해 쓴 것이었다. 아이가 떠나기 전에 매일 성구를 돌아가며 읽으면서 가정예배를 드렸었는데 아마 그때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을 보고 대성통곡을 했다. 지금 저희 집 안방에 걸려있다. 그리고 아내와 다짐을 했다. 아이가 부활 소망을 가지고 갔는데, 앞으로 떳떳한 엄마와 아빠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더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자고 하고 정신을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죽음에 대해서 인간은 세 가지를 모른다고 한다. 첫번째 언제 죽는지, 두 번째 어디서 죽는지, 세 번째는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회장은 인간은 반드시 죽고, 혼자 죽고,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50대 중반에 들어갔을 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됐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이다. 스톡옵션을 받았고, 강남에서 부러운 것 없이 살면서 편안하게 살았다. 그런데 평안하지 않고 늘 마음 속에 뭔가 있었다.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유 회장은 기아대책에서 일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제일 처음에 간 말라위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공항에 내려서 현장을 향해 가는데 가는 중간에 충격을 받았다. 오뎅 꼬치같은 것을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파는데 자세히 보니까 쥐 튀김이었다. 예쁘게 요리한 것이 아니고 머리와 꼬리가 그대로 있는 것을 파는 것이였다. 쓰레기 공원에 트럭이 오면 아이들이 몰려든다. 쓰레기를 뒤지는데 병든 닭을 주워서 내장을 꺼내 버리고 삶아서 먹는다. 아이들이 말라리아 병에 걸려 죽어가는데 1불 약값이 없어서 방치된다"

그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갖 질병에 걸리는 것은, 비도덕적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그런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에 태어나서 누리는 삶은, 단순히 좋은 사회에 태어나서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가난한 아이들은 단지 좋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죽음을 쉽게 맞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쉽게 예방을 할수 없어서 죽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뻗어서 어려움을 중단시킬 의지를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예전에는 20%을 웃돌았는데 지금은 14%대로 줄었다고 한다. 20대는 3%가 안된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원식 회장은 성경책에만 밑줄을 긋는 것이 아니라 삶에 밑줄을 긋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에 밑줄을 긋는 것은 나눔과 봉사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달에 35달러이면 한달 동안 점심을 먹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재를 학생들이 받는다. 그것 외에 우물 파기, 교회 건축, 화장실 건축 등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다"라면서 "우리가 후원하는 아이가 공부하고 나서 수의사가 되어 가축을 돌보는 열매가 맺어지고 있다. 마지막 1/3의 삶은 구제와 선교, 나눔과 봉사만이 나머지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애썼어, 수고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좋을 것 같다"고 간증을 마쳤다.

기아대책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1971년에 미국에서 설립됐으며 한국에선 1989년 10월 24일 NGO창립 이사회를 개최해 1990년 교회를 통해 최초의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