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남전교회
익산 남전교회는 12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승연 기자

익산 남전교회는 1897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남전리에 설립된 익산 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남참문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으며 도남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교육했다. 1919년 4월 4일 익산 솜리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1970~1980년대 인권운동과 농민 권익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지난 2000년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유적지 교회 제1호로 지정되었다.

남전교회 담임목사인 송승현 목사는 2021년 5월 남전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송 목사를 만나 교회 역사, 목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 교회 비전 등을 들어볼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남전교회에 담임목사로 지난 21년 5월 부임했다. 남전교회는 농촌교회이며 지금까지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저는 무엇보다도 ‘공감’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공감이라는 단어가 신앙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갈릴리 지역에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셨는데 그 안에서 치유 사역, 오병이어의 사건, 제자 훈련 등 여러 사역 등을 하셨다. 이 사역들은 공감이 없다면 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셨듯이 공감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저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마음으로 사역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인들의 기쁨과 아픔을 공감하면서 하나님과 이어주는 사역을 하기 위해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아울러 농촌교회 목회가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이를 증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역하고 있다.”

익산 남전교회 송승현 목사
익산 남전교회 담임 송승현 목사. ©최승연 기자

-목회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저는 모태 신앙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교회가 너무 익숙했고 교회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담임 목사님께서 저에게 신학을 한번 해보라고 권유를 하셨다. 신학대학교 원서까지 주시면서 신학을 해보라고 하셨는데 당시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저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저는 신학보다는 운동을 좋아해서 체육학과를 가기 위해 준비했다. 그러나 실기를 준비하면서 몸을 다쳤고 재수를 했는데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치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운동이 아닌 신학의 길로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하나님께 순종하며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익산 남전교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남전교회는 1897년에 창립되었으며 올해 126년을 맞이하고 있다. 남전교회는 군산과 김제의 교회를 다니던 남전리 사람들이 1900년 봄 이윤국의 집에 모이면서 시작되었으며 그들은 1901년 초가 5칸의 예배당을 마련하고 이어 도남학교를 운영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또한 미국 남장로교에서 7명의 선발대 선교사들이 조선을 방문했는데 그중에 전킨 선교사 및 2명의 선교사가 교회 사역을 했으며 전킨 선교사가 담임 선교사로 부임했다.

이후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만세운동 후 1달 뒤 4월 4일 익산 솜리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를 주도한 이들은 당시 남전교회의 교인들과 도남학교의 학생들이었다. 당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박성엽 열사 등이 남전교회 출신이었으며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열사는 순국했다.

또한 우리 교회는 6.25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었으며 1970년대에는 기독교 인권운동의 중심에 서서 많은 일을 감당했다. 이러한 교회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제85회 총회를 통해 제1회 유적 교회로 선정됐다. 아울러 126년 동안 농촌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교회학교가 끊어진 적이 없었으며 교육 목회에 앞장섰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지역 노인 인구 수가 증가하고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게 되면서 교회 주변에는 노년 세대만이 많이 남게 되었다. 이에 우리 교회는 노인들을 위해 요양원, 복지센터, 노인대학 등을 운영하면서 지원하고 있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최근 2년 사이에 익산시내, 전주, 군산에서 젊은세대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교회에 등록을 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젊은층 눈높이에 맞춰, 이음카페 운영, 어린이 제자훈련 학교, 아름다운가정세우기 모임, 마더와이즈 훈련, 세대통합예배, 풋살, 자전거 선교팀 모임 등 농촌교회에 새로운 활기를 띄우고 있다.”

-목회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남전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지금까지 짦은 기간이지만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들이 어떻게 보면 교회의 아픔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고백한 사건들이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제가 교회에 부임한 지 한 달 되었을 때 우리 교회 원로 장로님께서 사고로 인해 돌아가셨다. 그 장로님은 교회 주변에 사셨는데 교회 옆 밭에서 경운기로 밭을 가시다가 사고가 나셨다. 저는 당시 교인에 대해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전화를 받고 사고 현장에 나가 장로님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결국 원로 장로님은 소천하셨지만, 제가 장로님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을 다른 교인들이 보면서 저에 대한 신뢰가 생겼고 오히려 교인들이 하나가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작년에 발생한 사건인데 교회 인근에 사시는 어르신께서 사다리에서 떨어지셔서 뇌출혈이 일어나 급히 119에 실려 가셨다. 당시 저는 밖에 있었는데 연락을 받고 응급실로 향했다. 당시 코로나 상황이라 들어갈 수 없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응급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어르신은 교회를 다니시지 않으셨고 아내가 권사님이셨는데 권사님의 기도 제목이 ‘남편이 교회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어르신의 따님께서 저에게 ‘아빠 천국가게 기도 부탁드립니다’고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세례를 주어라’고 하셨다. 저는 휴대용 세례 용품을 챙겨와서 어르신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를 본 어르신 가족들은 감사하다고 하셨으며 우리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다.

목회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앞서 두 사건은 제가 했다고 했지만,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생각한다. 또한 두 사건은 아픔이지만 이를 은혜로 극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남전교회의 비전은 무엇인가?

“저는 농촌이 소망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곳이다. 이에 우리는 개인마다 세상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통해 이음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과 내가 이어지고, 하나님과 가정, 하나님과 세상이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소망이 되려면 하나님과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전하는 사역을 하면서 비록 농촌이 어렵더라도 하나님과 이어진다면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남전교회가 이에 대한 좋은 롤모델이 되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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