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최철호 목사
최철호 목사(한국교회연합 바른신앙수호위원장, 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합동총신

목사인 내가 이런 종류의 글을 계속해서 쓴다는 것은 상식에서 다소 벗어난 일이다. 신앙인들도 정치와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각기 다르기 마련이고, 사회 현상을 보는 눈도 다양하다. 그러므로 이런 글을 쓰서 덕 볼 일은 별로 없겠다. 눈치 있는 목사라면 이런 글은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오직 성경 말씀에 매달린다. 내가 이런 글을 처음부터 쓴 것은 아니다. 그 이전까지는 나도 소위 복음(성경 말씀 그 자체)에 충실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역사와 사회에 대한 통찰에 관련하여 거역할 수 없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성경은 이것을 성령의 감동이라고도 한다. 물론 그런 압박감을 무시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겠지만, 그래도 내 자신은 괴롭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마지막에 부여하신 사명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글들의 요체는 역사에 대한 통찰이다.

이제 코로나 팬데믹(범세계적인 창궐)은 종식되었다. 마스크 착용 해제는 그 사실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 속에 전염병(온역)은 항상 존재해 왔고, 그 현상과 반응은 대개 유사하다. 발생 후 몇 년간 팬데믹을 일으키다가, 그 후에도 약화된 가운데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가장 좋은 사례가 중세의 페스트이다. 페스트는 1347년부터 1350년까지 4년 동안 창궐하였고, 그 후에도 300년간 유행하였다. 아마 이 세대도 코로나를 이제는 감기의 한 종류처럼 여기면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전염병과 정치의 역학관계를 우리 내부에 국한해서 보자. 문재인 정권에 대한 성격과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정권투쟁의 소산이고, 정치 반대 세력에 의해 장기간 집요하고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어 온 결과물이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유를 증거하는 실정失政은 정치적 프레임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처음부터 사용한 당명과 로고, 그리고 문재인의 세월호 및 공산주의자들과 관련한 발언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탄핵정국, 소위 촛불혁명정국은 군중(무리, 대중)의 강요된 에너지가 역동적으로 작용한 정치적 현상이다. 자고로 군중은 본질적으로 선전선동에 취약하다. 군중은 우매하다. 군중은 쉽게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간다. 군중에 대한 선동의 시발점은 언제나 절대다가 아니라 극소수의 운동권이다. 운동권은 본질적으로 반골反骨이다. 따라서 성경은 군중에 대해 단 한 번도 칭찬한 바가 없다. 문재인 정권은 그런 바탕 위에서 태어난 것이고, 초기 지지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게 밖으로 드러난 지지율은 왜곡된 채 일반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주입된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잘 활용하는 세력은 소위 말하는 좌파이다. 지금 수많은 여론조사기관을 통하여 발표되는 각종 지지율 수치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3년차에 들어서면서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였고, 그 정점은 2019년 하반기였다. 2019년 ‘10.3광화문집회’는 여러 모로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아마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문재인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처럼 탄핵정국의 태풍에 휩쓸렸을 것이다. 하지만 2020년 새해 벽두부터 발생한 코로나가 그를 살렸다. 코로나의 시발점과 발생시점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왜 하필이면 중국의 우한이었던가? 왜 2020년이었던가? 그때는 미중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던 시기였다. 국내적으로는 문재인 정권이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한 시기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우연으로 여기겠지만, 역사적 통찰을 지녔다면 그것은 우연을 벗어난 것이고, 신앙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신神의 섭리이다. 하나님은 사람 중심의 역사를 주관하신다. 그리하여 악한 통치자도 선한 통치자도 모두 도구로 사용하신다. 당신의 나라(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말이다.

코로나는 정권에 반하는 세력의 준동을 일시에 잠재웠다. 2019년 10.3광화문집회를 생각해 보자. 그 중심 세력은 누구였나? 야당 정치인들? 보수 운동권? 보수에는 운동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심 세력은 교회였다. 왜 교회인가? 교회의 몸은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분 자신이시고, 하나님은 거룩한 당신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그분의 뜻과 섭리, 경륜이고, 그러한 의미를 이 땅에서 교회가 구현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불의不義에 반한다. 따라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집권자로서는 교회가 최대의 적인 셈이다. 그러므로 코로나 발생 초기에 발원지인 중국의 국경을 봉쇄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고, 오히려 계속 개방해 두어야 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코로나 발생 초기 대중의 관심은 온통 신천지와 대구에 쏠렸다. 하필 신천지의 본부가 대구(대구는 보수의 중심지이다)에 가까웠다. 흔히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 정통 교회는 신천지를 새롭게 발흥한 대표적 이단 세력으로 여기고 경계한다. 그런 이단 신천지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적대시하면서 제재를 가하는 것은 교회로서는 깨소금처럼 고소할 일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여, 그 사실을 아는가? 신천지도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똑같은 교회라는 사실 말이다. 그러므로 신천지가 코로나를 기화로 핍박받는다면, 그것은 곧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핍박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아무도 이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문재인 정권 남은 기간 내내 교회는 코로나의 진원지로 비난받고 조롱받고 제재 받았다. 사람들은 그것이 마땅하다고 세뇌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흐름에 있어 신문방송의 언론이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기여하였다. 한 가지 사례를 보자. 무명의 한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해외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사실을 입국할 때 당국에 정직하게 신고하지 않았다고 하여 정부와 언론이 결탁하여 그에게 저질렀던 가혹한 행위를 상고해 보라. 지금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때 받은 충격에서 과연 벗어났을까? 우리는 모두, 국가와 정부와 방역당국과 신문언론과 대중은 그 사람에 대해 공범들이다. 한 인격을 무참하게 짓밟은 범죄자들이다. 어디 그 한 사람 뿐이겠는가?

코로나가 창궐할 때 교회에 대한 정권의 태도는 따라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회가, 특히 대형교회, 대형교단, 대형교회연합기관이 보인 태도는 참으로 한심하고 실망스럽고 지극히 반성경적이었다. 몇 천 몇 만 명이 모이는 교회의 예배에 불과 10여명 남짓의 상한선을 두고 정부 당국과 머리를 맞대었다. 그 결과에 대해 자랑한 목사들은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직고할 때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그 당시 성경이 정권에 의해 ‘공용물품’ 취급을 당한 사실을 기억하는가?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대형교단은 산하에 정부의 지침을 가감 없이 내려 보냈다. 그 속에 성경이 공용물품으로 명시된 채로 말이다. “교회가 죄송합니다”란 목사의 말과 교회 현수막은 하나님 앞에 석고대죄할 일이다.

문재인 정권은 정치적 위기를 그렇게 코로나를 통해 극복하였다. 이미 그 당시에도 사람들은 ‘정치방역’이라고 하였다. 그 정권이 내내 자랑한 ‘K 방역’은 청와대의 한 ‘쇼 달인 비서’에 의해 잘 포장된 선전 용어이다. 한국보다 방역을 더 잘한 나라, 코로나로부터 더 일찍 벗어난 나라, 마스크를 더 일찍 벗은 나라는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명운을 걸고 선전한 ‘K 방역’이란 용어는 사람들에 의해 길들여졌다. 군중은 우매하다 하지 않던가.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정권이 영웅으로 추겨 세웠던 당시의 질병관리본부장은 서울대학의 운동권 출신이었다지 않은가. 하지만 전염병이 창궐할 때 그가 보여준 그 노력과 헌신은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설사 정권이 그를 이용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한 선한 행위이다.

자고로 전염병이 창궐할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유사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알베르 카뮈가 1947년에 발표한 《페스트》는 그 배경을 1940년대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으로 설정하고 있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 운명과 맞서 싸우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은 코로나와 아주 똑같다. 카뮈는 이미 80년 전에 코로나에 대해 작품으로 충고한 셈이다.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관계 공무원들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쏟은 노력과 헌신, 전체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와 자발적인 방역 노력은 K 방역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것은 인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보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를 통하여 축적된, 사람들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 무의식의 원형으로 보존된 씨앗의 발아이다. 그러므로 어느 특정인, 특정 세력이 칭송받을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가운데 상호 칭찬해야 할 일이다.

코로나와 유사한 온역이 우리 세대에서 다시 발생할까? 우리의 자녀 세대가 또다시 겪게 될까? 온역의 발생여부는 인간과 전혀 무관한 자연발생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칼, 온역, 기근, 사나운 짐승)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러한 온역의 창궐을 통해 인류 역사의 발전,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통찰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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