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영생에 대한 희구 - 넷플릭스 영화 <정이> ©넷플릭스

이상기후로 지구가 폐허가 되자 인류는 우주 공간에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이주합니다. 이주민들 간의 내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어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윤정이는 작전 중 부상을 당해 식물인간이 됩니다. 그러자 군수기업 크로노이드는 그녀의 뇌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력을 갖춘 복제인간 군인을 양산하려 합니다. 하지만 일이 의도대로 되지 않자 복제된 윤정이를 당초의 계획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 합니다. 이를 막으려는 윤정이의 딸과 윤정이의 뇌가 탑재된 복제인간은 크로노이드의 음험한 계획에 맞서 사투를 벌입니다.

대중문화에 투영된 영생

크로노이드사의 회장은 자신의 뇌를 복제하여 부하직원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그가 영생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복제된 제2의 자신을 통해 영생을 누리고 싶었던 것이죠. 그런데 부유층이나 거대 기득권층이 자신의 재력을 동원해서 영생을 도모한다는 이야기는 <정이>가 처음이 아닙니다. <서복>(2021)이나 <프로메테우스>(2012)에서 불사(不死)를 희구하는 대기업 총수가 복제인간을 만들거나 인류의 근원을 찾아 나서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맨프럼어스>(2007),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 <트랜센던스>(2014), <겟 아웃>(2017)과 같은 영화들을 비롯해 많은 대중문화의 창작물들이 영생을 소재로 한다는 것은 ‘영생이 인류의 오랜 희망’임을 방증하겠지요.

덧없는 욕망

뇌 복제기술로 영생을 누릴 생각에 들떠 있던 회장은 정작 복제인간을 앞에 두자 탐탁지 않아 합니다. 자기가 기대했던 영생의 기쁨이 긴가민가하기 때문이죠. 마치 너무나 먹고 싶었던 음식을 한 입 베어 물었지만 이 맛이 아니라며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는 것처럼요. 자신의 복제된 뇌를 지닌 개체를 가리켜 ‘저걸 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대사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한데요, 이에 대한 기독교의 답은 분명합니다. 인간은 복제라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부부간의 진실한 사랑과 성관계를 통해 출산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죽은 사람의 뇌를 복제하여 또 다른 자아를 얻으려는 시도는 하나님이 피조세계 안에 세우신 질서를 파괴하는 심각한 악행입니다.

설령 뇌를 복제하여 제3의 개체에 이식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혼을 가진 인간이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뇌를 복제하여 나를 대체할 ‘또 다른 나’를 얻으려 하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일 뿐이죠. 복제인간을 통해 영생을 얻겠다는 건 인간들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헛된 탐욕의 산물일 뿐입니다. 복제라는 괴상한 방법을 이용하여 영생을 도모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내리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영생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노재원
‘사랑하는 우리교회’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 ©기독일보 DB

영생을 향한 인간들의 노골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죽음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범죄한 결과로서 주어진 형벌로(창세기 3:19), 모든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진솔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다’(히브리서 9:27)는 선언은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 이후의 심판을 전망하게 합니다. 우리가 내세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기회는 현세에서 살아서 믿는 동안에만 주어진다는 점에서, 죽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참된 기독교인에게 죽음이란 그저 삶이 종결되는 지점이 아니라 영생에 들어가는 복된 관문이기도 하지요.

게다가 ‘영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들이 상정한 개념과는 많이 다릅니다. <정이>를 비롯한 대중문화 속에서 영생이란 육신의 죽음을 거부하는 불사를 뜻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영혼이 육신을 떠난 이후 누리게 되는 천상의 삶이 영생이라고 인간들에게 계시합니다.

복음서가 진술하는 부자 청년 이야기(마태복음 19:16-22)는 영생의 의미란 무엇인지를 또렷이 알려줍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 얻을 방도를 묻는 부자 관리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다소 엉뚱한 듯하면서도 파격적인 요구를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의중은 분명합니다. 영생이란 우리네 인생들이 기대하는 바 육체적 죽음을 거부하는 육(肉)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현세에서 욕망을 억누르고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죠.

크로노이드사의 총수는 자신의 재력을 활용하여 영생을 도모했지만 그 마음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육신의 항구적 실재가 영생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바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태복음 6:20)가 아닐런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영원한 육의 기쁨을 추구하는 자들을 향하여 성경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36)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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