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이성미 집사
방송인 이성미 집사 ©이천은광교회 영상 캡처

방송인 이성미 집사가 지난 22일 이천은광교회 5월 온all가족축제 간증 집회에서 자신의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간증했다.

이성미 집사는 “다윗이 언약궤를 들고 갈 때 기뻐 춤췄던 것처럼 너도 마음껏 나를 자랑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제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마음껏 자랑하러 나왔다. 어느 날 보니 64살이 되었는데 한 발짝 한 발짝 예수님 곁으로 다가가는 발걸음이니 얼마나 유쾌하고 경쾌한지 모른다. 천국 소망이 있으니 죽음이 두렵지 않다. 인생의 마무리가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다가 어느 날 눈 감았을 때 ‘이성미’ 그러면 예수의 향기가 났던 사람이라는 소망을 갖고 살아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성미 집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어머니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세다 만 이사 횟수만 47번일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이 집사는 “예수가 없었으니까 늘 내 팔자가 왜 이런가 생각했다. 남들과 다르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늘 외로웠다. 그런 저를 측은하게 생각하셨던 아버지가 저에게 해주신 일은 엄마를 바꿔주시는 일이었다. 저는 엄마가 넷이다. 아버지는 바꾸면 좋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겨내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스무 살에 방송국에 데뷔해서 신나고 재밌게 살던 이성미 집사가 하나님을 만난 건 서른 살에 큰 사건을 겪으면서였다. 이 집사는 “참 많이 힘들었다. 예수가 없으니까 사람을 붙들고 계속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앞에선 네 말이 맞다고 하고 뒤통수를 쳤다. 그럴수록 내 편을 찾으려고 사람들을 쫓아다녔는데 점점 사람들이 제 말을 안 믿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억울함을 죽음으로 풀기로 했다”고 했다.

기적같이 살아났지만 사람들은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았다. 살아나라고만 하시며 병원까지 업고 뛰었던 아버지마저 외면하고 집 앞에 선 취재진으로 인해 오갈 데도 없고 힘들어진 이성미 집사는 새엄마의 권유로 새벽기도를 나가게 됐다.

이 집사는 “기도할 줄도 찬양할 줄도 몰라서 교회 맨 끝자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앉아 ‘하나님 저 왔어요’가 첫 기도였다. 둘째 날도 가서 ‘하나님 저 또 왔어요’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40일 새벽기도를 처음 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 억울하다던 문제가 41일째 되던 날 풀렸다. 그때 알았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억울하고 분하다고 말할 때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듣는 것 같았지만 아무도 내 얘기를 듣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 같았던 하나님이 내 얘기를 듣고 계셨다. 성경에 보니까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셨다”고 했다.

이어 “ 그 하나님을 만나 너무 좋아서 사랑에 빠졌는데, 사랑을 못 받고 못 해봤기에 증세가 이상했다. 예배 시간에 다른 사람이 내 자리에 앉으면 큰일 났다. 나는 예배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고 십일조를 완벽하게 하고 모든 걸 잘 하니까 온통 잣대를 남에게 재는 종교인으로 변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저에게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고 했다.

이어 “그렇게 종교인으로 살면서 하나님 앞에 했던 기도는 아버지에 대한 기도였다. 백혈병 판정을 받은 아버지와 전원주택에서 함께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선 허락해주셨다. 문제는 이사 가서 불과 몇 달을 못 사시고 세상을 떠났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슬픈데 어떻게 남을 웃기냐고 시름에 잠겨 있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이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아스팔트에서 자란 아이는 오기로 크고 흙에서 자란 아이는 용기로 자란다는 얘기를 붙듣고 자연환경이 좋은 캐나다 벤커부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이성미 집사는 욕 잘하던 엄마에서 회심하게 된 사건을 간증했다. 이 집사는 “저는 욕을 정말 잘하는 엄마였다. 내 안에 화가 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거침없이 욕했었다. 욕을 하고 악다구니를 하는 저에게 아들은 교회 집사라는 사람이 안에서 이러는 거 아무도 모른다고 창피하다고 했다. 그 말이 제 가슴을 쳤다. 저는 밖에선 너무 잘하는데 안에선 화를 아들에게 쏟아내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어 “제 방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이런 저런 고백을 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니면서 아침마다 단에 올라가서 아들을 바꿔달라고 울부짖었다. 기도하고 나서 안 바뀐 아들에게 욕을 하는 게 반복되니까 점점 욕이 심해지고 아들은 점점 삐딱해졌다”고 했다.

이어 “ 그날도 새벽기도를 갔다가 집에 왔는데, 학교에서 아이가 학교를 안 왔다고 연락이 왔다. 저는 아이에게 밥 먹고 학교에 가라고 욕을 했다. 밥을 먹으러 온 아들에게 욕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네 아들 네가 말한대로 만들어줄까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너무 두려웠다. 아들이 갈기 찢어져서 피 흘려 죽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하나님께 그렇게 아들한테 많은 욕을 하면서 아들이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한 적이 없다고, 다시는 욕하지 않겠다고 그동안 참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났더니 내 입에서 욕이 떠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욕을 하지 않자 아들이 조심스럽게 왜 욕을 안 하는지 물었다. 저는 그날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나눴다. 아들은 왜 하나님은 17년 동안 가만히 계시다가 그날 얘기했냐고 물었다. 저는 성경에 귀 있는 자가 듣는다 했는데 엄마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알았다. 귀가 있다는 건 마음이 열려야 하는데, 엄마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어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후 우리 집이 변하기 시작했고, 공부를 안 하던 아들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아침마다 아들을 바꿔 달라고 기도했는데, 내가 바뀌니까 아들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이성미 집사는 “그럴 즈음에 아들한테 큰 사건이 생겼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움을 했다는 연락을 받고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저에게 율법만 가르친 바리새인이라고 하셨다. 저는 철저하게 율법을 가르치며 아이를 난도질했었다. 하나님의 아이가 아닌 이성미의 아이로 키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한테 생긴 일은 저 때문이니 저를 먼저 벌해 달라고 기도했다. 학교에 도착해 하얗게 질린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저 아이를 망가뜨렸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어 “다음날 아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서 밥을 맛있게 차려놓고 아들을 불렀는데, 아들이 밥을 못 먹었다. 아들은 이 집에서 먹는 마지막 밥이라고 생각한 거다. 제가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아이들이 잘못하면 내쫓고 소리를 지르고 문을 잠그고 안 열어주는 엄마였다. 아들은 내가 어떤 엄마인지 알고 있었다. 아들을 방으로 불러 이번에 생긴 일은 엄마 때문이라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아들은 이성미의 아들로 살면서 힘들었다고 대성통곡을 했다. 칭찬과 격려 없이 일일이 지적만 했다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둘이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이성미 집사는 “아들이 나가고 나서 하나님 앞에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아들을 망가뜨렸다고 정말 사랑하겠다고 기도했다. 그 다음날 아들이 저 같은 사람이 변한 걸 보면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라면서 새벽기도를 따라 나섰다. 둘이 찬양하고 기도하니까 너무 좋은데 그동안 내가 욕심을 부렸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 최진실 자살 사건이 있었다. 두렵고 무섭다는 후배들의 연락에 같이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한국 땅으로 돌아가라는 느헤미야의 마음을 주셨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가려는데, 큰아이가 고민이 됐다. 금요 철야에서 하나님께 아들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그 잡은 손 나에게 주지 않겠냐고 하셨다”고 했다.

이어 “믿음이 없어서 그 손을 놓지 못하고 아들 손을 더 꽉 붙들고, 이제 아이를 좀 사랑하는데 이 손을 붙들고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저에게 다시 한번 그 잡은 손을 달라고 하셨다. 나는 이 손 하나도 못 놓는 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삭을 바쳤냐고 제가 꺼이꺼이 울었다. 하나님이 이제 엄마 손 안 잡고 하나님 손 잡기 원하신다고 하자 아들은 그래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들은 캐나다에 하나님께 맡기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했다.

이 집사는 “한국에 와 보니까 하나님께서 왜 한국에 보내셨는지 알 것 같다. 엄마들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걸 보면 다 똑같다. 왜 하나님이 주신 아이들을 내 뜻에 맞게 키우려고 애쓰는가. 우리의 기도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다른 종교에서 목적을 갖고 비는 것을 예수님 앞에 와서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아이를 주셨을 때는 그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가실지 보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내 뜻만 맞춰서 이뤄지면 그게 응답이라고 하는 정말 잘못된 것들이 있다. 저는 아이들이 하나님께 이끌려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예수 믿고 사는 건 애 쓰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사는데, 예수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려고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따가라 수 없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우리가 지금 예배자로 살아내는 것이다. 아이들 공부하는 시간에 엄마도 말씀 보면서 기도하는 게 훈련이다. 그리고 내게 있는 것을 나눠주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는 온통 남들이 잘 되는 것만 보고, 또 모든 걸 달라고만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하면서 사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집사는 “제가 이렇게 변한 지 얼마 안 됐다. 7년 전 한 프로그램에서 유방암 초기라는 걸 발견했다. 아무 말도 안 들리고 하나님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수술 전날 밤 가족이 저를 위해서 기도했다. 저는 속으로 그래도 제가 여기서 믿음의 선배인데 멋있게 기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제 차례가 왔는데 ‘하나님 살고 싶습니다’ 그러고 기도하지 못했다. 제가 꺼이꺼이 우니까 가족들이 저를 안아줬다. 다음날 검사를 하고 수술실 앞에 가니 여기서부터 환자 혼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저는 ‘하나님 제 손 붙들고 가주세요’ 기도했다”고 했다.

이성미 집사는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하면서 배운 게 너무 많다. 병원에 있으면 병원 옷을 입어야 하고,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병원 밥을 먹어야 하고, 집이 있는데도 병원에서 지내야 한다. 갖고 갈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병원 암 환자 중엔 매일 밤 9시에 왔다 갔다 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저한테 내일이 없을까 봐요, 오늘이 마지막일까 봐요 라고 하는 그 친구의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건강하니까 당연히 내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내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을 살면서 나에게 없는 것을 그저 달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그걸 주시고 오늘 밤에 데려가시면 그 주신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도 나에게 없는 것을 불평불만 하면서 감사한 줄 모르고 하나님께 그저 억울하고 분할 일만 토해낸다.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다른 데서 빌었던 것들을 예수께로 와서 비는 것 밖에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예수를 믿는 건 종교가 아니라 진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우리가 변해야 한다”고 했다.

이 집사는 “성경 몇 독 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 골수를 쪼개고 뼈를 쪼개는 말씀을 내가 먹고 하나님께 살아내겠다고 애써야 한다. 우리가 돈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하루의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는 드리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얼마나 하나님과 오래 만나고 있는지,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따르려고 애쓰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말씀 한 자락을 읽더라도 제대로 잘 읽고 씹어서 말씀대로 살아내겠다고 몸부림 치는 게 예수 믿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가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시킨 과외가 성경공부다. 아이들을 말씀으로 키우고 싶다면서 말씀 한 자락이라도 읽어주거나 가정예배를 드려야 한다. 주일날 예배 한 번으로 아이들이 말씀으로 클 거로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실력이 없으면 누구라도 모셔다가 가르쳐야 한다. 그거 안 하면서 아이들 위해서 기도만하면 안 된다. 기도도 하지만 아이들을 말씀으로 가르쳐야 한다. 안 되면 엄마가 말씀 한 자락이라도 읽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 집사는 “저는 아이들에게 이미 유언을 준비했다. 성경 66권을 아이들을 위해서 녹음했다. 제가 아이들에게 물려 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제가 눈감았을 때 아이들이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다면 성경을 남겨주고 싶었다. 제가 매일 하는 일은 아이들한테 제 목소리로 잠언 1장부터 31장까지 매일 말씀을 읽어서 보내고 기도한 것을 보내는 게 제 몫이다. 저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없다. 하나님이 그 아이들을 키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성미 집사는 “저는 하나님께 구레네 사람 시몬이 되고 싶다고 기도한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고 주위에서 다 조롱할 때 얼떨결에건 떠밀려서건 예수님의 피 흘린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 누군가가 하나님을 조롱할 때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십자가를 지고 싶다고 기도한다. 왜 예수를 믿는데도 고난 투성이냐고 생각하는 분들 있을 것이다. 저는 이제 그 고난이 축복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고난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그 고난을 통해서 나에게 하실 말씀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말씀을 따라서 우리가 마지막 눈 감는 날까지 당당하게 예수를 증언하는 증인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이 천지 우주 만물을 지으신 분이 내 아버지다. 그분이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저는 이 세상에서 가진 게 제일 많은 사람이다. 우리가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라는 자신감을 갖고 당당해지길 바란다. 돈 있는 사람 앞에서 비굴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더 큰 예수가 있다. 그 좋으신 하나님을 내 일평생에 내 입술로 고백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간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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