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애 교수(서울여자간호대학교)
김명애 교수(서울여자간호대학교) ©‘복음한국TV’ 2월 랜선캠프 영상 캡처

청년사역단체 복음한국이 지난 8일 저녁 <머니러시의 시대 속에서 ‘복음’을 득템하라!>를 주제로 2월 랜선 청수련회를 개최했다. 이날 수련회에선 북한에 간호대학을 세우는 비전을 가진 김명애 교수(서울여자간호대학교)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의 유산과 함께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 교수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병을 크게 앓게 되면서 교회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교회에 모셔다드리고 왔다 갔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네 식구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공군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이 깨끗하게 나으니까 감사한 마음에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다가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고 하셨다. 가족 전체가 한 팀이 되어서 하나님나라를 섬기는 데 열심을 다했다”고 했다.

이어 “아아버지는 지역 복음화를 위해 힘쓰겠다고 지하에 교회를 개척했다. 같은 해에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아버지의 사표는 반려되고 교회 문을 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쉴 수 없었기 때문에 공군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나라에 충성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엔 하나님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쿵 쓰러지셔서 간암 판정을 받고 6개월 만에 소천했다. 아버지는 제 삶의 롤모델이었다.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그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저는 아버지에게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어서 아프리카 아이들의 콧물을 닦아 주겠다고 했었다. 아버지는 저의 비전이 너무 아름답다며 제 머리에 손을 얹고 전 세계를 누비며 주님을 전하는 주의 여종이 되게 해 달라고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그때 나도 자녀를 낳으면 이렇게 축복기도를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축복의 기도를 받고 자란 아이와 물질만 받고 자란 아이, 또 물질도 축복기도도 없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내 아이에게 어떠한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저는 아버지에게 십 원 한 장 물려받은 게 없지만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어려운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것을 우선순위 1번에 두셨다. 그것이 아버지의 삶에 철학이었고 두 딸에게 늘 했던 이야기였다.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기도 덕분이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귀한 믿음의 유산이다.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상태에서 어떤 길을 가면 어렵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삶을 살 수 있을지를 고민했었다. 요즘 청년들에게 꿈, 비전이 무엇인지 삶의 철학의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답하는 청년들이 거의 없다.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저는 비전을 바라보고 살았던 삶을 지금까지 살고 있다. 청년의 때에 나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기억하도록 훈련하신 부모님의 신앙교육 덕분에 저는 그 비밀을 알아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의 장례집회에 아버지의 기도와 후원으로 그동안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분들이 전국에서 올라오셨다. 그때부터 어떤 죽음이 아름다운 모습일까를 생각했었다. 솔선수범해서 보여주신 아버지가 굉장히 존경스러웠다. 아버지의 수첩엔 그동안 아버지가 돕고 있던 곳의 리스트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계좌번호 금액, 기도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때 선교의 삶이 이런 것이라는 걸 배웠다. 어렵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삶이 이런 거라는 걸 배웠다. 아버지는 저에게 도움을 주려거든 끊이지 않고 지속해서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었다. 어린 나이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몸 곳곳에 체득된 것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청지기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 자비량으로 살아갈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아버지가 소천하신 다음 아버지와 동역했던 어머니가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어렵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셨다. 저는 모든 가정이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자라나고 보니까 제가 얼마나 큰 축복의 가정에서 자랐는지 깨닫고 있다. 제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너는 왜 말하는 대로 되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말하는 대로 되는 삶을 살게 됐을까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기도 덕분이었다. 물론 저도 최선을 다해서 제가 가진 달란트가 땅에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두 분의 기도가 쌓여서 내가 가진 비전을 향해 멈추지 않고 그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어머니는 열심히 섬기시다가 췌장암 판정을 받고 6개월 뒤에 소천하셨다. 내가 본 부모님은 자식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챙기셨다. 그러면 축복을 많이 받아서 부흥이 되는 게 맞는데 빨리 소천하셨다. 하나님이 실수하는 분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때 제 생각이 옳은 생각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선 결코 실수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 믿고 있다. 그 뒤로 부모님이 살아계셨다고 해도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제가 꿈꾸고 소망하고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여기에 비밀의 포인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천국의 포인트를 쌓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저는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고 싶어서 저만의 비전을 꿈꿨다. 비전은 조직에서 말하면 조직의 미래상, 멀리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이다. 멀리 있는 나의 모습은 나만 볼 수 있다. 남들은 그 누구도 볼 수 없고 하나님은 보신다. 그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저는 제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루어진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저의 비전은 북한 개성에 간호대학을 세우는 것이다.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 아이들의 콧물을 닦아 주러 가겠다고 했던 시간에서 간호학과에 들어가서 만나게 된 나라가 북한이었다. 굶어 죽는 나라는 많지만 얼어 죽으면서 굶어 죽는 나라는 많지 않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대학교 1학년 때 방향을 북한으로 틀었다. 그 이후로 한 번도 제 기도와 비전에서 북한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북한에 있는 어렵고 병들고 소외된 삶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이 제 비전이었다. 저는 전략적인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 비전을 세우고, 비전 아래에 어떤 목적과 사명을 갖고 사느냐가 중요하다. 개성 땅에 병원을 세우겠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서 제 삶의 철학이 완벽하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어 “청년들이 나는 어떤 비전이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 비전에 따라서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이루려고 하는 비전과 비전 아래에 있는 나의 목적과 내 존재의 필요성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했으면 좋겠다. 나의 목적과 목표가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지, 네 마음과 뜻과 몸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에 근거해 구축되고 있는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삶에 비전에 세워졌을 때 그것에 맞는 목적과 사명이 나올 수 있다. 존재의 필요성은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야 한다. 청년의 때에 찾아야 한다. 삶의 주인공은 본인이고 그 주인공을 이끌어가는 분은 하나님이 되어야 맞다. 그렇게 됐을 때 우리가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조금 더 명확하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비전을 발견하고 그에 따른 목적과 사명을 발견하고, 그에 따른 삶의 철학을 발견했을 때 목표가 생긴다. 물론 우리가 삶을 계획한다고 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때론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겁먹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고 생각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떠올리고, 감사로 받으면 버릴 게 없다는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원망하지 않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웃을 때 같이 웃으시고 마음 아파서 울고 있을 때 같이 아파하신다. 재정을 관리할 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억지로 할 필요도 없고 누구한테 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중심을 아시기 때문에 최선으로 나를 섬겼다고 생각하신다. 우리가 일을 저지르면 감당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제가 북한에 간호대학을 세운다고 했을 때 제정신이 아니라고 보는 분도 많았다. 지난 십년 사이에 저는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졸업했고 마케팅을 전했다. 간호대학을 세울 때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호학 박사를 하고 지금 간호대학의 교수다. 간호대학을 세울 때 간호학에 대해서만큼은 전문인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난이 없이는 얻는 게 없다. 연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원망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그것이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는 절대 실수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또 우리가 맡은 자리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이탈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한 번만 기도해보시고 쉽게 이탈하지 말고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저는 간호대학을 세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과정 가운데 북에서 탈출한 새터민 간호학과 학생들이 힘들게 공부하는 걸 알게 되었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온라인 강의 영상을 찍었다. 이런 교육이 필요한 학생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아이엠알엔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전 세계의 간호 인력을 다 묶어서 교육해야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어 “저를 통해서 많은 것들이 흘러내려가는 축복의 통로의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했던 북한이란 땅을 알게 되고 그곳을 계속 바라보면서 혹시 하나님의 시선이 저기에 있는가 생각한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저를 이끌어주신 분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의 축복의 기도와 신앙의 유산이 저를 이끌어가게 만들어줬고, 제가 올바른 신앙관, 가정관, 재정관을 만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제 비밀을 다 말씀드렸다. 어렵고 병들고 소외된 삶을 향해서 눈물 흘리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눈물 흘리는 곳을 향해서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실까 하는 마음을 갖고 그들을 돕기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들어주실 거로 생각한다. 또 절대 겸손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젓가락이라고 하면 젓가락의 삶을 살아야지 포크를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내가 하나님께 어떤 도구인가를 돌아보는 삶이 필요하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안에 기쁨이 샘솟았으면 좋겠다. 지금 만약에 어려움이 있거나 계획대로 안 되고 있다면 활짝 웃고 하나님이 개입하셨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가 전략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만지시고 이끄시고 보장하신다. 우리가 꿈꿀 때도 이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이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 정확한 삶의 목표와 목적과 철학, 비전이 있다면 그 길을 아름답게 이끌어 가실 분은 오로지 하나님임을 잊지 말고 믿고 간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언제 어디서 만나든지 기쁘며 소망하며 살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복음한국 #랜선청년캠프 #김명애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