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배우다’ 저자 이요셉 작가
‘결혼을 배우다’ 저자 이요셉 작가 ©‘안산동산교회 대학교구Visionnuri’ 유튜브 영상 캡처

안산 동산교회(담임목사 김성겸) 대학교구 겨울수련회 ‘Levites’ 2일차인 지난 1월 29일 이요셉 작가(‘결혼을 배우다’ 저자)가 ‘만남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이성 교제와 결혼에 관한 특강을 전했다.

이요셉 작가는 “저는 사진작가다. 제가 찍는 사진은 조금 남루하고 아픈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진 속 아이들이 웃고 있다. 환경이 지치고 남루하지만, 이 아이들을 천국의 야생화라 생각한다. 청년 때 하나님 앞에 정말 잘 살고 싶다고 기도도 하고 친구, 선배들에게도 이야기했었다. 다들 믿음으로 살아가기에는 세상이란 벽이 너무 높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멋진 집, 좋은 차가 있으면 잘 산다고 이야기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잘 사는 게 아니라 돈이 많은 거다. 잘 산다는 개념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잘 살려고 하면서 하나님을 더 경험하고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이 밀려나게 된다. 두려움은 기도하고 찬양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두려움보다 큰 것에 의해서 밀려난다. 학업, 진로, 취업, 관계에 관한 걱정, 부모님에 관한 걱정 등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다. 제게 하나님은 구체적이시고 실제적인 아빠셨다. 이사야서 40장에 우리가 두려워 떠는 열방이 하나님께는 통의 한 방울 물과 같다고 이야기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가진 두려움보다 크신 분이시라는 걸 경험하면서 점점 내가 가진 두려움이 밀려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우리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조건을 가졌을까를 많이 고민한다. 결혼적령기에는 내가 과연 결혼할 자격이 있을까를 고민한다. 아이를 낳을 때 부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를 고민한다. 하나님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아빠 같은 분이라는 걸 경험했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결혼이었다. 중국 어느 지하에서 하나님이 내 아빠시니까 저는 이렇게 살아가는 게 전혀 두렵지 않지만 결혼은 두려운 것 같다고 기도했었다. 저는 이렇게 살아가는 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랑해서 낳은 내 자녀가 내가 선택한 삶 때문에 불행해하거나 배고파지거나 힘들어한다면 내가 선택한 것들이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에 결혼이 너무 두려운 것 같다고 기도했었다”고 했다.

이어 “1년 정도 지나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나의 아빠이기에 두렵지 않다고 했던 제게 결혼하면 너의 개인의 아버지에서 너의 가정의 아버지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면 먹이고 입히고 기르신다고 말씀하셨으니까 그렇게 살겠다고 했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시는 걸 경험했었다. 하나님은 실제적인 분이라는 걸 알았는데 결혼이 두려웠던 이유는 결혼하면 나만 돌보시고 우리 가족은 돌보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돌본 것처럼 내 가정을 돌볼 거라고 말씀하셔서 결혼하겠다고 하고 누구를 만날지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많은 분이 저에게 ‘어떤 사람을 만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한다. 저는 좋은 점 1만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외모, 학력, 직장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 저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보석이라고 생각했기에 하나님의 시각을 갖고 온 세계의 한 사람을 만나기 원했다. 실제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그 사람만이 가진 보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점 1만 있어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기능적인 이유가 전부여선 안 된다. 저는 이 사람에겐 이런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터뷰했었다. 지금의 제 아내도 인터뷰했었다. 제 아내는 시각장애인 목사님의 셋째 딸로 태어나 가난했던 집안에서 자랐지만,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었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 쉽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 우리가 경험한 상처나 아픔은 그 사람만이 가지는 깊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20대 초 중반에 하나님께 세상에 있는 수많은 감정, 경험을 다 경험해보고 싶다고 기도했었다. 우리가 경험한 감정과 경험들은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위로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환난은 인내를 낳는다고 말한다. 환난은 다른 말로 영적인 체력과 같아서 그 사람이 경험한 환란은 그 사람의 깊은 체력이 될 수 있다. 아내의 시간을 보면서 깊이 있는 아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아픔들 환란들이 있다. 남들이 알면 나를 우습게 여길까 봐 지워 내거나 감추려고 하면 쓴 뿌리가 되어서 내가 가장 사랑해줘야 할 사람을 할퀴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내가 가진 연약함을 하나님께 내어놓으면 시간이 지나서 그 사람만이 가진 깊이가 된다. 하나님께선 그 연약함을 내가 갖다 쓰는 강한 무기가 되고 나의 영광이 될 거라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그는 “아프리카로 한 달 정도 떠나기 전날 지금의 아내에게 헤어지자는 문자가 왔었다. 나에게 아무 도움이 못 되는 것 같다며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저는 아내에게 네가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만나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한 사람을 기능적인 이유로 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프리랜서여서 불안정하니까 상대방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바라는 것이다. 기능적인 이유는 영원하지 않다. 기능적인 이유가 이 사람을 만나는 이유가 된다면 그 의미를 잃어버릴 때 언제든지 이 사람은 나와 관계없는 사람, 버려도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기능적인 부분도 그 사람이 인내하고 수고한 한 부분이기 때문에 딱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기능적인 이유가 이 사람의 존재를 덮어버리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누군가를 만날 때 이 사람이라면 나를 만족시켜주겠지,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아픈 가정에서 자라면 흔히 두 가지의 반작용이 생긴다.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우리 가정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괜찮다는 생각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족시켜줄 수가 없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전제하는 순간 두 사람 다 불행해진다. 한 사람은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어떻게든 그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은데 채워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에 고통받는다”며 “전제를 하나둘 바꿔 보면 우리는 조금 다른 시야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이 작가는 “많은 메일과 DM을 받는데 그 근원을 따지면 스킨십과 관련돼 있다. 그 당시에는 즐거웠고 훈장과 같은 시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을 고통스럽게 찌르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스킨십이다. 스킨십은 수위가 문제가 될 때가 있고, 그 수위가 우리가 책임지지 못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다. 흔히 남자에겐 브레이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스킨십에는 브레이크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가깝다. 키스 다음에 뽀뽀하는 선으로 물러나면 뭔가 손해 보는 감정을 느끼는 게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킨쉽에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한다면 자매 쪽에서 걸어줘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스킨십을 어디까지 하면 좋을까요라고 했을 때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봤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이면 적당한 수준인 것 같다. CCTV로 우리의 모습이 기록되고 공유되었을 때 부끄러울 여지가 있다면 죄다 죄가 아니다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회개할 지점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제가 어느 날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달라고 기도했다. 다음날 후배 한 명을 길에서 만났는데 저에게 선배는 이런 부분이 잘못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만 알고 있는 그 내용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 순간 정말 귀까지 뜨거워졌다. 너무 아팠던 시간인데 내가 이렇게 치명적으로 죄인이라는 것을 그날 정말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숨겨진 어떤 부분을 알게 되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낄 지점이라면 회개할 지점에 가깝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연애할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흔적들이니까 스킨십을 훈장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지울 수 없는 흔적, 상처가 될 때가 많다. 내가 너를 책임질게, 행복하게 만들어줄게라는 말의 저의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진심일 수 있지만, 우리가 하는 말들이 우리를 책임져주지는 못한다. 사귈 때는 영원할 것 같지만 지켜 주겠다는 말을 담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자매 쪽에서 걸라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그냥 걸면 사랑을 거절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기에 브레이크를 걸겠다고 미리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면 거절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미리 약속했던 것들을 하는 것이다. 전쟁은 평화의 때에 준비해야 한다. 평화의 때에 창과 칼을 준비하고 방패를 준비해서 전쟁의 때에 준비한 것들을 꺼내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이 고해와 같은 것처럼 우리의 만남 속에는 갈등이 있다. 갈등이 있을 때 서로 한 보 두 보 뒤로 물러나면 어느 정도 괜찮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 괜찮을 만한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는 게 가정이나 연인이다. 이 갈등을 전제해야 한다. 누군가를 만날 때 갈등을 전제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겼을 때 끊어내게 된다. 갈등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서 당연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갈등할 때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한 사람의 다른 점을 나의 경험에 빗대지 않고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10년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사람과 충분히 갈등할 수 있지만, 그 갈등 속에서 나와 다른 이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 갈등의 시간 속에서도 지켜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진심이다.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고, 물리적으로 갈등할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이 사람이 평소에 나한테 인격적으로 했는지에 대한 시간이 쌓이면 우리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상상해서 만든다. 사랑하는 가족끼리도 연인끼리도 우리는 갈등할 수 있다. 그 갈등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심을 택해야 한다. 진심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패턴, 경향성, 그 사람이 계속해오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죽였으면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낼 수 있었지만,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말을 스스로 증명해내는 것이다. 그것을 진정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첫째 딸이 ‘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예뻐하며 돌봐주던 곰 인형이 있었다. 어느 날 친척 할머니가 커피를 마시다가 인형에 커피를 엎질러 버렸다. 딸 아이는 ‘아이야 너를 깨끗하게 해줄게,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해 주면 너는 깨끗해질거야’라고 말하며 인형을 깨끗하게 씻겨줬다. 이 인형을 볼 때마다 딸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제가 하나님께 드렸던 수많은 기도 중에 이런 기도가 있었다. 제 인생에 부끄러운 그림이 너무 많은데 이 오점들을 수정액으로 하나둘 지워내는 것 말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의 캔버스에 새롭게 그릴 수 없냐고 기도했었다. 하나님이 그럴 수 있다고 하시며, 예수님의 보혈로 너를 덮을 때 너는 인생의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 작가는 “우리 안에 친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고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침묵하고 있었던 수많은 아픔이 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교회에 가서 기도할 때도 차마 입을 벌려 기도할 수 없는 내 안의 비밀들이 있다. 그 모든 것을 양팔 저울 한 쪽에 올리고 나머지 저울 한쪽에 예수님이 흘리신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예수님께로 기울어진다. 이사야서 40장에 하나님께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다고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작게 여길 뿐이지 하나님이 정말로 작은 분은 아니시다”라고 했다.

이어 “양팔 저울 한쪽에 우리의 모든 것을 올리고 예수님의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렸을 때 새로운 캔버스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우리가 믿고 싶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믿기 바란다. 미가서 7장에서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는 분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새롭게 나아가면 된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길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한 사람으로 바라봐주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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