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구원’은 곧 ‘해방’이다.

예장 합동총신 직전총회장 최철호 목사
예장 합동총신 직전총회장 최철호 목사 ©합동총신

서남동은 인간의 죄 문제를 예수 당시의 상황에서 찾는다. 당시 사람들의 죄에 대한 개념이란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풍습을 따르지 않는 것이 죄였고, 사회적 부조리와 구조적인 모순이 죄였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성경의 ‘구원’을 ‘해방’으로 본다. “한마디로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공식화할 수 있겠죠. 다시 말해서, 그것은 곧 인간의 구원에 집약되는데, 이것을 내 입장에서 현대적으로 표현한다면, 구원이라는 말보다는 ‘해방’이라는 말이 더 타당성을 가집니다.” 그에게 구원은 현세적 ‘인간 해방’이다! 그는 대담자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의 핵심이 인간해방이라면 구태여 신앙이라는 말과 연관시킬 필요가 있겠느냐는 물음에, 소크라테스로부터도 감화를 받지만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는 ‘믿는다’(belief)고까지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신앙이란 결국 역사적 지식이고 그것은 인격적 관계를 동반합니다. … 예수와의 관계도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faith)이란 말은 자주 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서남동이 이해하는 믿음이나 구원은 성경이 말하는 그것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가 말하는 믿음은 belief이지 faith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8:42). 여기 믿음은 faith를 말한다. 구원은 단순한 해방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먼저 영혼이 구원을 얻고, 종말에는 육체까지 영화의 단계에 이르러 천국에서 영생케 되는 것을 말한다(벧전 1:9 ; 딤후 4:18).

6. ‘부활’은 민중이 주체가 되는 세상이다.

서남동에게 부활은 마음(mind)에 대한 육체의 부활, 정신(spirit)에 대한 물질의 부활, 지배자에 대한 민중의 부활, 역사와 신학에 가리고 밀려난 이야기와 민담의 복권을 의미한다. 그에게 있어 부활 신앙은 전통 신앙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는 부활과 관련된 죽음의 문제를 ‘죽임’[殺]의 문제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전통신학과는 출발 자체가 다르다. 그는 인간 존재의 종국적 운명에 관하여 그리스적 전통과 히브리적 전통이 있다고 말한다. 전자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육체를 떠나 이데아의 세계에서 불멸한다. 후자는 새 시대에서 실체적인 인간의 부활을 대망한다. 그가 이해하는 부활은 “하나의 역사적・정치적인 상징”에 불과하며, 개인 신앙의 표현일 뿐이다. 그는 말하기를 기독교는 이 두 가지 전통을 모두 이어 받았는데, 기독교가 콘스탄틴의 왕권종교로 변모되면서 기독교의 ‘신국’은 타계적이고 피안적인 것으로 탈락하였기 때문에 다시 메시아 왕국인 천년왕국이 차안此岸에서 재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재형성이란 민중을 통한 사회경제적인 변혁이다. 그는 이것을 불교의 미타신앙과 미륵신앙에 비교한다. 그는 개인적인 부활신앙보다 이 땅에서의 사회경제적 변혁을 통한 민중해방을 주장한다. 그는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막 16:7)고 한 말씀은 “민중이 메시아 왕국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약속”이고, “예수의 부활이라는 것은 짓눌려서 죽은 것 같은 민중이 깨어나 함성을 지르고 머리를 쳐들고 자기 역사의 주체적인 역군으로 등장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교회의 제3의 형태인 성령의 교회의 선교라고 한다. 그에게 ‘성령의 교회’는 곧 ‘민중의 교회’이다. 그는 부활을 철저히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그에게 부활은 민중이 주체가 되는 세상이다. 그에게는 4.19 혁명도 부활의 사건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활은 사회적이고 단체적이고 집단적인 신앙입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다 망각하고 하나도 안 가르쳤습니다. 따로따로 하늘나라에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잘못된 거지요.” 그는 부활을 이렇게 정리한다. 부활의 첫째 형태는 교회이고(가톨릭 입장), 둘째 형태는 성서이며(개신교 입장), 셋째 형태는 각성하여 일어난 민중이다.

성경은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6-19)고 증언한다. 여기에 다른 무슨 해석이 필요한가? (계속)

최철호 목사(예장 합동총신 직전총회장, 한교연 다음세대를위한교육위원장)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최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