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한인장로교회 신정인 목사

'선교로 부흥하다, 선교 때문에 힘들어 졌지만, 다시 선교로 회복돼, 선교에 전력을 다하는 교회'. 마이아미한인장로교회(담임 신정인 목사)를 한 문장으로 소개 한다면 바로 이렇다. 이걸 다시 한 단어로 요약하면 당연히 '선교'다.

미국에서 남미와 가장 인접한 플로리다 마이애미 지역에 위치해 있는 마이아미한인장로교회는 일년에 6개월은 선교를 준비하고, 13살이 되야 단기선교를 갈 수 있는데 12살짜리 아이들도 '한국 나이'로 13살이라며 자신도 보내 달라고 떼를 쓰는(?) 조금은 특별한 교회다. 과연 무엇이 성도들을 선교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게 하고, 선교에 '올인' 하도록 했을까?

백만장자 되고 싶은 꿈, 거의 잡힐 듯 했는데 '평안'은 살 수 없더라

"어릴 때 돈에 대한 상처 때문에 가장 일을 적게 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뭘까 생각해보니 치과의사였어요. 그래서 치대를 갔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본과 2학년 때 부모님을 설득해서 남미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서 시계사업을 크게 했어요. 사업이 잘 됐고, 그걸 갖고 미국 시애틀로 다시 이민 와서 남들 일년에 벌 돈을 한달 만에 벌어보기도 했죠. 몇 년만 더 있으면 백만장자가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왜였을까요? 제 마음 한 켠에 불안함이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신앙생활도 잘 해왔고,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봉사도 열심이었다. 크리스천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원을 갖고 교회 팀을 만들어 매주 토요일 공항에서 전도를 했다. 생판 보지도 못한 사람이 다가와서 5분, 10분 복음을 전하는데 눈물을 흘리며 믿겠다고 하는 이들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이 밀려 왔다. 그러다 사소한 일로 가족간 다툼이 생겨, 홧김에 깨뜨린 컵에 손을 다치고, 아픈 손을 붙들고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일해야 하는 자신을 보고 '돈의 노예'가 된 인생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손이 아파서 쉬는데 그림 속 한 할아버지가 성경책을 놓고 빵과 우유를 앞두고 기도하는 걸 보는데 그 평안한 얼굴에 저를 비춰봤어요. 집도 세 채고, 빌딩도 있고, 사업도 잘돼 꿈에 그리던 모든 걸 가진 듯했지만 저는 가난한 그림 속 할아버지의 평안은 갖지 못했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반평생은 이렇게 돈을 위해서만 살았지만 후반전에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돈에서 자유를 주시고 길을 열어 주세요.'"

갑자기 신학을 하겠다고 선포한 신정인 목사에게 찬성하는 가족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일년간 기도하며 주신 소명을 확신한 그는 '저는 소명을 받았으니 이 길을 갑니다. 막다가 무슨 일 생겨도 책임 못 집니다'라고 선언한다. 멀쩡하던 아내가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에 가니 자궁암이 2기였다. 건강하던 아버지는 일주일 뒤에 담이 걸리기 시작하는데 허리도 못 필정도로 온 몸에 고통이 온다.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은 가족들은 신정인 목사를 떠밀듯 신학교로 보낸다. 그가 서른 일곱일 때 일이다.

첫 교회에선 교회 건축하고, 두 번째 교회 부임 일주일 만에 불타고...

서른 일곱에 콜롬비아신학대학원에 입학해 졸업하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는 신정인 목사는 처음 사역지로 조지아 콜럼버스로 향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년병 목사가 교회가 부흥하자 건축이란 모험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정작 자신은 지쳐, 3년 반의 목회를 마치고 테네시 내쉬빌 쪽에 청빙을 받아 옮겨가게 된다. 다시는 교회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는데...부임한 지 2주 만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

"두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소방차 소리가 요란해요.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보니 교회 종탑에 불이 붙어서 눈 앞에서 '퍽!'하고 떨어져서 십자가가 거꾸로 박히는데 털썩 주저 앉아 엉엉 울었어요. 그리고 어떤 방송사에서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고 묻길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더 좋게 지어주실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내쉬빌 온 지 열흘 만에 '불탄교회 목사'로 유명해졌죠(웃음). 그 소식을 듣고 교회를 사랑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헌금을 보내셨어요. 처음 갔을 때 지붕이 시커매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물이 새서 그런데 고칠 돈이 없어서 놔뒀다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목사가 새로 온다고 3주 전에 보험을 든 거에요. 전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게 또 건축을 하게 됐죠."

11월에 불이 나고 그 다음해 4월 부활주일에 감격적인 헌당예배를 드리게 된다. 꾸준히 성장한 교회를 다시 한번 옮겨 7에이커 대지 위에 멋지게 건축하게 된다. 목회지 두 곳에서 건축을 세 번이나 하게 된 것이다. 이후 마이애미에서도 교회를 두 번이나 이전하고 자리잡는 과정을 겪었으니, 하나님께서 신정인 목사에게는 교회를 세우고 든든히 자리잡게 하는 사명을 주신 듯했다.

교회 한국한교 어린이들의 모습(상), 선교지에서(하)

선교 하다 갈등 생겨 힘들던 교회에 목회의 마지막을 걸다.

신정인 목사는 늦은 나이에 신학대에 가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처음 10년 동안은 많이 배우게 하시고, 그 다음 10년은 제게 주신 탤런트를 마음껏 사용하게 해 주시라고. 마이아미한인장로교회에서 청빙 제안이 온 것은 딱 10년이 됐을 때였다. 처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선교를 하다 갈등이 생겨 모든 선교가 중단된 곳이지만 바로 이 곳이 '중남미의 관문'과 같은 곳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고 한다. 당시 유카탄 선교를 다니며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역사와 온 마을이 변화되는 현장을 경험하며 이에 대한 소원이 있던 터다.

"아내는 남미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남미통'이에요. 언어는 물론 문화도 그 나라 사람이죠. 저 역시 남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었고요. 이 곳이라면 우리가 가진 탤런트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막상 가보니 지난 3-4년간 지독하게 싸워서 많이 힘든 상태였죠. 감사한 것은 선교를 해야 한다는 마음은 하나였기 때문에, 가서 곧바로 선교에 집중했죠. 여기서는 싸우던 분들도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역사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걸 간증하고 나누면서 사소한 갈등과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녹아졌어요. 그걸 체험한 사람은 마치 '아편' 같다고 할까요? 선교 안하고는 못 배겨요(웃음)."

유카탄과 니카라과, 콜롬비아, 파라과이 그리고 큐바까지 중남미 전역을 다니며 전략적인 선교를 펼치고 있다. 단기선교팀은 우선 이미용, 의료, 안경 사역과 VBS를 일주일 가량 진행하는데, 머리를 한번 빗어줘도 사랑을 담아 하고, 안경을 하나 맞춰줘도 성경구절을 읽게 하고 정성으로 섬기니 자연스레 마음이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3일 동안은 집중적으로 찬양과 말씀, 그리고 간증을 전하는데 이를 통해 예수를 영접하는 이들이 200-300명에 이르게 된다. 이들을 지역교회와 연결해주고 앞선 구제사역 역시 지역교회 리더들과 함께 해 기술과 도구를 전수해 주고 있다. 이렇게 한 지역을 2-3년간 섬긴 뒤, 자립교회가 되면 기도로 후원하지만 더 이상 지원과 방문은 하지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돕게 되면 자생하고 자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운 교회가 유카탄에만 6-7개에 이른다.

제자 훈련의 꽃은 '선교', 배운 모든 걸 실천해 볼 수 있는 시간

교회는 부활절을 시작으로 그때부터 매주 1-3시간씩 선교훈련을 하고, 6월에 떠나기 시작해 8월까지 선교지를 다녀오게 된다. 이후 가을에는 간증도 하고, 선교보고도 하면서 다시 은혜를 나누는 '영성축제'를 벌인다. 고민이라면 엄마, 아빠가 선교지에 다녀와 변화되는 걸 보고 자녀들 역시 너도 나도 선교를 가고 싶어 안달이라는 점이다.

"저희는 제자 훈련도 굉장히 열심입니다. 단기선교는 '제자 훈련의 꽃'이라고 봅니다. 제자 훈련하면서 기도, 성경, 간증, 전도 훈련 다 하는데 선교는 그 모든 걸 실천해 볼 수 있는 시간이죠. 언제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이적을 체험해 보고, 천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간증 해보고, 무작정 전도지만 들고 나가 전도해보겠어요. 처음에는 '선교에 동참합시다' 점잖게 권하다가 시간이 가까워 지면 '안 가면 손해'라는 분위기가 돼요. 유스 아이들조차 선교지에 가고 싶어서 한국에 갈 기회도 마다하곤 해요. 참 귀합니다."

마이아미한인장로교회는 가는 선교뿐 아니라 보내는 선교 역시 열심이다. '마이애미선교대회'를 통해 지난 15년간 쌓인 선교 노하우를 선교를 하고는 싶지만 방법을 모르거나 재정이 약해 힘든 지역교회들을 모아 함께 나누고 있다. 교회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필요로 하는 교회에서 사용할수 있도록 단기선교자료들을 공개하고 있다. (http://kpcmiami.net/MissionTrip) 남미 선교사 가정을 초청해 재충전과 휴식의 기회도 제공하기도 하다.

하나님의 선물과 같은 쿠퍼시티의 새로운 성전.

보수적 신앙의 노선 지키고자

보수적 신앙 노선을 지키고자 교회 이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마이아미한인장로교회는 지난해 드디어 미래의 새로운 꿈을 이뤄나갈 포근한 둥지에 안착하게 됐다. 마이애미 북쪽 지역에 위치해 있던 교회는 부흥으로 교회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노회의 도움으로 조금 더 북쪽에 위치한 오래된 미국교회를 빌려서 사는 방식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교단 내 동성애 찬성 기류에 반대해 노회를 옮기게 됐고, 갑작스럽게 갈 곳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한 5년 정도면 그 교회를 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회에서는 동성애 정책에 찬성하느니 노회를 옮기자고 결정했어요. 그리고 교회를 찾는데 한인 커뮤니티와 가깝고 학군이 좋은 유대인회당을 찾게 됐습니다. 당장 100만 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회에서 론을 받고 이전교회를 수리한 비용을 받았지만 턱 없이 부족했죠. 기도하던 중에 성도들의 헌신과 도움으로 무사히 구입해서 올 수 있었어요. 아직 갚아야 할 부분이 많고 재정적으로도 팍팍하지만 이제 이 곳에서 우리가 꿈꿔온 미래를 마음껏 펼쳐볼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는 교회'라는 비전을 갖고 전 교인 제자 훈련에 힘쓰는 교회, 자녀 교육에 힘쓰는 교회, 평신도가 활발하게 사역하는 교회, 그리고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교회를 향해 쉼 없이 달리는 마이아미한인장로교회를 통해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속히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마이아미한인장로교회는 9730 Stirling Rd Cooper City FL 33024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일 1부 예배 오전 9시, 2부 예배 오전 11시, 영어예배 오전 11시에 드려지며 수요일 오후 8시에 수요집회가 화-토요일 오전 6시에 새벽기도회가 열린다. 이외에도 다양한 중, 고등부 예배와 어린이 예배, 한글학교, 성경공부 등이 제공된다. 전화 954-704-1553로 문의하거나, 웹사이트 www.kpcmiami.net에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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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한인장로교회 #신정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