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의 소논문 ‘포스트 코비드 시대, 사역의 변화에 따른 교회 예배와 음악’을 연재합니다.

오늘날 교회 예배에 주는 도전들

3)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물들어가는 예배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앞에 역사적 고찰을 통해 보았듯이 모세의 시내산 예배에서 주체는 하나님 이심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요 오직 그 분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고, 그분만이 존귀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이 예배의 본질이 많이 희석되어가고 있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현대 교회들이 니르시시즘(Narcissism)에 물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니르시시즘 이란 "자기 중심성 성격 또는 행동을 말하는 것" 이라고 위키백과 사전에서는 정의한다. 즉, 코로나 시대에 영상을 통한 예배가 대세로 되면서 예배를 구성하는 사역자들이 예배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되려는 유혹에 잘 넘어간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노진준 목사는 지난 2020 가을학기 월드미션대학교에서 "복음적인 예배란 무엇인가?" 라는 특강을 통해 "현대교회는 니르시시즘 예배에 물들어가고 있다." 고 이야기 한다. 이것은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많이 나타나 있던 사회적 현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영상 예배가 보편화 되어가면서 예배자의 대상이 단순히 본인들이 섬기는 교회 교인들뿐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다는 전제가 예배지도자들에게는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니 그 현상은 더 가속화 되어 나타나게 된다.

이런 현상의 결과로 예배에서 무대 위에 있는 예배자들(설교가, 기도자, 음악가 등)이 인기 영합주의(Populism), 심미주의(Aestheticism) 사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그것에 더 깊이 물들어 가도록 부추기고 있다.

마치 무대 위에서 뛰어난 연주자가 되어서 어떻게 하면 수사학적으로 훌륭한 기술을 갖추고, 그것으로 아름다운 말을 구사해서 좋은 영향력을 펼쳐서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고 감동시킬까?,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예술음악을 펼쳐 회중들에게 감동을 주고, 귀를 즐겁게 하여 좋은 예술 음악인이라 칭찬을 받을까 ? 이러한 요소들에 깊은 관심과 부담을 갖고 그것을 목적으로 음악인들이 찬양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니르시시즘에 물들어가는 현상인 것이다.

20세기 초 의학과 심리학과 영성을 한데 결합한 위대한 사상가이자 영성가인 폴 툴루니에는 이런 고백을 한다.

"나는 사람들이 내 글에서 대중을 즐겁게 하는 저술 기법을 익히려고 할까 염려된다. 나는 지금처럼 단순함을 유지하고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을 아무런 꾸밈없이 기술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말이 오늘의 설교자들에게, 기도자들에게 또 예배 음악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떨림의 고백으로 매 순간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 아름다움을 드러내려 하는 모든 기술들을 사용하여 인기영합주의와 심미주의적 요소를 드러내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에 물들게 되는 중요 요인이 되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20세기 초 불버리즘(Bulverisam) 이라는 신종어를 만들었다. 이 말은 누군가의 생각이 틀린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그가 틀렸다는 사실을 먼저 입증해야 하는데 그런 논의도 없이 그가 틀렸다고 가정하고 그가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부지런히 설명하는 방법이다. 주의를 분산시켜 무작정 그가 틀렸다고 가정한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한다. CS 루이스는 당시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개탄했다.

이 사상은 교회에 다양한 이론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 때 한국 교회에서는 밴드악기들(기타, 드럼, 키보드)이 예배음악 악기로는 절대 불가하다는 이론을 내세워 예배에서 악기로는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악기들이 오늘날 교회에서 회중찬양을 인도하는 중요한 악기로 자리매김하여 잘 정착되어 사용하고 있다.

당시 이 악기들을 거부하게 된 이유는 예배음악의 본질에 근거 하기 보다는 너무 세속적인 악기라고 규정하고 교회음악 악기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처럼 논리에 근거해 진리를 논하기 보다 당시의 문화와 환경에 의해 편리함을 이론 삼아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이것을 필자는 불버리즘의 한 현상으로 본다.

오늘날 코로나로 인해 영상 예배가 대세가 되면서 무대 위에 있는 예배자들(설교가, 기도자, 음악가 등)이 예전보다 더 많이 주연 배우(Actor, Actress)들이 되려는 나르시시즘의 유혹을 받고 있다. 필자는 예배의 모든 사역자들이 두 가지를 가슴에 새기어 온전한 예배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첫째, 복음적인 예배에 대한 정의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복음적인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 없이 예배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배의 주체가 내가 아닌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하는 회중들로 하여금 복음의 감동을 통한 동감이 되게 하여 온전히 하나님만 드러나게 하도록 도와야 한다. 즉 예배에서 회중들은 연주자(Performer)가 되어 하나님을 존귀케 하도록 연주하는 것이고 무대 위에 인도자들은 그것을 돕는(Helper) 역할이 전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불버리즘 사상에 고착화 되어 예배와 음악의 본질을 놓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급변하는 현대 문화 속에 예배와 음악은 참 많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바뀌어 가며 진실을 가장한 거짓의 유혹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나도 모르게 변질되어진 이론들이 내 사역에 정착되지 않게 노력해야 하고, 혹 잘못됨이 있다면 즉시 돌이키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참 외로운 길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거대한 바알신을 물리치고 난 후 이세벨이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며 도망자 신세가 된 엘리야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은 더이상 기적의, 능력의 하나님이 아닌 그저 세미한 음성으로만 엘리야에게 답해 주셨다. (왕상 19:13) 그리고 그 호렙산에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입맞추지 아니한 칠 천명 (왕상:19:18)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이 칠 천명과 같은 나르시시즘에 물들지 않은 순전한 예배자로 하나님께 인정받아 혼탁한 이 시대에 바르게 쓰임 받는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계속)

윤임상 교수(월드미션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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