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목사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가장 마지막에 창조하신 피조물은 ‘사람’이다(창 1:26). 그런데 사람이라는 피조물은 다른 피조물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창조됐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고 하셨다. 흥미로운 점은 모세가 이 부분을 다시 27~28절 말씀을 통해서 동어 반복이라는 강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우리가 가장 관심 갖게 되는 부분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다시 “남자와 여자”라고 언급된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는 객체로서의 개념보다는 ‘가정’의 최소단위를 이루는 남녀로서 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를 통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남자만, 혹은 여자만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지 않고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이라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형상이란 “남자와 여자”의 관계, 다시 말해서 ‘가정’ 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정은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하나님의 형상을 볼 것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한 가정’을 이룰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사실은 2:24에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한 말씀에서 잘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형상)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세 분 하나님으로 인격적 독립을 이루고 계시지만, 이 세 분은 동시에 하나의 일체를 이루신다. 이런 신비를 가정이 보여준다.

물론 남자나 여자, 각 개체들도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특별히 창조된 존재가 바로 ‘가정’이라는 말이다. 다른 여러 동물들도 암수가 있고 짝지어 새끼를 낳지만, 그 관계를 가정이라 하지 않는다. 가정은 오로지 남자와 여자라는 두 사람의 결합만을 지칭한다. 이는 가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뜻하신 목표가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 특별히 뜻하신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창세기 2:5 말씀을 보아야 한다. 창세기 2:5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땅을 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구절은 자칫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초목과 채소는 이미 셋째 날에 창조됐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땅을 갈지 않아 나오지 않은 초목과 채소는 셋째 날에 창조된 나무와 채소와는 다르다. 2:5에서 언급된 식물들은 인간이 땅을 갈아야만 나오고 생존하는 피조물을 뜻한다.(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창세기」, (국제제자훈련원, 2010), p.106.)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어떤 피조물은 인간의 경작행위를 통해 존재하도록 작정됐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창조하지 않으시고, 어떤 피조물은 사람의 경작행위를 통해 존재하도록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확대 해석한다면 오늘날 품종 개량, 문명, 문학, 예술작품, 문화 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인간의 창조 행위(창조 대리 행위)는 ‘류’(類)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고 ‘종’(種)의 영역으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포유류를 어류나 파충류로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된다. 그러나 과일류(類)의 종(種)을 개량하여 더 먹기 좋고, 독성이 제거되며, 더 영양분이 많도록 하는 것은 허용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허용된 창조 영역이다. 물론 이런 행위를 한다고 해서 인간이 창조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분명히 하나님의 창조 행위로 보아야한다.

여기서 우리는 2:5에서 “갈”이라고 번역된 것과 2:15에서 “경작”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여기서 “갈”과 “경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바드’다. ‘아바드’는 제사장 용어로 흔히 “예배”라고 번역된다. 여기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정)를 통한 경작행위가 바로 ‘예배’를 뜻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조하신 목적은 ‘예배’를 통해서 창조를 완성하게 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세기 1:28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은 예배를 통한 창조의 완성 명령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여기 창세기 1:28에서 “땅”이 반복적으로 언급된 점을 주목하라. 이는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서 “땅”을 경작하길 바라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렇게 땅을 경작하는 행위를 ‘아바드’, 즉 ‘예배’라 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문화’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culture’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영어 단어 ‘culture’는 라틴어 ‘cultura’에서 나온 말이며, 라틴어 ‘cultura’의 뜻은 ‘경작’(cultivation)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작, 문화, 예배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경작’이란 종교적으로는 ‘예배’로, 사회적으로는 ‘문화’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명확하게 말한다면, 문화는 예배의 결과이다. 예배를 어떻게 하느냐를 통해서 경건한 문화(문명), 불경건한 문화(문명)가 결정된다. 그리고 이 문화의 핵심 모태는 바로 ‘가정’이다.

이렇게 두 남녀로 구성된 가정은 두 가지 임무를 감당해야 한다. 첫 번째는 예배 공동체를 지켜내는 것이며, 두 번째는 경건한 후손을 배출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하는 것이다(말 2:15). 이것이 가정의 정체성이다. 가정이 이런 두 가지 소명을 등한시 하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 오늘날 문화와 문명이 창조의 발전이 아니라, 파괴로 가게 된 이유는 가정이 예배의 중심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가정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고 말았다. 가정이 우상숭배 예배로 가득하면 세상은 우상숭배 문화와 문명이 가득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는 파괴된다. 뿐만 아니라 경건한 자손을 배출하는데 무관심하게 되면 다음 세대는 창조를 파괴하는 문화와 문명을 건설하는 우상숭배(우상예배)의 세대가 된다. 이것을 가인의 세대라 한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오늘날 인류 비극의 원인이 어딘지 근본부터 다시 돌아보고, 무엇보다 교회가 가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고 각성되길 바란다.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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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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