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김갈렙 목사
김갈렙 목사

부활절 하면 요한복음 11장이다. 복음서에서 가장 부활 사건을 세밀하고 웅장하게 기록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즉각 버선발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틀을 유한다. 즉 확실히 죽고 썩도록 방치한 셈이다. 어떻게 이런 잔혹한 사랑을 하실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자신이 부활과 생명의 주이심을 입증하고자 하심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게 하시는가?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죽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행하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런데 이 죽음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래 언젠가 죽겠지만 그 죽음은 현재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죽음이 갖는 현재적 영향력이다. 예수님은 이 죽음의 그림자를 확실히 거두기 위해서 오셨다. 예수님은 완전한 태양과 같이 그를 만나고 믿는 사람의 삶에서 모든 종류의 어둠을 완전히 제거하시는 위대한 빛이시다. 특히 죽음의 그림자를 지우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이라고 선포하셨고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죽어도 산다는 것은 자신을 믿고 자신과 교제하고 자신과 연합한 사람은 죽지만 마지막 날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죽음을 경험하긴 하지만 영혼은 살아있고 몸이 주님의 재림의 날에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장차 부활할 것을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되면 죽음은 이빨 빠진 호랑이, 독 없는 뱀이 된다. 좀 더 나가면, 죽음이 여행자의 대합실과 같은 곳이 된다. 요새로 말하면 해외로 가는 데 공항과 같은 존재가 된다. 공항은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라 기대의 장소이다. 심지어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 것 정도로, 이 방과 저 방을 연결하는 문 정도로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죽음은 점점 가볍고 밝은 것이 된다. 심지어 로망이 된다. 이상은 육체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생명과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영생은 헬라어로 ‘조에’로서 영원한 생명, 참 생명을 뜻한다. 생명과 부활의 주이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영적 죽음’이 사라진다. ‘영적 죽음’이란 사람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죽음이고 가장 심각한 불행이다. 이것이 인간을 허무하고 기쁨이 없게 하는 인간 불행의 최대원인이다. 그런데,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연결되는 사람은 죽은 후에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부터 영생을 소유한다. 영적 죽음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교제가 회복되면서 사람은 진정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정말 진정한 영생은 우리와 주님과의 연결 그것 자체이다. 이 영생을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다.

어떤 형제들에게 군대는 정말 가기 싫은 지옥 같은 곳이다. 그래서 심지어 이빨을 부러뜨리고 다리를 망가뜨려서 군대에 가지 않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 선교회의 한 형제는 자신이 군대에 못 가게 된 것으로 인해서 신앙적 회의를 느낀다고 말하였다. 그는 군대에 가는 것을 정말 기다리고 사나이의 로망으로 여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축구하다가 다리를 다쳐 군대에 못 가게 되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겨우 그를 설득하여 군대에 가진 않지만 군대기간 만큼 새벽기상을 해서 새벽기도하고, 신문을 돌리라고 했다. 그러면 군대 갔다 온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설득한 적이 있다. 이처럼 같은 군대가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로망이기도 하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정말 가기 싫은 군대처럼 부담스런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면 죽음은 해외여행처럼 로망이 될 수 있다.

당신이 느끼는 죽음의 무게와 색깔은 어떠한가? 부활절은 예수님이 죽음 권세를 파하고 죽음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 가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현대과학은 수명연장을 통해 죽음 문제를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수명 연장을 아무리 해도 우리는 영원히 살 순 없다. 또한 자칫 수명 연장은 고통스런 생지옥 같은 생명 연장이 될 수도 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마르다와 마리아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빨리 오셔서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는가 탄식하였다. 예수님은 죽지 않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죽음이 무용지물이 되게 해버린 분이시다. 부활과 생명의 주님을 만나라. 그래서 죽음 권세에서 자유하고 심지어 죽음이 로망이 되게 하라! 기독청년 파이팅~

김갈렙 목사 (UBF 세계선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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