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
정성욱 교수

지난 호에 이어서 조직신학 인간론의 중요 주제들을 묵상해 보고자 한다. 이번 주에 다룰 주제는 최초의 인간 (the first human being) 또는 본래의 인간 (original human being)인 아담의 상태와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마지막 인간 (the last human being0 즉 부활인 (resurrected human being)의 상태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6-28절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최초의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의 상태는 놀라운 상태였다. 특별히 타락하기 전 아담의 모습은 영광스러웠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삶 전체가 온전히 하나님을 드러내고, 반영하는 것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 만물을 다스리라는 하나님나라의 복을 받았다. 즉 아담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 (vice-regent)로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에덴동산에서 이루고 이어서 전 우주로 확장해 가라는 복과 위임을 받았다.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벽했고, 아담과 하와의 관계도 완전했으며, 사람과 피조물의 관계도 온전했다. 즉 완전한 조화와 평화의 상태 즉 샬롬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에덴동산은 생명력이 충만한 땅이었고,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죄와 허물이 들어오기 이전이었기에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놀라운 상태였다. 또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지성과 감성과도덕성을 가진 거룩한 존재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과 하와의 상태가 절대적인 완전 (absolute perfection)의 상태였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교회 역사 2천년 동안 다양한 신학자들이 매우 다른 답변들을 제시해 왔다. 필자는 아담과 하와의 원래 상태가 절대적인 완전의 상태라기 보다는 상대적 완전 (relative perfection)이라고 보는 견해에 동의한다. 그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절대적인 불변의 상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임시적 (provisional)이고 가변적 (changeable/mutable)인 상태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자유의지를 오용함으로써 그들이 본래적으로 누리고 있었던 무죄상태 (the state of innocence0에서 타락할 가능성을 가진 존재였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고 그들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반역하여 범죄하고 타락하면서 에덴의 놀라운 복들을 모두 상실하게 되었다. 샬롬과 평화와 자유와 기쁨을 상실하게 되었고, 죄인을 생육, 번성케 하는 저주에 처하게 되었고, 에덴동산의 놀라운 풍요로움을 상실하고 그 땅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으며,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마귀의 종과 노예가 되었다. 자연만물과의 관계도 깨어졌으며, 만물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허무함에 굴복하게 되었다. 사망이 들어오고, 저주와 비참이 지배적인 분위기가 되었고, 영원한 사망의 선고아래서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이런 저주와 비참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다시 한번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뜻을 완전히 성취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자신을 대속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과 마귀와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하셨으며, 장사 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개인의 주님과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죄사함, 거듭남/중생, 성령의 내주와 인치심,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 칭의, 양자됨, 성화, 견인, 영화라는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

놀라운 구원의 삶을 이 땅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 우리 영혼은 영화되어 낙원으로 들어가며 그곳에서 우리 몸의 부활을 기다리게 된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 몸이 부활하게 되는데 그 부활의 상태는 처음 창조된 아담의 상태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상태이다. 첫째, 우리가 부활하면 우리 몸은 하늘에 속한 몸이 된다. 즉 영원을 입은 몸 (the body clothed with eternity)이 된다. 아담의 몸은 여전히 땅에 속한 몸이었다. 영원한 몸이 아니었다. 죽을 수 없는 몸, 썩을 수 없는 몸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우리 몸은 더 이상 죽을 수 없는 몸, 썩을 수 없는 몸이 된다. 둘째, 우리가 부활하면 우리 몸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 아담의 몸은 여전히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 몸이었다. 그러나 부활 후 우리의 몸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몸이 된다.

셋째, 아담과 하와는 자유를 누렸지만 범죄하여 타락할 수 있는 수 있는 상대적 자유만을 누리고 있었다. 부활 후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선택할 수 없는, 타락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를 누리게 된다. 넷째, 부활 후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의 본질이 신성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신적 거룩과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다섯째, 부활 후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통과 사귐을 누리게 된다. 피조물이 창조주와 누릴 수 있는 최대로 가까운 교제, 그리고 최대로 영광스러운 교통의 삶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생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누리고, 하나님 안에 있는 무한한 풍요로움을 우리는 향유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영광스러운 상태로 초청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지으시고, 타락을 허용하시고, 마침내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창조시의 아담의 상태도 너무나 놀라운 상태였지만, 타락과 구원을 통과하여 부활한 우리의 상태는 처음 아담의 상태보다 훨씬 더 진보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청교도 신학자 토마스 보스톤 (Thomas Boston, 1676-1732)은 그의 주저 [인간 본성의 4중상태] (Human Nature in Its Fourfold State)에서 아담과 하와의 상태를 무죄상태 (the state of innocence)라고 묘사하고, 부활인의 상태를 영원상태 (the state of eternity)라고 불렀다. 보스톤 역시 우리가 부활의 상태에서 누리는 영원한 인간의 상태가 무죄상태였던 아담과 하와의 상태보다 훨씬 더 진보한 상태임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 바 있다.

우리는 이 진리를 굳게 붙들고, 주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주의 자녀, 주의 제자들의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 주님과 동행함으로써만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성욱 교수(덴버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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