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최철준 목사

오래전에 본 영화중에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있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포레스트 컴프”라는 영화다. 포레스트는 지적 장애와 신체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의족 없이는 걸을 수 없는 몸으로 학교에 입학했고, 혼자 외톨이가 될 뻔했다. 그런데 제니라는 마음씨 착한 여자아이가 그의 친구가 되어 준다. 포레스트는 제니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듣고 따랐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하굣길에 포레스트는 동네의 짓궂은 녀석들이 몰고 나온 트럭에 쫓기게 된다. 뒤뚱거리면서 도망가 봤지만 트럭으로 쫓아오는 속력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순간 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제니가 이렇게 외쳤다. “포레스트! 달려! 그냥 무조건 달려!”

제니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던 포레스트는 자신이 달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평생을 감싸고 있던 의족이 풀어지면서 달리게 된다. 얼마나 빨리 달렸던지 트럭도 쫓아오지 못한다. 그의 가장 큰 약점 속에 가장 큰 강점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포레스트는 마침내 그의 가장 약점이었던 다리 속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한다. 약점이 강점이 되는 순간이다. 그는 발견한 그 보물을 다시 묻어 두지 않았다. 어디든 달려서 갔다. 어느 날 자기 앞에 우연히 날아온 미식축구공을 붙잡고 달렸더니 터치다운이 되어 대학 미식축구팀에 스카우트된다. 그리고 최고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다음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폭격을 받은 부대원을 빠른 달음박질로 모두 구해내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게 된다. 포레스트는 걸을 수 없는 자신의 약점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그 한 가지 보물을 사용함으로써 누구도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해내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등장한다. 바울에게도 포레스트처럼 많은 약점이 있었다.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사역하는데 여러 지장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반대자들이 있었다. 많은 약점이 있었음에도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바울은 그 비밀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자신은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약점이 많지만, 질그릇 안에 계시는 보배로운 예수님이 바울을 보배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셨다고 말한 것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기록했다. 영국의 종교개혁가였던 존 녹스는 “로마서야말로 지금껏 기록된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신학서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편지인 로마서가 전해주는 당신을 위한 복음은 무엇일까?

나의 존재 가치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말해 준다.

로마서의 첫 문장인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누구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이다. 바울은 자신이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종’이라는 말은 자신이 예수님에게 팔리고, 그의 소유가 되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7:23).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내 죄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소유가 되었고, 그분이 나를 다스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종일뿐만 아니라, 2)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울을 언제 사도로 부르셨는가? 바울이 선한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리어 교회를 핍박하고 훼방하고 있을 때 다메섹에서 부르신 것이다.

계속해서 바울의 말을 들어보라. 자신을 값을 주고 사시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3)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는데 언제 그 일이 일어났을까?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갈1:15). 바울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선택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약해보면 바울이 예수님의 소유가 되고 사도로 부름을 받고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받기 위해서 바울이 행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바울의 존재 가치는 바울이 행한 일이 아니라, 바울에게 행해진 일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 가치는 정반대로 우리가 행한 일로 결정된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어떤 학교에 들어가고, 어떤 회사에 다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 무엇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로마서는 우리의 존재 가치가 우리가 행한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행해진 일 때문에 결정된다고 말한다. 내가 누구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존재가치가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복음인 것이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백성을 구원하라고 사명을 주신다. 그런데 모세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 “내가 누구이기에...”. “내가 지금 나이가 80이 넘었고, 살인자였고, 양치는 사람인데....하나님 제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모세는 내가 누구인지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12절). 무슨 말인가?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네가 아무리 부족해도, 전능하신 하나님, 완전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있기에 너의 부족함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신다.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처럼 우리를 흠 없고 거룩한 예수님처럼 봐주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시며 주셨던 말씀을 우리에게 그대로 하신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로다”.

우리는 이 말씀에 근거해서 내 자존감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일 때문에 우리를 평가하지 않는다. 내 스펙이나 내가 성취한 것을 가지고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내가 행한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일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최종적인 평가, 최종적인 평결을 내려 주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평가에 춤을 출 필요가 없다.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못해도 가치 없는 인생이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만왕의 왕이 되신 왕의 자녀다. 나는 예수님짜리 인생이다. 나는 예수님만큼 고귀한 가치를 지닌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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