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취현 변호사
연취현 변호사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는 지인이 집에 찾아온 시누이 가족과 집에서 만나고 있다가 방역지침 위반으로 신고를 당해, 과태료를 물게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부산 세계로교회에 폐쇄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과연 이 두 사건이 별개의 사건일까?

헌법 제37조는 ‘①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예외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 지금 사태의 핵심 규정이다. 사회주의 국가에도 이와 유사한 규정이 있다(심지어 북한도 있다. 북한은 국가안전보장을 이유로 개인의 자유가 폭넓게 제한된다). 다만 제한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폭넓게 보는 경우 자유주의적 성향, 좁게 볼수록 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한 나라로 볼 수 있다. 코로나 발생 1년여가 경과한 현재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찬송은 안 돼. 통성기도는 안 돼. 모여서 식사하는 것은 안 돼. 정규예배 이외에는 안 돼. 교인 전부가 모여서 예배하는 것은 안 돼. 일부라도 모여서 예배하는 것은 안 돼. 온라인 예배준비위원은 되고 일반 성도는 안 돼.”... 예배 뿐만이 아니다. 일반 성도가 개인기도를 위해서 교회를 출입하는 것은 당연히 안된다. 교회 뿐이랴. 개인들도, 동거가족이 아니면 만날 수가 없다.

이 금지의 축소는 어디까지 가야 멈추는 것인가? 과연 이 금지의 축소는 당초 목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방지라는 공공복리의 목적 범위 내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규제를 위한 규제, K-방역에 대한 정부의 자존심을 위한 싸움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국에서는 이쯤에서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방역지침을 위반했으므로 당연한 결과라는 이들이 있다.

“잘못은 신고자가 아닌 방역 지침을 어긴 이들이다. 방역 지침을 어긴 자는 생명권을 위협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생활 침해는 그 다음 문제다. 사생활 침해가 염려된다는 주장은 방역지침만 준수하면 신고 당할 일이 없는 결과다. 그 어디에도 사생활 침해가 생명권보다 위에 있지는 않다.” 한 온라인 언론에 실린 글이다.

두 가지 의문을 생긴다. 첫째 이것이 사생활의 자유의 보호 문제 정도라고 생각하시는지? 둘째, 반드시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는 생명권의 내용은 무엇인지?

사생활의 자유권과 인간의 존엄권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우리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생명이, 과연 내 몸통만한 땅굴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배급해주는 식량을 먹으면서 버티는 그러한 생명인가? 오직 생존을 위한 생명권을 보장하는 범위에서 국가의 의무를 제한할 수는 없다. 국가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를(종교의 자유를 포함하여) 가능하면 최대한 보장하고, 가능한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은 헌법 제37조 제2항을 준수해 달라는 국민의 요구인 것이다.

방역지침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을 통째로 법에 편입시키에는 너무 포괄적인데다가 근거도 모호하다. 게다가 ‘생활 속 거리두기 세부지침’은 일부 업종에 대해서 들쭉날쭉한 제한 기준을 정한 것으로 너무 빈 구멍이 많다. 이 구멍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개별 행정명령에 대한 이의제기 격인 행정소송과 이 법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헌법소원이 있다. 행정소송은 교계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헌법소원은 자영업자 단체와 연합한 진보성향 시민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다. 대응의 주체는 다르지만, 다수의 국민이 수긍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하교회를 준비하라’는 책의 저자인 리처드 윔브란트 목사님의 삶을 영화화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보면 감옥에서 매일 같은 시간 기도를 드리는 목사님이 심한 고문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간수들은 보기 싫다며 기도를 금지하고, 목사님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교도소 창문을 통해 확인하면 공산당 간부들에게 끌고 가 때리고 고문하지만, 목사님은 매일 같은 시간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또 고통을 당하신다. 영화로만 보아도 끔찍한 고문장면을 보면서 ‘그저 눈감고 기도안하는 척 하고 기도하면 안 되셨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교회의 역할과 예배를 대하는 정부의 규제를 보면서 뜬금없이 웜브란트 목사님의 기도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연취현 변호사(변호사 연취현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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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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