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창 10: 1-2절)

죄악과 거짓의 세상

예레미야서를 강해한다는 것은 목회자들에게 대단히 고통스럽다. 그 분량만 해도 시편과 이사야서 다음으로 52장에 달하는데다가 인간의 죄와 악에 대해 끊임없이 책망하다 마치기 때문이다. 시편이나 이사야서가 소망으로 마무리 되는 데 반해 예레미야서는 그렇지를 못하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예레미야서를 강해해 본 주의 종들은 안다. 책망의 역설 속에 숨어 있는 소망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흙탕물을 마시려고 애굽의 길에 있고 앗수르의 길에 있음에 대해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렘 2:19)고 경고하였다.

그렇다. 인간의 역사는 죄악의 삶이요 여정이다. 그리고 인류의 그 고단한 삶은 거짓과 늘 함께 하여왔다. 아담과 하와가 거짓의 아비 마귀의 유혹에 속아 타락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이후 인류는 온갖 변명 속에 거짓말의 엔트로피를 증가시켜 왔던 것이다. 인간의 죄와 악을 지적하는 예레미야서가 최소 27번 이상 인간의 거짓된 본성을 꾸짖는 것도 그 때문이다.

“거짓을 알지니 거짓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거짓의 엔트로피는 20 세기 공개적 무신론 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룬다. 인간을 오직 물질적(유물론적) 존재로 여기는 마르크스-레닌 사상에는 불변의 토대(constant ground)로서의 윤리가 없다. 유물론자들에게 진실과 거짓이란 물질만도 못한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더구나 창조주 하나님의 계명 속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법이 있기에 레닌이 기독교에 적대적이었던 이유다. 우리 정치인들의 거짓말 엔트로피도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지 오래다. “촛불” 시위에 참여했었다는 호남 출신 철학자 최진석(서강대 명예교수)이 “문대통령 스스로 만든 인사(人事) 5원칙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정권 출범 3개월 만에 기대를 접고 이 정권은 끝났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결국 허언(虛言)과 거짓말의 문제였다.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노동 제일주의 공산주의자들을 주로 수용했던 최초 오라니언부르크 강제노동소(Das Konzentrationslager Oranienburg)의 나치가 내건 이 구호도 “노동자는 세계창조자”라는 마르크스나 원숭이 무리와 인간 사회의 본질적 차이는 “노동”(<원숭이의 인간화 과정에 있어서의 노동의 역할>)이라는 엥겔스의 구호를 패러디한(?) 무언가 철학적 냉소의 냄새가 난다. 노동이 인간을 자유케 할 리가 없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과 공수처장 후보에 기독교인을 선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집권 후반기 문대통령은 이제 좀 더 진실에 다가서야만 하는 본질 앞에 서 있다!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도산 안창호)”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일명 공수처)장 후보자가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며 보냈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의 어록이다. 기독교 신자였던 도산의 진실무망(眞實無妄)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기독교 사상에서 진실무망은 ‘하나님께 충성되고 사람에게 참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김 후보자가 주변에 말한 문장의 다음 문장에서 도산은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고 했다. 김 후보자와 가까운 법조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후보자는 진리와 정의에 대한 고민이 큰 사람”이라 했다. 김 후보자는 교회 장로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거짓과 기독교는 늘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 절정에 이른 인물이 바로 구 소련의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성경의 땅 두발(지금의 조지아) 출신이었다. 신학을 공부했던 이 인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두발 후손들의 정착지

야벳의 5째 아들 두발(Tubal)은 일반적인 야벳족의 주류가 옮겨간 지리적 행로를 따라 정착하였다. 야벳 후손들은 셈족·함족과 달리 바벨탑 분산 사건 이후 재차 인류 제 2의 고향 아라랏산 방향을 따라 이동한다. 그런 점에서 두발족의 이동 경로도 같은 야벳 계열인 고멜(유럽, 독일, 터키, 아르메니아 등)과 마곡(스키타이) 그리고 마대(현 이란의 북부)의 행로와 닮았다.

요세푸스는 두발의 땅은 로만 이베리아(Romans Iberia)라고 불려 졌다고 했다. 현재 (구소련 연방인) 그루지아 또는 조지아(Georgia)라고 알려진 지역이다. 조지아는 흑해의 동부 연안을 끼고 북쪽은 러시아, 남부와 동쪽으로는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인접해 있다. 북부 카프카스 산맥과 남부 소 카프카스 산맥 사이에 자리 잡은 조지아는 면적은 일본의 홋카이도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우리 대한민국이나 일본처럼 산악 중심의 국가다. 이 조지아의 옛 이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전 3-4 세기 이베리아였다. 그런데 이 이베리아는 두발의 땅 말고도 스페인에도 있다. 어원적으로 남·북 카프카스어족과 이베리아 반도의 피레네산맥 주변에서 사용하는 바스크어는 유사성을 보인다. 지역적으로 유연관계가 없는 이들 두 지역의 언어가 어떻게 유사성을 보이는 것일까? 지금도 명확하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이 같은 경우는 또 있다. 바로 한국과 일본의 언어와 지역적 유연관계가 전혀 없는 인도 드라비다족의 언어가 한일 언어와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인도 타밀어와 우리의 언어가 많은 어휘적 유사성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경로 파악이 쉽지 않은 것처럼 유럽의 이들 두 <이베리아>족은 유럽의 이베리아인이 카프카스 지방으로 이주한 것인지 카프카스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것인지 이들 사이의 친족 관계는 확실하지 않고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다만 만일 두 <이베리아>족이 같은 뿌리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면 어떤 이유로 인해 카프카스 지역에 살던 두발족의 일부가 스페인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는 것이 성경적 해석으로 볼 수 있겠다.

조지아의 산야와 유적
조지아의 산야와 유적 ©pixabay.com
오늘날 조지아 공화국의 수도 이름 트빌리시(Tbilisi)는 두발(Tubal)로부터 파생된 이름이다. 그리고 일부 두발족 일행은 이곳으로부터 코카서스(카프카스) 산맥을 가로질러 북동쪽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 그들 부족의 이름을 따서 강의 이름도 토볼(Tobol)이라 불렀고, 유명한 토볼스크(Tobolsk)시 이름도 여기에 기인한다. 토볼스크는 1587년 카자흐족이 이 도시를 건설하였을 때 시베리아 제2의 도시였다. 오늘날 토볼강은 카자흐스탄공화국 북부에서 시베리아 서쪽 저지대 남서부를 흐르는 1591Km에 달하는 대단히 큰 강이다. 토볼강 합류지점 부근에 있는 이르티슈강 오른쪽 연안에 있는 토볼스크는 16세기 타타르인이 세웠던 시비르한국(汗國)의 수도 이스켈이 있던 곳으로 <시베리아>라는 명칭은 러시아인이 이곳을 <시비리>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따라서 두발족은 오늘날 조지아공화국의 주요 구성원이요 일부는 러시아 남부 시베리아 지역에 걸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두발족을 시베리아의 주인인 야벳 후손 메섹족과 더불어 언급(겔 27:13, 32:26, 38:2,3)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 조지아는 아르메니아보다 조금 늦게 주후 6세기 기독교국가가 되었다. 이후 이슬람 등 다양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신앙은 이들 삶의 중심이 되었다.

두발 후손들의 삶

주전 1100년 경 앗수르의 왕이었던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 1세는 다발리(Tabali)라 불렸던 두발의 자손이었다. 요세푸스는 그들의 후손을 도벨리트(Thobelites)라고 기록하였는데, 후에는 이베리아인들(Iberes)로 불려졌다. 토볼스크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으로는 오늘날 현대 화학의 기초가 되는 주기율표(periodic table , 週期律)와 칼륨 등 새로운 원자들을 발견했던 천재과학자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멘델레프(1834~1907, Dmitrii Ivanovich Mendeleev)가 있다. 그는 서부 시베리아 토볼스크 시에서 토볼스크 고등학교 교장의 14명의 자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쪽 흑해에 접하고 직접 접하지는 않으나 동쪽에 카스피해를 두고 두 바다 사이의 중앙에 위치하면서 유럽과 러시아, 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카프카스산맥 남부에 위치한 조지아(그루지아)는 남쪽으로 터키·아르메니아, 남동쪽으로 아제르바이잔, 북쪽으로 카프카스 산맥을 남북으로 두고 러시아와 접하며, 서쪽으로 흑해에 면한다.

조지아의 자연과 성체
조지아의 자연과 성체 ©pixabay.com
그루지아는 교통과 교역의 접경지로서 역사 초기부터 주변국들의 침략과 점령이 끊이지 않았다. 성경이 두발을 노예와 금속제품의 산지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지정학적 위치를 반영한다(겔 27:13). 주전 6세기 그리스 식민지가 되었고 앗수르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거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BC 4세기에 최초의 조지아국으로 독립하였다. 하지만 BC 1세기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주후 330년경에 기독교가 들어와 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땅은 이후에도 사산조 페르시아, 비잔틴, 아랍, 스키타이, 징기스칸의 몽골·티무르, 터키, 이슬람 등을 통해 끊이지 않는 시련과 핍박의 연속이었다. 최근에는 1918년 5월 26일 제정러시아로부터 독립하였으나 1921년 볼셰비키 붉은 군대의 침공으로 구소련연방의 일원이 되었다가 1991년 4월 구소련(현 러시아)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두발족 후손 스탈린

이들 조지아(그루지아)인들은 1930년대 스탈린 시대에 크게 박해를 받는다. 그런데 사실 스탈린은 이오시프 비싸리오노비치 주가슈빌리(Iosif Vissarionovich Dzhugashvili, 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루지아(Georgia)의 고리(Gori)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조지아인이었다. 심지어 그의 주일학교 친구였던 마야곱프스키가 쓴 자서전에 보면 스탈린은 모태 신앙인으로 성직자가 되려고 선지학교(티플리스 신학교, Seminary of Tiflis)를 다니던 인물이었다. 신앙심이 대단히 두터웠던 그의 모친 예카테리느는 주일마다 어린 이오시프(스탈린)를 교회로 데려갔으며 그녀의 가장 큰 소원은 자신의 아들이 조지아정교회의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다. 후일 스탈린이 소련의 최고 통치자가 된 후 어머니를 방문했을 때도, 예카테리느는 자신의 아들에게 "사제(司祭)가 되기 위해 좀 더 노력 하라."고 훈계했을 정도였다.

스탈린과 진화론

스탈린이 신앙을 버리고 신학교를 뛰쳐나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야곱프스키에 의하면 바로 당시 유럽을 휩쓸던 다윈의 진화론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과 스탈린까지 모두 우연주의진화론(유신진화론이 아님)으로의 회심이 일어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충격을 받고 신학교를 뛰쳐나와 무신론자가 된 스탈린은 소련의 최고 실력자가 된 이후, 과거 그가 조지아의 혁명 지도자였을 때 그를 반대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잔인하게 숙청하였다. 바로 자신의 동족 조지아 사람들이 1차적으로 주된 숙청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주로 독실한 신앙인들이었다. 마치 김일성의 1차 숙청 대상이 바로 자신의 고향인 평양 출신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과 유사하다.

스탈린의 잔인성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는 1930년대 박해로 말미암아 1930년대 말에는 거의 소멸 직전까지 내몰렸다. 러시아 혁명 당시보다는 적었지만 수만 명의 사제와 수도자, 수녀들이 박해를 받고 살해되었으며, 1937년부터 1938년 사이의 대숙청 기간에만 10,000명 이상의 성직자들이 총살되었다. 대부분 조지아 정교회를 믿는 두발족(조지아족)의 희생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독실한 신앙인이요 두발족인 스탈린의 어머니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이 평화와 신앙 깊은 경건의 민족 두발의 후손 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구 소련 체제의 수용도를 직접 체험했던 노벨상을 수상한 『수용소 군도』(Gulag Archipelago)의 러시아 망명 작가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은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구소련은 심각한 만행과 반계몽주의, 분별없는 분쟁, 과거 유산의 파괴, 맹목적 숭배, 거짓과 기만적 만행, 학살과 방황 등 가증스러운 요인들이 사회에 만연했다. 2차 대전 중 독일군에 포로로 붙잡혀 수용소에서 숨진 스탈린 아들 야코프를 당시 독일은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 독일 장군과의 교환을 제안했을 때 스탈린이 "나는 야코프란 아들을 둔 적이 없다"며 단호히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오죽하면 '작은 참새'라 부르며 스탈린인 사랑하던 외동딸 스베틀라나가 서방으로 망명을 하였을까? 무신론적 마르크스-레닌 사상의 종착역은 천륜인 가족 파괴까지도 염두에 둔 잔인한 것이었을까?

바로 과거 찬란했던 러시아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무신론적·우연주의진화론을 바탕한 환상적 유토피아 나라(?) 유물주의 공산종주국의 모습이었다. 이때 희생된 최초의 국민들은 단순한 평민들도 아니었다. 스탈린에 반대한 핵심 공산주의자들과 유대인들이었다. 단지 물질에 불과한 인간인데 생명이든 자식이든 무엇이 두려울까?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허언과 거짓말과 폭력은 잔인하고 능수능란했다. 버나드 쇼가 속았고, 줄리앙 헉슬리가 속았고 장 폴 사르트르와 앙드레 지드와 피카소와 루이제 린저도 속았다. 스탈린을 찬양한 인물 중에는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의 대주교였던 휴레트 존슨(Hewlett Johnson)도 있었다. 빅토리아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사제가 된 그도 다윈의 진화론에 큰 영향을 받으며 스탈린을 찬양한 인물이 되었다. 이 한국의 성공회(대)에 가짜 진보들이 파선하는 배의 쥐떼처럼 서식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전 김천대·안양대·평택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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