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일명 공수처법 개정안이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통과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의 골자는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에서 야당의 거부권을 없앤 것이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 시에 야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 할 수 있다. 여당도 이를 공수처법 통과의 가장 중요한 명분 중 하나로 삼았다. 그런데 여당이 그 핵심을 제거한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그나마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던 유일한 근거가 사라져 버린 셈이 되었다.

공수처가 검경의 권한을 초월한 ‘괴물’ 권력기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여당이 지난해 말 공수처법을 추진할 때부터 제기되었다. 공수처는 검찰과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제동을 걸 수도 있고, 이첩받아 수사할 수도 있다. 검찰과 경찰은 공수처의 견제를 받는 반면에 공수처를 견제하고 통제할 다른 사정기관은 없다.

야당에 공수처장 후보 거부권을 준 것은 그런 비판을 의식해서였다. 여당으로서도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후보 추천 단계에서부터 이 문제로 복잡해지자 핵심조항을 일방적으로 없애버린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신속한 출범 길이 열려 다행”이라면서 “새해 벽두 공수처 정식 출범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수처 설치는 권력형 비리의 성역 없는 수사와 사정기관·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 부패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오랜 숙원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설치는 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다.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는 권력기관의 개혁에 대한 바람을 누차에 강조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이 민주당 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 추미애 의원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해 윤석렬 검찰총장을 식물총장으로 만든 것부터가 권력기관에 대한 정치개입이라는 비판이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공수처가 설치되면 사정·권력기관 사이 견제와 균형이 이뤄진다”고 강조했지만, 견제와 균형에 대한 기대는 180석 거여의 셀프 뒤집기로 사라져 버렸다.

여당이 야당의 저항과 세간의 비판적 여론을 무릅쓰고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인 이유가 원전,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청와대와 대통령 주변 인사를 향하고 있는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라면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만큼 야당의 거부권을 삭제한 공수처법은 15일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공포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검경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공수처장과 공수처 검사들의 활약은 새해 벽두가 아니라 당장 올해 말 안으로도 가능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9일 “검찰개혁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며 역사적 과제”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NCCK는 성명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에 대한 검찰의 조직적인 반발로 야기된 지루한 갈등과 공방이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면서 “이 사태의 본질은 개혁 대상인 검찰 스스로가 검찰개혁이라는 정의로운 흐름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는 것을 절대적 과제로 삼고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으려는 저항”이라고 했다. 이어 “국회는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전관예우 금지로 대표되는 제도적 검찰개혁 법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NCCK의 성명은 법무부와 검찰 간의 갈등에 대해 “검찰이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표현에서 보듯 일방을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교계는 물론 국민적인 시각과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만 봐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 7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주도로 발표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3951인 시국선언’처럼 과거에 민주화를 위한 시대적 사명에 충실했던 NCCK가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게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성명은 약자 편에서 국민의 마음을 추스르고 통합에 앞장서기보다 180석 여당과 청와대 편에선 정치 편향이라는 비판 여론 또한 비등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37~38%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 4년여 재임 기간을 통틀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에 대통령이 말한대로 살아있는 권력도 성역없이 수사해 온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찍어내기’가 심해질수록 차기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유력 여권 후보들을 누르고 지지율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거여의 독주와 뒤집기로 탄생한 공수처에 대해 훗날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 지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대통령의 바람대로 출범하는 공수처가 권력형 비리의 성역 없는 수사기관이 될지 그 비리를 선택적으로 덮어주고 감추는 기관이 될지는 국민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이 개인의 사유물이 아님을, 또한 그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쉬우나 손 안에 한줌 모래와 같이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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