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호 의원
지성호 국회의원 ©뉴시스
유튜브 채널 ‘FTNER’가 최근 서울의 한 교회에서 한 탈북민 지성호 국회의원(미래통합당)의 간증을 소개했다. 지 의원은 북한의 꽃제비이자 중증장애인으로 북한에선 병신, 불구자로 손가락질받던 인생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써 주시는 하나님의 개입과 북한땅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관해 간증했다.

지 의원은 “대한민국에 정착한 3만 5천 명의 탈북민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써주셨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의 눈물이 고인 그 땅을 바라보고 기도할 줄 알았고, 애통하는 자들을 보고 눈물지으며 내가 선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하라는 일을 했을 때 부족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자유를 찾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어려운 상황인데, 팔도 없고 다리도 없고 목발에 의지해 두만강을 건너고 1만 킬로를 돌아 대한민국까지 오는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은 저만 자유를 찾아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라고 보내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잃어버린 2500만 명의 양들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 속에 주셨다. 그러기에 그들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었고, 가진 것 없어도 육체적으로도 부족할지라도 당당하게 감사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데 정치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더욱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도 이 시대 가운데 국회의원을 시키신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야 할 때이다. 순간순간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렇게 힘든 판이 정치인 것 같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왜 이 시점에 내 생각을 바꿔서 정치하게 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께서 북한땅을 열어주실 때가 가까이 왔구나, 하나님 사용하시려고 그렇게 하시는구나’를 알게 된다”며 “내가 디딘 곳은 정치판이지만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세우실 북한 땅 그려보면서 힘을 내서 일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의 때가 가까이 왔고, 그 땅에 교회가 서고 하나님을 찬송할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낀다. 크리스천의원들에게 북한 땅에 교회를 세우고 그 땅이 하나님 나라 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마음을 알아주시고 마음을 모아주셨다.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할 환경에서 탈출해 아이를 키우며 겨우겨우 사는 탈북여성들이 있다. 탈북자 꽃제비가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쌀밥이라도 한 끼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 탈북자들 위한 재단에 기부했다. 하나님께서 작은 자를 들어서 정치인을 만들어주시기도 하고, 그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북한의 고통을 알고 함께하게도 하시고 이렇게 간증하게도 하신다”며 “기적의 연속이었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사용하실 그 기적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2006년에 대한민국 땅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누려보지 못했던 자유를 누리고 먹고 싶었던 쌀밥을 배불리 먹고, 내가 원하는 대로 양껏 먹을 수 있는 뷔페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세상을 다시 걸어보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는데 의족과 의수를 해줘서 세상을 다시 걷게 하시니 감사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돕고 감사한 것을 꼭 갚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봉사도 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이어 “2010년 초청을 받아 미국 애리조나주에 가게 되었다. 애리조나주는 제 친구인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박의 고향이다. 그는 조부모의 고향이 이북이다 보니 북한에 관한 관심이 있었고, 한국에서 탈북자인 저를 만나 북한의 실상에 관해 듣게 되었다. 그는 200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순교자의 마음으로 성경책을 안고 두만강을 건넜다가 군인들에게 붙잡혔다. 김정일 회개해야 한다고 외치다가 매를 맞고 비명이 들린다는 뉴스를 보면서 내 가족뿐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마저 이렇게 만드는 북한이 너무 미웠다”고 했다.

이어 “애리조나에서 북한에서의 삶을 간증하자 한인도 아닌 미국인이 지구 반대편의 북한을 위해 눈물 흘리고 기도하며 어린 친구가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하는 모습을 보며 반성하고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까지 꽃제비였는데 대한민국에 와서 나만 살겠다고 산 것이 부끄러워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었다. 나를 해할지라도 나의 등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또한 하나님 곁에 가야 할 시점이라면 가면 되는데 북한 정권을 두려워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서 빌립보서 2:1-4 말씀을 받게 되었고, 대한민국에 와서 남북한 청년들과 북한 인권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서 중국에 있는 탈북여성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25만 명 정도의 탈북여성이 중국에 인신매매를 당해 살고, 미성년자인데 아이가 있고, 매를 맞아서 한쪽 눈이 실명되고, 도망갈까봐 묶어놔서 발목에 상처가 나 있는, 입으로 담을 수 없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한두 명 구출해오면서 하나님께 돈이 모자라서 여러 여성을 놓고 누구를 데려올지를 선택해야 하는 이 고통이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의 마음이 모여 수많은 사람이 자유를 찾아 넘어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북한 땅에 그들의 편이 있고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희망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라디오방송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큰 이슈는 꽃제비였던 내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도 저와 같은 거지,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게 현실인데, 꽃제비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팩트이기에 주는 충격이 컸을 것이다. 백악관 초청을 받아 북한 관련 정책을 함께 만들기도 하고, 미 의회 연두교서 발표 행사에서 상하원의원 대법관 다 있는 곳에서 호명을 받아 북한에서 피눈물 흘리며 짚고 왔던 목발을 전 세계를 향해 들었을 때 그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며 힘내라고 환호해주었고, 핵폭탄보다 더 강한 무기가 되었다. 제가 갈 수 있는 수많은 길 중 가난한 NGO의 길, 자기 민족을 살리는 길을 가라고 했을 때 순종하니까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때로는 죽음이 두려워 북한 정권 앞에서 떨었던 내가 당당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도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며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 민족을 위해서 탈북민을 사용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지 의원은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떠올랐던 북한에서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태어난 함경북도 해령시는 중국과 러시아가 접경하고 있는 험한 탄광촌으로 10월부터 눈이 오고 5월에도 가끔 눈이 내려 농사도 제대로 안되고 먹을 수 있는 게 풀, 산나물밖에 없는 곳이다. 국군포로로 잡힌 사람들, 자녀와 손주까지 그 탄광에서 영원히 일하고 있었다. 북한은 조상 신분에 따라 자기 삶이 결정된다. 평등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북한 내에서 아무 데나 갈 수 없다. 가끔 저에게 평양냉면이 맛있느냐 함흥냉면이 맛있느냐고 물어보는데, 평양은 김정은, 김정일이라는 신이 있는 곳이기에 검증 안 된 사람은 자국민이라도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 주민은 노예이다. 일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없다. 김일성 때에 줄어들던 식량은 김정일 들어 배급이 끊기고 김정은 때도 마찬가지이다. 풀만 먹고 나무껍질도 먹고 때론 흙도 먹으면 된다며 견디라고 한다. 남한에서 보내오는 쌀은 일반사람에게 주지 않는다. 그걸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면 정치범으로 잡혀간다. 살던 곳 앞산에 정치범수용소가 있었다. 하나님을 믿었다는 이유로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 잘못해서 영원히 그곳에서 나올 수 없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은 말할 수 없다. 배가 고파서 학교도 갈 수 없고, 선생님들도 힘들어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잡혀가니 일해야 했고, 어머니는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슬프고, 아이들은 거지 행색을 하며 돌아다녔다. 14살이 되던 96년 3월 며칠을 굶다 보니 몸도 힘들고 마음도 지쳐 이대로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장남이니까 이를 꽉 물고 석탄을 훔치다가 화물열차 앞에 매달렸는데 정신을 잃었다. 고통에 눈을 떠보니 60톤 화물 열차들에 밟혀 왼쪽 다리와 손가락이 잘려져 있었다. 피는 멈추지 않고 살점은 흩어져 있고 고통에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여동생이 철도관계자에게 살려달라 해서 시체를 나르는 손수레에 실려 병원에 갔다”고 했다.

이어 “마취제도 없이 살 베어내는 소리, 톱으로 뼈를 써는 소리를 들으며 수술을 견디다 힘줄을 베어낼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정신을 잃었다. 열네 살이 감당할 수 없는 지옥 같은 현실이었다. 수술 이후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항생제나 마취제를 맞지 못하고 염증이 생겨 열이 오르고 다리가 시커멓게 썩어나갔다. 어린 동생들이 썩어나는 다리를 닦아 주고 장마당에 가서 먹을 것을 구걸해오고 그렇게 다 죽는다 했는데 살아남았고 7개월이 되니 염증이 나았다. 사람들은 장애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그래도 죽을 수도 없어서 가족들을 위해 목발을 짚고 달리는 열차에 매달려 석탄을 훔치고 잡히면 매 맞고 살았다”고 했다.

그는 “그런 삶 살다가 2000년에 중국으로 넘어갔다. 북한에서 교회는 멍청하고, 아편 같고 선교사는 야만인과 같다 배웠기에 얼마나 나쁜지 궁금한 마음에 조선족 교회를 가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편이 되어주었고, 북한에서 할 수 없었던 수령 욕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가족들을 위해 쌀과 옷을 얻어 다시 북한에 넘어갔다가 경찰들에 잡혔다. 목발을 빼앗기고 고문을 당하고 죽도록 맞았다. 그들은 ‘너 같은 병신이 살아서 중국에 넘어가 구걸한 게 국제사회에 나가면 공화국의 권위가 떨어지니 죽어야 한다’며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짓밟았다. 장애인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니고 나에게 해준 것도 없는 국가가 자존심을 짓밟으니 하나님께 기도했다. 풀려난 이후에 이 땅을 탈출하게 해달라고 여러분이 태어나면서부터 산소처럼 마시는 그 자유를 달라고 6년을 매일같이 기도했다”고 했다.

이어 “2006년 남동생과 탈북을 준비했다. 어머니는 내 의수와 작은아들 신발을 해주겠다고 몇 년 전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여동생도 엄마를 찾겠다고 17살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를 버리고 간 줄 알고 미워했는데, 중국에 팔려간 탈북자를 구출하면서 그것이 내 엄마, 내 동생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슬펐다. 목발을 짚고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기며 중국으로 넘어왔다. 중국에서 라오스 미얀마 태국을 돌아서 가야 했기에 나와 같이 있으면 동생이 잡힐까 봐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동생을 보냈다. 가다가 라오스 정글에서 쓰러져 죽을 뻔 했을 때 하나님께 살려주시면 한반도 통일 위해서 목숨을 다해서 일하겠다고 기도했고, 2006년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다. 남동생은 탈북자를 구출하는 일을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많은 우여곡절과 슬픔이 있었지만 그 또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고 많이 성장하게 되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곳은 그곳에 태어나게 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겪었던 고통 하나하나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눈물로 활동했고, 성공했다 말할 수 있는 국회의원 됐음에도 불구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내가 가진 것은 연기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며 하나님 주신 집사의 직분, 북한 영혼 살려 하는 그 하나님 마음으로 일할 수 있다.

이어 “의족과 의수를 하니 함께 온 사람들이 기뻐했다. 사람들은 짚고 온 목발을 판문점에서 김정일을 향해 던지라고 했다. 당신은 내 팔다리를 잘라가고 고통을 줬고 죽이려고 했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자유를 찾았고 이 세상은 나를 걷게 해주셨다고. 아버지가 만들어준 소중한 것이기에 버릴 수 없었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 전 세계에 들어 북한 정권이 제일 싫어하는 북한 인권문제의 도구로 쓰실 줄 몰랐다”고 했다.

지 의원은 “탈북민들이 코로나로 인해 탈출이 어렵다. 북한에 코로나가 많은데, 코로나가 있으면 문을 닫고 못을 쳐서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고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고 오직 몇 명의 사람들만 살기 위해 존재하는 땅이다. 하루빨리 하나님의 진노가 북한 정권을 허물고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가 깃드는 그 날을 만들어줄 줄 믿고 기도하면서 내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할 때 하나님께서 그날을 곧 보여주실 것으로 믿는다.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최선 다할 테니 생각 나실 때 저를 위해서 기도해달라”며 간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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