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루스포럼’의 연구위원인 조평세 박사(북한학)가 본지에 ‘기독교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를 매주 한 차례 연재할 예정입니다.

조평세 박사
조평세 박사

1년 전인 작년 5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미 자유 우호의 밤’이 열렸을 때다. 미국보수연합(American Conservative Union, ACU)의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국 보수주의의 회복을 위한 자문을 구하는 자리였다. ACU는 미국의 정치권이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좌경화되어가던 1964년, 윌리엄 버클리(William F. Buckley Jr.)가 세운 보수주의 로비 단체다.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버클리는 ACU를 통해 보수주의의 지지기반을 다지고 로널드 레이건이라는 인물을 키워내 공화당을 진정한 보수주의 정당으로 재탈환했다.

귀빈들과의 조찬 자리에서 나는 ACU의 사무총장인 댄 슈나이더(Dan Schneider)를 만날 수 있었다. 슈나이더에게 한국 보수의 위기상황을 간략히 소개하고 지금 한국에 윌리엄 버클리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무척 반가워하며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Can you define conservatism in five words?(보수주의를 다섯 단어의 문장으로 한번 말해볼래요?) 한국의 청년 보수주의자가 보수주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테스트하려는 질문이었다. 일종의 면접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재빨리 머리를 굴려 엉겁결에 대답했다. “All men are created equal.”(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다.) 슈나이더는 제법이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떡이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답도 공개 했다. “Sovereignty resides in the person.”(주권은 개인에게 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두 문장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나는 토마스 제퍼슨이 독립선언서에 쓰고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재천명한 그 짧은 문장이 보수주의의 핵심 전제인 ‘창조질서’와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어진 개인의 존엄’을 표현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고, 슈나이더도 바로 그 창조질서에 따라 ‘각 개인에게 부여된 권리’가 보수주의의 핵심 원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핵심 가치를 전제한다면 보수주의는 다양하게 정의(표현)될 수 있다. 사실 보수주의가 하나의 정의를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보수주의는 어떤 도그마나 이데올로기(ideology)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보수주의를 정립한 러셀 커크(Russell Kirk)는 “보수주의는 이데올로기의 부정(negation)”이라고 말했다. 보수주의는 현실과 괴리된 어떤 추상적인 이론을 강요하고 이에 집착하여 사회를 설계하려 하는 경직된 교리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레이건도 보수주의를 “추상에 대한 맹목적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정치적 관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보수주의는 무엇을 지키고 보전(conserve)하려는 것일까? 권위 있는 보수주의 학자 폴 켄고르(Paul Kengor)는 이렇게 정의했다. “보수주의의 본질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마땅한 이유로 그 사회와 시민과 국가와 질서를 위해 유효성이 증명된 가치들을 지키고 보전하는 것이다.” 또 레이건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보수주의는 사람들이 한 세대, 혹은 열 몇 세대 정도에 걸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그동안 경험해온 모든 것을 종합해 발견한 것들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보수주의가 옳을 뿐 아니라, 보수주의가 선입견을 벗어버리고 바르게만 전달된다면,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인류의 오랜 세월을 거쳐 그 유효성이 증명된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자유는 “사람마다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삿21:25)” 방종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질서에 입각한 책임 있는 자유(responsible freedom)다. 러셀 커크는 이를 “질서 있는 자유”(ordered liberty)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자유)과 광야의 율법(질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대-기독교 가치관이다.

결국 보수주의는, 세상의 사회질서를 피조물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계관(worldview)이자, 인간의 한계와 인간 상위의 도덕적 질서(창조주)를 겸허히 인정하는 태도(attitude)이며, 그렇게 자유로이 터득한 경험적 지혜와 신앙에 기초해 삶을 살아가는 방식(way of life)인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보수주의를 두 단어로 표현하자면 자유(freedom)와 신앙(faith)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수주의의 정신을 단 한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을까? 미국의 저명한 보수주의 학자 유벌 레빈(Yuval Levin)은 주저 없이 보수의 정신을 ‘감사’(gratitude)라고 말한다. 창조주와 그 주권, 그리고 역사의 경험과 그 주인공인 선대에 대한 감사에서 보수의 정신이 비롯된다는 것이다. 감사는 창조와 역사 앞의 ‘겸허함’이나 선대의 경험을 단순히 ‘존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태도다.

보수주의자는 그 감사를 바탕으로, 창조주를 부정하고 역사를 무시하며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세력들을 능동적으로 대적해야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보수주의 운동의 아버지’ 윌리엄 버클리는 이렇게 말했다. “보수주의자는 유대-기독교 가치관이 공적영역에서 다시 등장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강경히 주장해야 한다.” (계속)

조평세 박사(북한학,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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