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랑교회 박광서 목사
큰사랑교회 박광서 목사

반기독교적 논조로 한국교인들에게 좋지 않게 인식되고 있는 한 매체가 최근(7월 3일) 허호익 교수의 저서 '동성애는 죄인가'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인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 매체가 허교수의 저서를 반길 때에는 그들의 기조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이미 이 주제와 관련한 배경지식과 흐름을 모니터링하고 있기에 도대체 이 책의 어떤 점이 이 매체를 반색하게 하는 것일까 살펴보았다.

사실 허교수의 책을 읽는 내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더 들었다. 원로 조직신학자의 인본적인 태도에 실망을 했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허교수의 저서가 갖는 영적 의미는 무엇이며, 한국교회는 앞으로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까? 하나님의 교회와 진리를 파수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대비해야 할까?

1. 이 저서의 한계와 문제점

허교수는 한국복음주의 학계의 조직신학자로서 나름의 공헌을 해왔다. 특별히 그의 이단연구는 한국교회에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이 한권의 책이 그의 학문적 업적에 흠집을 내는 것은 아닐까 안타깝다. 그렇다면 이 저서의 문제가 무엇일까? 문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이 저서의 공헌이 있다면 세계와 한국의 동성애 역사정리가 불필요할 정도로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역사이해에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이 저서의 한계와 문제점은 무엇인가?

(1) 제일 먼저 눈에 띠는 점은 자신은 이 저서에 자부심을 갖을지 몰라도 심도 있는 연구물은 아니라 여겨진다. 여기저기서 가져온 자료와 기사를 소개하는 정도의 짜깁기 혹은 편집물처럼 여겨지는 아쉬움이 있다. 자신만의 심도 있는 독창적인 연구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2)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확고하게 피력하지 않는다.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경우 마주할 비난을 의식했는지 남의 연구와 기사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교묘히 피해가는 학자로서의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3) 저자는 퀴어신학에 대해 긍정적이다. 동성애를 죄로 정죄하는 성경의 단호한 입장보다는 호의나 환대로 해석하는 퀴어 신학자들의 주장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세상이 변했으니 교회도 시류를 따라 변해야 한다. 하나님의 법보다는 현세의 법을 우선하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조가 강하게 느껴진다.

(4) 필자가 보기에 저자는 퀴어신학의 기초가 되는 젠더이데올로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퀴어신학은 젠더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젠더학자들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퀴어신학은 20세기 좌익의 성애화 작업에 일조한 젠더학과 맥을 같이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5)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자료나 통계가 좌파매체 중심의 편향적 내용물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로 인해 동성애로 인한 폐해를 많은 부분에서 희석 혹은 왜곡하는 부적절함을 보인다. 객관성은 양진영의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사실적인 자료를 인용해야 한다. 동성애는 만성질환과 같으니 확산되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식의 사고는 매우 위험하다.

(6)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저자는 ‘신학적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정통신학을 훼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신학적 기반이 성경적인 복음주의 신학과는 거리가 있는 듯 보인다. 다시 말해 문서비평의 자유주의 신학이 저자의 신학적 근간이기에 친동성애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7) 필자는 저자에게 묻고 싶다. 단 한번이라도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애 동성혼 합법화를 반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함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땀 흘리며 투쟁하거나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고통을 겪어본 적은 있나? 좌익에 세뇌되어 이용당하는 어린 청소년들을 보며 가슴 아파 눈물 흘려본 적은 있나? 손가락신경이 끊어져 장애를 입으면서도 동성애를 반대하며 교회를 지키려는 청년들의 애끓는 마음을 현장에서 지켜본 적은 있나? 우리의 청소년들이 좌익정권의 무차별적 젠더교육에 의해 성애화의 노예가 되어 영육이 피폐해져가고 교회도 병들어 가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 저자의 관심이 이 책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듯이 소위 성소수자라는 이들의 독재적 가짜 인권놀음에 맞장구쳐주고 오직 그들의 대변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것은 아닌가? 저자의 신학적 정체성에 모든 원인을 돌리기에는 안타까운 점이 적지 않다.

2. 이 저서가 한국교회에 주는 의미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인용이 아닌 자신의 말로, “동성애는 예외적으로 비범죄화와 합법화가 이루어지고, 동성애자의 성직 임용까지 허용되는 추세”라며 끝맺는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동성애를 정죄해서는 안 되며, 합법화되야 하고, 더 나아가 교회는 동성애자를 목회자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세계적 추세요 대세다”가 아닐까! 이 대목에서 최근 문제가 된 분당우리교회 부목사의 설교 스캔들이 떠오른다. “동성애 인정은 세계적 추세다. 대세에 뒤쳐지는 꼰대가 되지 말라”는 위협처럼 느껴진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하나님의 교회가 동성애로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타락과 세속화를 부추기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심각한 해를 가져옴은 분명하다. 어쩌면 제2의 바벨론 포로라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재촉하는 동인이 될 수도 있다.

한국교회가 만일 이 저서처럼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다, 동성애는 인간이 누릴 합법적 축복이요 권리”라는 친동성애적 사조에 사로잡힌다면 유럽교회처럼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리는 그 전조로 최근 장신대의 무지개옷 채플 징계 무효판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학과 신학교수의 좌경화는 신학생의 좌경화로 이어지고, 그 흐름은 동성애자 성직자의 임직의 보편화로 뿌리내려 교회는 세상과 별 차이가 없는 세속적 인간집단이 되고 말 것이다.

한국교회에 제언한다. 그것은 다가올 미래를 단단히 대비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성애자 목회자의 등장과 함께 교회의 패배와 타락은 시간문제다. 특히 ‘기독교 지성인들의 책임’은 강조해도 부족하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의 원인은 기독 지성인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제몫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법적위기는 그리스도인 법학자가 좌익 법학자와의 법리싸움에서 패했기 때문이요, 퀴어신학으로 인한 교회의 혼란은 정통신학자들이 퀴어신학자들의 공격을 어설프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지성세계가 무력해지면 하부 층의 붕괴는 필연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기독교 지성인들의 분발이 절실히 요구된다.

교회의 성결의 능력이 음녀에 능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한국교회는 마지막 남은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자기역할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동성애 목사들로 가득한 음란한 집단이 되고 말 것이다. 필자는 허교수의 견해에 대한 정통신학자들의 반격을 기대해본다. 그것이 진리와 교회와 우리의 후손을 지키기 위한 사랑인 것이다.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경우 붕괴의 전조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관계자들이 사람들을 바깥으로 나오게만 했어도 1500여명이라는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무책임했다.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교회도 붕괴의 전조가 여기저기서 목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멱살을 잡고라도 밖으로 끌고 나와야 한다. 그런데 입을 막고 악한 영의 향에 취해 있다면 그는 불의한 청지기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늘용사의 마땅한 책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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