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인 김명혁 목사의 지난 6일 포항 아름다운고백교회서 전한 설교를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편. <편집자주>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셋째로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 사역을 수행하느라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고 또 수고하면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신실한 제자들이 고난과 핍박을 당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럴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복음 사역을 수행하느라 수고하고 또 수고하면서 여러가지 종류의 고난과 핍박을 당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4:11-13).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 사역을 수행하느라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고 또 수고하면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의 위험과 풍랑의 위험과 파선의 위험과 교통사고의 위험도 당하고 질병의 위험도 당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말씀의 의미와 내용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설교는 제가 처음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고 또 수고하면서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시면서 통쾌하게 생각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펴신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범한 죄 값으로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성부 하나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자기에게 펴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놀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송축하고 또 송축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5,8-14).

제가 지난 10여 년 이상 매일 읽는 시편 말씀입니다. 아마 다윗은 울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찬양하며 송축했을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풍성하신 이상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는 더욱 더 그러하셨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고하고 또 수고하면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슬프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면서 성자 예수님께서 통쾌하게 생각하시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당하여야 할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심판과 저주를 우리 대신 자기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 내게로 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 평안과 쉼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인을 향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는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는 분은 성자 예수님밖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성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와 내용을 세 가지로 나누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원죄와 자범죄 때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이고, 사탄 마귀의 장난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이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복음 사역 수행 때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원죄와 자범죄 때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마8장에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무거운 죄 짐을 지고 슬프고 힘들게 살아가던 문둥병자 한 사람이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어느 날 그 문둥병자가 예수님께로 나와서 이렇게 호소를 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마8:1).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죄 짐을 짊어지고 수고하고 고통을 당하면서 슬프고 힘들게 살아가는 문둥병자가 주님께로 나아와서 절하며 호소하는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손을 대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8:3). 결국 평생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병 고침 받음을 간증하면서 기쁨과 평안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마8장에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무거운 죄 짐을 지고 슬프고 힘들게 살아가던 로마인 백부장 한 사람이 두 번째로 등장합니다. 어느 날 그 로마인 백부장이 예수님께로 나와서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마8:5,6). 예수님께서는 로마인 백부장이 이방인으로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보시고 그리고 그 사람의 착한 마음과 순수한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마8:7). 백부장은 순수한 믿음과 겸손을 지니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마8:8). 예수님께서는 그 백부장의 착한 마음과 순수한 믿음과 겸손을 바라보시면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8:10-13). 그 백부장은 너무 놀랐을 것입니다. 너무 기뻤을 것입니다. 그 백부장은 그날부터 밤에 단 잠을 자게 되었고 어디를 가든지 감사와 기쁨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이상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인인 문둥병자의 호소도 귀담아 들으시고 죄인인 백부장의 요청도 귀담아 들으시고 수고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시는 너무너무 이상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귀중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2,13). 예수님께서 원죄와 자범죄로 인해 수고하고 또 수고하면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던 여러 종류의 죄인들을 바라보시면서 통쾌하게 여기시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죄 사함과 평안과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신 이야기를 다 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더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생애 마지막 순간에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할 수도 있는 강도 한 사람에게 죄 사함과 구원과 평안을 주신 이야기 하나만 더 하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죄와 저주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강도 한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모기 소리만한 소리로 호소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 그 강도는 평생 포악한 죄만 짓다가 붙잡혀서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의 한 평생은 수고와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분노와 저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착함도 순수한 믿음도 겸손도 신앙고백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면서 하시는 말씀들을 들으면서 마음에 이상한 감동을 받은 것뿐이었고 그리고 옆에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는 동료 강도가 예수님을 향해서 비방하는 말을 듣고 동료 강도에게 꾸짖는 말을 한 것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23:40,41).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호소한 것뿐이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무너무 이상하고 너무너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강도에게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너무너무 놀라운 엄청난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강도는 그 순간부터 영원한 하늘의 평안과 쉼과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강도는 그 순간부터 영원토록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무너무 이상하신 분이십니다.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님께로 나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예수여!" 라고 호소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영원한 평안과 쉼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둘째로 사탄 마귀의 장난으로 인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탄 마귀의 장난으로 인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을 당하면서 슬프고 힘들게 살아간 대표적인 사람이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생각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이전의 삶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눅8:2). 이 말씀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해석은 막달라 마리아가 문자적으로 일곱 귀신 들려서 미쳤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몸도 정신도 마음도 영혼도 모두 파괴되어서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었던 인간 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해석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도덕한 길거리의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눅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와 동일시 합니다. 죄인인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 바로 다음인 눅8장 초두에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셋째 해석은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가지 죄악에 사로 잡혔던 전형적인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곱 가지 죄악은 교만과 시기와 분노와 음란과 탐욕과 무절제와 영적 게으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가지 귀신들과 성적인 부도덕과 일곱 가지 죄악의 덫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눅7장에 니오는 죄인인 한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였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예수님 발 곁에서 울면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는데 주님으로부터 극진한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눅7:47).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과 향유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찬346).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가장 사랑하고 주님의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이상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뿐 아니라 귀신들려서 극심한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힘들게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귀신의 덫에서 건져주셨고 평안과 기쁨 가운데서 살도록 은혜와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마4:23,24).

셋째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 사역을 수행하느라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고 또 수고하면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주님의 종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주님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 죽어갈 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스데반을 영접하셨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스데반의 영혼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7:55,56).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여러가지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18:9,10).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3-25). 결국 사도 바울은 복음 사역을 위하여 여행의 위험과 풍랑의 위험과 파선의 위험을 당했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면서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당했지만 오히려 주님의 위로와 격려와 사랑을 받으면서 평안과 기쁨을 지니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3,24,29).

사도 바울이 복음 사역을 위해서 수고하다가 불치의 병과 약함에 처했을 때도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8-10). 결국 사도 바울은 주님의 함께 하심과 위로와 격려를 받으므로 수고와 고난과 고통 중에서도 평안과 기쁨과 용기와 감사를 지니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0-13). 주님께서는 스데반 집사와 사도 바울의 순교의 현장에 임재하셔서 평안과 기쁨을 채워주셨고, 서머나의 폴리캅 감독과 토마스 선교사와 길선주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의 현장에도 임재하셔서 평안과 기쁨을 채워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히13:8) 주님께서는 지금도 꼭 같은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원죄와 자범죄 때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도, 사탄 마귀의 장난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도, 주님께서 맡겨주신 복음 사역 수행 때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이 하여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로 나오는 일입니다. 문둥병자처럼 백부장처럼 막달라 마리아처럼 스데반 집사처럼 사도 바울처럼 주기철 목사님처럼 손양원 목사님처럼 수고와 고난과 고통과 매맞음의 현장에서도 그저 주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여행의 위험과 풍랑의 위험과 파선의 위험과 교통 사고의 위험과 질병의 위험을 당하면서도 그저 주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우리들이 어떤 형편에 처해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로 나오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쉼을 누리면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다가 복된 죽음을 맞게 되기를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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