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
군목제도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 마련한 아버지 윌리엄 얼 쇼
조선 해양경비대 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교육하다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고귀한 희생의 정신이다. 그러나 미국인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다가 순직을 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얼마든지 자유와 부 그리고 명예를 지키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생활을 기꺼이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하여 기꺼이 희생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UN참전 용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월리엄 해밀턴 쇼(Shaw, William Hamilton, 1922~1950)를 소개한다. 그는 아버지 월리엄 얼 쇼(Shaw, William Earl, 1890~1967) 선교사와 어머니 아데린 H. 쇼(Shaw, Adeline Hamilton, 1895-1971)의 외아들로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한민국을 제2의 조국이자 친구의 나라로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 월리엄 얼 쇼는 미국 복음주의 부흥운동이 펼쳐지던 무렵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조선 선교사의 뜻을 가지고 보스턴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1921년에 미국 감리회 소속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우리나라에 입국 후에는 서울, 평양, 대전 등에서 1960년까지 한국교회와 선교사역 그리고 교육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평양에서 광성학교 교사로 만주와 해주지방에서는 교육과 전도사역에 집중하였다. 또한 1938년 무렵에는 무어 선교사와 평양 요한학교를 설립, 개교하였다. 당시 젊은 인재들을 배출하였지만 1941년 즈음에 일본제국에 의하여 강제 출국을 당했다.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자 다시 1947년에 내한하여 초기 대한민국 건설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미군 군목으로 활동하였다. 종군으로 피난 교역자 구호에 힘을 기울였으며 특별히 한국군 군종 창설 멤버로서 크게 헌신을 하여 지금의 군목제도가 자리를 내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했다.
월리엄 얼 쇼의 외아들 월리엄 해밀턴 쇼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선교사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그는 신앙과 생활이 반듯한 모습으로 귀감이 되었다. 평양에서 태어나 외국인 중고등학교 졸업을 할 정도로 조선을 사랑했다. 그 후 본국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모교인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43년 조니타 로빈슨(Shaw, Juanita Robinson)과 결혼하였다. 그의 아내 로빈슨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세브란스병원의 사회사업활동으로 인하여 병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아울러 서울 외국인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며 교육에 헌신하였다.
월리엄 해밀턴 쇼는 제2차 대전 당시 1944년에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하였다. 1947년 대위로 전역한 해밀턴은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 중에 있었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학업을 포기하고 늘 그리워하였던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미국 군정청 소속 민간 교관으로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해양경비대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생도들을 교육하였다.
평양 출신인 월리엄 해밀턴 쇼는 한국어와 영어가 가능하였기에 미국 극동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해군 정보장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 후 미국 해병대 5연대에 배속되어 서울 탈환작전에 깊숙이 투입되었다.
1950년 9월 22일 오전, 후방 정찰을 위하여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던 무렵, 다양한 총기로 중무장하고 매복하고 있었던 북한 적군에 의하여 기습 공격을 받아 28세의 꽃다운 젊은 나이에 전사하였다. 그가 순직한 후 며칠 안 된 9월 28일, 유엔군에 의하여 서울이 완전히 탈환되었다.
아버지 월리엄 얼 쇼 선교사와 함께 그는 서울특별시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잠들어 있다. 안장된 그의 묘비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의 헌신의 삶이 담겨 있는 듯 가슴을 울린다. 해밀턴 쇼 대위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충무무공훈장, 미국 정부로부터는 은성무공훈장을 각각 추서되어 받았다.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2015년에는 호국 영웅 인물로 선정되어 기념우표로 발행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외아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하여 목원대학교에 5,955명이 부의금으로 지어진 월리엄 해밀턴 쇼 대위 기념교회를 하나님께 봉헌하였다.
이처럼 한국인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했던 월리엄 해밀턴 쇼의 삶을 돌아보면서 한국인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자신의 안정된 가정, 학업과 개인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우리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그의 희생과 고귀한 발자취는 우리 후손들에게 오래토록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애국정신과 복음 전파 그리고 교육에 힘썼던 아버지 월리엄 얼 쇼와 외아들 월리엄 해밀턴 쇼 부자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사랑을 잊지 말자.
최선(崔宣) 박사
방송·신문 칼럼니스트
SBCM KOREA 대표
前) ALU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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