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TV에서 BMW 광고모델로 출현해 화제를 모은 김광태(78 피터 김)씨가 2008년 맥도날드 광고에서 청와대의 압력으로 출연분이 삭제되는 아픔을 겪은 사연을 5년만에 털어놓았다. 2013.12.26.   ©뉴시스

【뉴욕=뉴시스】 "벌써 5년도 넘었네요. 하지만 아직도 제게는 아픈 상처입니다."

최근 미국 TV에서 BMW 광고 모델로 출현해 화제를 모은 김광태(78·피터 김)씨에겐 지워지지 않는 가슴의 생채기가 있다. 2008년 맥도날드 광고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이다.

당시 김광태씨는 맥도날드가 의욕적으로 런칭한 '세계의 지도자들' 시리즈 1호 광고에 캐스팅되는 기쁨을 안았다. 세계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이 맥도널드 매장을 이용하는 에피소드의 이 광고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큰 화제를 모았다.

광고 내용은 두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리무진을 탄 한국 대통령(?)이 맥도날드 매장을 찾아 '드라이브인 쓰루'로 주문한 후 차 안에서 누군가에게 훈계조의 전화를 하는 것이다. 광고 속 대통령은 한국말로 "박 실장. 일을 어떻게 그렇게 처리하십니까? 잘 하세요. 아시겠습니까?"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은 당시 맥도날드 광고의 한 장면. 2013.12.26.   ©뉴시스

출연진으로는 경호원 역에 흑인과 백인 모델 두 명이 캐스팅됐고 치어리더 3명, 엑스트라 30명이 동원됐다. 김광태씨는 당시 "PD의 제안으로 즉석에서 한국어 대사를 하게 됐다. 간단한 대사지만 세 시간을 되풀이할만큼 공을 들였다"고 소개했다.

미 전국 TV로 '한국 대통령' 모델이 '한국어 대사'를 하는 최초의 기록이 세워질뻔한 이 광고는 편집 등 모든 제작을 완료하고도 그해 9월 방영 직전 무산됐다. 그리고 당초 일정보다 한참 뒤에 TV에 등장한 광고는 대통령 역할을 맡은 김광태씨도, 한국어 대사도 깡그리 사라진 어정쩡한 내용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광태씨의 말이다. "방영 직전 에이전트 회사를 통해 연락이 왔어요. 청와대에서 광고가 나가면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거에요. 하지만 광고는 한국 대통령을 지칭하지도 않았고 정치적인 메시지도 없었어요. 한국어 대사로 대통령의 이미지를 미국인들에게 친숙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였고 나 자신도 영광스럽게 연기했기 때문에 정말 황당했습니다."

최근 미국TV에서 BMW 광고모델로 출현해 화제를 모은 김광태(78 피터 김)씨가 당시 맥도날드 광고촬영장에서 경호역을 맡은 배우와 함께 한 모습. 2013.12.26.   ©뉴시스

전해 들은 문제의 핵심은 당시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촛불 시위가 전개되는 등 민감한 시점이어서 광고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광태씨는 "대체 햄버거 광고와 미국산 쇠고기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한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대사도 없었고 내 얼굴이 닮지도 않았다. 더 중요한 건 그 광고가 미국에서만 방영된다는 사실이다. 부정적인 내용이 전혀 없는데 다른 나라 광고에 문제 제기를 한다는게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김광태씨는 맥도날드 본사에 편지를 보내 "정치적 내용도 대통령 비하도 없는 허구의 광고를, 더구나 미국 TV로 나갈 광고를 방영하지 말아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시민의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이 같은 태도는 한국이 진정한 민주 국가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면서 "모쪼록 이명박 대통령과 열린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맥도날드가 의욕적으로 런칭한 '세계의 지도자들' 광고는 김광태씨가 사상 최초의 한국어대사와 이명박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방영직전 청와대에서 미국산쇠고기반대 촛불시위 등 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문제를 제기해 출연분을 통째로 덜어내는 홍역을 치렀다. 그로 인해 큰 손실을 입은 김광태 씨는 "햄버거 광고와 미국산 쇠고기가 관련도 없었지만 미국TV 광고를 한국 정부가 방영하지 말라고 요청한 사실이 너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96년 애틀랜타올림픽 기간중 김광태씨가 출연한 맥도날드 광고.   ©뉴시스

맥도날드측은 결국 방영 일정을 취소하고 김광태씨 출연분을 삭제한 후 재편집 등의 작업을 거쳐 어렵게 TV에 올렸다. 혹시라도 한국 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나머지 '세계의 지도자 시리즈'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주인공이 증발한 광고가 나간 것이다.

이로 인해 김광태씨와 에이전시는 광고가 정상 방영됐을 경우 보장된 거액의 러닝개런티를 고스란히 손해 보았다. 사실 그는 애틀랜타 올림픽이 열린 1996년에도 맥도날드 CF에 한국인 다이빙 코치로 출연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난 후 맥도날드에서 더 이상 캐스팅하는 일도 없었고 배우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한동안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김광태씨가 진짜 아팠던 것은 금전적인 손실이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모국의 정부가 상식에 벗어난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에이전시와 광고주한테도 미안했구요."

지난 10월부터 전 미주에서 방영되고 있는 그의 BMW 광고는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5년여 고통을 달래주는 재기작이다. 이 광고는 한국인 가정을 컨셉으로 한 최초의 자동차 광고로 코믹한 반전의 에피소드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얼마 전 포드에서도 섭외가 들어왔지만 BMW 광고가 방영되는 2015년까지 타사 광고엔 출연하지 않기로 옵션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아쉬운 거절을 해야 했다. 2014년 새해엔 우리 나이로 79세가 되지만 열정은 20대 청년이 부럽지 않다. 김광태씨는 "소망이 있다면 맥도날드 광고를 다시 한번 찍어 명예 회복을 하고 싶은 것"이라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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